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워는 서울에서 가장 많이 찍히고 가장 적게 노래된 건물이다. 1969년에 첫 삽을 뜨고 1975년에 준공된 이 236.7미터짜리 송신탑은 엽서와 프로필 사진의 배경으로는 수십 년째 성실히 복무했다. 그러나 그 탑을 정면으로 불러 세운 노래는 없다시피 했다. 너무 뻔해서였을 텐데, 서울 사람에게 남산타워는 명소라기보다 그냥 늘 거기 있는 것이니까. 그 뻔한 것을 정색하고 노래로 만든 사람들이 일본인 뮤지션들이라는 사실이, 이 음반의 첫 번째 농담이자 마지막 논점이다.
마리코 & 유키에의 정규 1집 《남산타워》가 9월 4일 나왔다. 한국어 열 곡, 일본어 다섯 곡, 모두 열다섯 곡이다. CD는 500장 한정이고 한국어와 일본어 가사를 나란히 앉힌 12쪽 부클릿이 들어간다. 두 사람이 듀오로 함께 선 지 여덟 해 만에 내는 첫 정규작이다.
이 음반을 두고 할 수 있는 가장 게으른 소개는 "한류의 역방향"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음반의 진짜 사건은 국적이 아니라 시대에 있다. 2026년에 나온 이 신보는 복각도 샘플링도 아니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1960~70년대의 문법으로 쓰였다.
얇으면 얇은 대로 갔다
타이틀곡 「남산타워」부터 보자. 이 곡은 60년대 기타 인스트루멘탈과 서프 사운드가 동시대 한국 가요의 감각과 만나는 자리에 서 있는데, 기타 리프도 코드 진행도 리듬을 다루는 방식도 모두 그 시대의 문법이다. 1960년대는 노래 없이 기타만으로 끌고 가는 인스트루멘탈이 태평양 양쪽에서 동시에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일본에서는 벤처스가 일으킨 그 붐이 곧바로 '그룹 사운즈'로 이어졌다. 지금 그 어법을 꺼내 쓰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데 그 선택이 정확했다. 60년대 서프 기타 사운드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상하게 얇아서, 저음이 거의 없고 기타와 심벌이 전면에 나와 있고 곡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크기로 밀어붙인다. 저음을 두툼하게 깔고 소리의 밀도를 높이는 요즘 제작 상식으로 보면 결함에 가깝다. 복고를 표방한 음반들이 대개 이 대목에서 타협하는 것도 그래서인데, 옛 악기와 옛 창법을 가져다 쓰면서도 마무리는 현대식으로 두툼하게 다듬어 놓는다. 이 음반은 그 유혹을 거절하고 얇으면 얇은 대로 갔고, 그래서 「남산타워」에는 1960년대 기타 인스트루멘탈 판 특유의 공기감이 남아 있다. 2분 38초에서 딱 끊는 것도 3분 30초를 채우려고 애쓰는 요즘 타이틀곡과는 정반대인, 그 시대 싱글의 호흡이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새빨간 스포츠카, 사랑의 자물쇠, 돌고 도는 전망대에서 먹는 세련된 디너, 360도 파노라마 야경. 1960년대 관광 홍보 영화의 어휘를 하나도 빼지 않고 가져다 쓴다. 심지어 "해발 479.7m"이라고 고도를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박아 넣는다. 그런데 이 곡은 그 어휘를 냉소하지 않는다. 놀리려고 가져온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 시절의 들뜸을 재현하려고 가져왔다. 그 태도 차이 때문에 이 곡은 복고 개그가 아니라 응원가가 된다. 사토유키에가 무대에서 드는 기타가 모스라이트라는 점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벤처스가 쓰면서 1960년대 일본 그룹 사운즈 붐의 상징이 된 그 기타다.
