"은행에서는 신용점수 때문에 대출이 불가능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제 예술 활동만 보고 문을 열어주었죠."
불규칙한 수입과 프로젝트 기반 활동으로 금융권에서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기 쉬운 예술인들이 자신들만의 금융 시스템을 만들고 훌륭하게 운용하여 화제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사장 서인형)이 최근 발간한 '2024 예술인상호부조대출 운용보고서'에 따르면, 신용점수와 무관하게 대출을 제공하는 '예술인상호부조대출'이 누적 305건, 6억 9백만원의 대출을 기록했다.
이 대출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중요시하는 '신용점수'를 평가 기준에서 제외했다는 점이다. 대신 조합원 자격과 최소한의 상환 가능성 심사만으로 연 5%의 저금리 대출을 제공한다. 일반 금융권에서 15~20%의 고금리를 감수해야 했던 예술인들에게는 획기적인 대안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2024년의 폭발적인 증가세다. 2024년 한 해 동안 186건, 3억 1천만원의 대출이 이루어져 전년(84건, 1억 8,500만원) 대비 건수는 121%, 금액은 68% 증가했다. 대출 상품도 다양화되어 기존의 '긴급생활자금 대출' 외에도 '익일소액대출'이 신설되고, 대출 한도도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확대됐다.
이용자 현황도 흥미롭다. 연령대별로는 40대(23.6%), 30대(23.0%), 60대(22.6%)가 비슷한 비율로 대출을 이용했으며, 예술 분야별로는 연극·영화(35.4%), 음악(30.2%), 미술·사진·만화(23.6%)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합 가입 1개월 이내에 대출을 신청한 비율이 39.12%에 달해 많은 예술인들이 급박한 자금 수요를 가지고 조합에 가입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반 금융 기관과 달리 조합원들의 상호부조 정신에 기반한 이 시스템은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까? 운용보고서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조합원들이 함께 조성한 기금을 협력 금융기관에 예치하고, 그 기금의 약 6.7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대출 한도로 설정하는 '레버리지 모델'로 운영된다. 또한 대출자들은 대출금 100만원당 매월 2,500원의 '대출안정기금'을 특별조합비로 납부함으로써 프로그램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한다.
대출금 상환 성과도 괄목할 만하다. 대위변제율(대출금 미상환으로 조합이 대신 상환한 비율)은 금액 기준 5.10%로, 일반 금융기관의 저신용자 대출 연체율과 비교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신용점수가 낮아도 예술인들의 상환 의지와 책임감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서인형 이사장은 "예술인상호부조대출은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예술인들이 스스로 만든 대안 금융 모델"이라며 "이번 운용보고서를 통해 예술인들의 금융 접근성 향상과 상호부조 시스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은 보고서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2025년에도 효율적인 대출 운용과 기금 확충을 통해 대출상품의 지속가능성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2024 예술인상호부조대출 운용보고서'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 홈페이지(www.kosmart.co.kr)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