신중현을 판 사람과 트로트를 택한 사람
이런 음반이 나오려면 사람이 먼저 있어야 한다. 사토유키에는 1995년 서른둘의 나이에 서울에 왔는데, 이유는 대단할 게 없어 가장 싸게 갈 수 있는 해외가 한국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음반 가게에서 신중현과 엽전들의 LP를 샀고 그대로 눌러앉았다. 한국 록을 연구하겠다며 일본인만으로 밴드를 꾸렸는데, 이름을 곱창전골이라고 지었다. 아직 먹어보지도 않았지만 맛있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1999년 곱창전골은 한국 최초의 일본인 록 그룹으로 데뷔했다. 당시에는 음반 이름에 일본인 이름이 들어가면 안 되고 작사·작곡자에 일본인이 포함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단계적으로 열린 것이 1998년이니, 그는 문이 열리자마자 그 문으로 들어간 사람이었다. 그리고 삼십 년째 안 나가고 있다. 홍대 실험음악 시리즈 '불가사리'를 열었고 오토모 요시히데와 다모 스즈키 같은 이들과 교류했고 2010년에는 홍대앞 문화예술공로상을 받았고 2021년에는 《일본 LP 명반 가이드북》을 한국에서 냈다.
마리코의 경로는 완전히 달라서,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한국을 좋아하게 됐고 여행을 거듭하다가 텔레비전 음악 방송에서 트로트를 만났다. 그 순간 "내 음악은 이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2009년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한국가요 콘테스트에 나가기 시작해 2011년 전국대회에 올랐고, KBS 〈전국노래자랑〉 2015년 연말 결산 대회를 거쳐 2016년 1집 《사랑이랍니다》로 한국 CD 데뷔를 했다. 2025년에는 2집 《행복이 따로 있나》를 냈다. 한쪽은 신중현을 파고들었고 한쪽은 트로트를 택했는데, 그 둘이 음반을 냈다.
이 조합을 "록과 트로트의 이종교배"로 부르면 절반은 틀린다. 60~70년대 그룹사운드와 80년대 트로트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같은 시대의 공기를 마시고 자란 소리들이기 때문이다.
'트로트'라는 이름부터가 미국 사교춤 음악 폭스트롯에서 왔고,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이 식민지기 트로트의 전형을 세웠다. 쇼와 가요를 대표하는 작곡가 고가 마사오는 소년기를 인천과 경성에서 보내며 조선의 정서를 흡수했다. 한국 트로트와 일본 엔카는 한 세기 동안 서로의 공기를 마셔온 셈이다.
록 쪽도 사정이 비슷해서, 1960년대 미8군 쇼 무대는 신중현과 패티김과 조용필을 배출한 한국 대중음악의 요람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인 1967년부터 69년 사이 일본에서는 '그룹 사운즈' 붐이 일어 훗날 일본 록의 토대를 놓았다. 신중현은 1955년 미8군 무대에서 출발해 1964년 한국 최초의 록 밴드 애드 포를 결성했다. 그가 쓴 「미인」(1974)은 이듬해 금지곡이 됐다가 1987년에야 풀렸다. 사토유키에는 자신들의 음악 뿌리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신중현과 산울림이 비틀스다."
그러니까 그가 1995년 음반 가게에서 집어 든 LP는 일본 청년에게 완전한 이국의 음악이 아니라 어딘가 낯익은 이국의 음악이었을 것이다. 이 음반이 스스로를 "오래됐지만 새롭고, 낯설지만 익숙한 소리"라고 소개하는 것은 홍보 문구가 아니라 계보를 정확히 짚은 서술이다.
유머가 먼저 오고 정색이 뒤에 온다
음반은 두 사람의 이름을 붙인 1분 48초짜리 인트로 「Mari Yuki Theme」로 문을 연다. 그다음부터 한동안은 계속 웃긴다.
「Hot Flash」는 갱년기 열감을 정면으로 다룬 러브송이다. 문장으로 적어놓으면 위험해 보이는 기획인데 실제로는 이 음반에서 가장 시원한 곡이다. "불이 꺼질 직전의 양초가 한층 빛나는 것처럼 / 나의 몸은 불타고 있으므로 / 이제는 여자로 있고 싶어요." 자조도 아니고 계몽도 아니며, 꺼지기 직전에 더 밝아지는 촛불이라는 낡은 비유를 에스트로겐이라는 단어와 같은 곡 안에 나란히 놓는 배짱이 좋다. 2절에서 상대가 "병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받는다.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그냥 옆에 앉아 있는 쪽의 응답이라 오히려 믿음이 간다.
「맥주와 커피」는 더 사소해서, 사토유키에는 맥주파이고 마리코는 커피파라는 차이 하나로 4분 12초를 버틴다. "맥주와 커피 양쪽 다 있는 데, 찾기는 정말 힘들어"라는 대목은 생활인의 진심이고, 마지막의 "푸하ー!" "응ー, 맛있다"에 이르면 이게 콩트인지 노래인지 경계가 흐려진다. 그런데 곡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우리 그림자는 결국 하나가 되었어요"로 착지한다. 농담을 끝까지 밀고 가서 정서에 도착하는 것, 이 음반이 가장 잘하는 일이 그것이다.
「안녕 내사랑」은 아예 공연 마지막에 관객과 함께 부르려고 만든 곡이다. "내일 또다시 만나요 / 모레도 볼 수 있겠지요"라고 하니 이별 노래의 형식만 빌렸을 뿐 실은 이별을 하지 않는 노래이고, 1970년대 버블검 팝의 가볍고 밝은 감촉이 그 능청을 그대로 받아준다.
「맞아 맞아 송」은 한국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맞아, 맞아"를 통째로 후렴으로 삼았다. 한국어를 교과서가 아니라 몸으로 배운 사람만 잡아낼 수 있는 지점이다.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술, 장난꾸러기, 늦잠꾸러기, 저녁형 인간. "같다 같다"가 끝없이 반복되는데 이건 사실 궁합 노래가 아니라 목록 노래이고, 둘이 같은 항목을 세다가 흥이 나버린 노래다.
그리고 정색하는 순간들
웃기다가 정색하는 낙차가 이 음반의 진짜 구조다. 「사랑의 술잔」은 은혼식과 금혼식을 맞는 오래된 부부의 노래다. 로마네 콩티는 무리지만 와인은 좀 비싼 걸로 시켰고, 그래도 진짜 잊히지 않는 건 첫 데이트에서 먹은 양곱창이며, 금혼식 자리에서는 임플란트와 돋보기와 허리 통증을 "부끄럽기도 기쁜 50년"이라고 부른다. 사랑 노래에 인삼주와 임플란트를 넣고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은 것은 그게 실제로 그들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이 곡의 후렴에는 이 음반 전체를 압축한 한 단어가 있다. "여보여보 오빠 여보여보 내 사랑 잔을 기울인다." 여보여보. 한국어로는 배우자를 부르는 말이고, 일본어로는 늙어 후들거리는 모양을 흉내 낸 의태어다. 은혼식과 금혼식을 노래하는 곡에서 이 한 단어는 두 언어에서 동시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확히 작동한다. 두 언어를 다 살아본 사람만 쓸 수 있는 가사다.
「술 소독 Blues」는 사토유키에의 솔로 앨범 《사랑스러운 그대》(2009)에 실렸던 곡을 마리코와 함께 다시 부른 것이다. 1절은 실연이고 2절은 화인데, 3절에 와서야 진짜 이유가 나온다. "안녕이라며 혼자 건배하지 / 멀리 떠났던 친구를 위하여." 요절한 가수 홍성민에게 바친 곡이다. 헤어져서 마시고 화나서 마신다고 두 번 능청을 떨어놓은 뒤 세 번째 잔에 가서야 조용히 이름 없는 헌사를 놓는다. 슬픔을 앞세우지 않고 미뤄두는 것은 블루스라는 형식의 가장 오래된 지혜다.
「홍어의 눈물」은 곱창전골 4집 《메뉴판》(2014)에 있던 곡을 마리코가 특히 좋아해 솔로로 가져온 것이다. 항구에 닿자마자 밀려오는 냄새, 홍어 한 점, 그리고 "흐느껴 우는 목포의 눈물." 여기서 이난영이 불려 나온다. 일본인 가수가 목포에서 홍어를 씹으며 그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여러 겹으로 읽힌다. 그런데 곡은 그 겹을 설명하지 않고 그냥 냄새와 홍어 한 점과 쓰린 눈물만 놓아둘 뿐인데, 설명하지 않는 편이 훨씬 세다.
「고향」이 이 음반을 구한다
그리고 열 번째 곡 「고향」이 온다. 사토유키에 솔로이고, 이 음반이 단순한 향수 앨범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름다운 경치와 그리운 사람들을 / 생각하면 그 곳이 나의 고향."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산 사람이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끝내 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첫 두 줄이 정의가 아니라 조건절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제야 거기가 고향이 된다. 장소가 아니라 상태다.
목련으로 봄이 오고 코스모스로 가을이 깊어지는, 트로트 망향가의 가장 관습적인 문법을 그대로 쓴다. 떠들썩한 거리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코트 깃을 세운 채 골목길에 잠시 멈춰 선다. 다만 여기서 "타향살이"를 부르는 사람이 서울에 사는 일본인이어서, 같은 단어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진다. 돌아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느 쪽으로 돌아가도 타향이기 때문이다. 앞의 아홉 곡이 얼마나 시끌시끌했는지를 이 곡에 와서야 알게 된다.
이 음반이 서울을 다루는 방식도 여기서 드러난다. 남산타워는 관광지가 아니라 동네 랜드마크로 등장하고, 데이트는 명동이 아니라 맥주와 커피가 둘 다 있는 가게를 찾아 헤매는 일로 등장한다.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이미 여기가 집이 된 사람의 시선이다. 그 차이가 이 음반의 전부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11번부터 14번까지는 2·3·4·5번 트랙의 일본어 판인데, 여기서도 이 음반은 손쉬운 길을 가지 않고 가사를 옮기는 대신 다시 썼다.
「맥주와 커피」가 좋은 예인데, 한국어판에서는 두 사람이 같은 문형으로 "나의 몸은 커피가 되어 가고 있어요", "나의 몸은 맥주가 되어 가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일본어판에서는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종결어미를 그대로 살려 여자와 남자의 어미와 인칭이 완전히 갈린다. 한국어판에서는 그 구분이 사라지는 대신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하는 합창의 인상이 남는다. 같은 농담이 언어에 따라 다른 관계를 그린다.
마지막 곡 「夢で逢った男」은 곱창전골의 미발매 5집 《복숭아 스토리》에 실릴 예정인 곡의 일본어 버전이다. 이 곡에서 처음으로 두 언어가 한 줄 안에서 맞물린다. 일본어로 흘러오던 노래가 후렴에서 갑자기 한국어로 바뀌고, 마지막 단어만 다시 일본어로 돌아온다. 열네 곡 동안 두 언어를 각각의 트랙으로 나눠 담아온 음반이 마지막 곡에서 그 칸막이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부부 이야기로 가득한 음반의 끝에 아직 사랑을 모르는 소녀를 세워두는 것도 좋은 마무리다. 시간이 거꾸로 한 바퀴 돈다.
남는 말
약점이 없는 음반은 아니다. 열다섯 곡 중 다섯 곡이 앞서 나온 네 곡의 다른 언어 판이고 두 곡은 과거 레퍼토리의 재방문이다. 순수하게 새로 쓴 노래가 아홉 곡이니 첫 정규작의 볼륨으로는 다소 얇다. 한국어 열 곡 가운데 마리코가 홀로 전면에 서는 트랙이 「홍어의 눈물」 한 곡뿐인 것도 아쉽다. 그 한 곡에서 가장 뚜렷한 개성이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자기 자리를 정확히 안다. 60~70년대의 사운드를 지금 다시 꺼내는 시도는 흔하다. 대개는 레트로라는 이름의 표면 처리로 끝나지만, 이 음반은 그 시대의 소리를 흉내 내는 대신 그 시대의 작법으로 새 노래를 썼다. 얇으면 얇은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유치하면 유치한 대로 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들이 2026년에 듣기에 촌스럽지 않다.
한류를 말할 때 우리는 늘 한국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방향을 떠올린다. 이 음반은 반대 방향이어서, 서울에 눌러앉은 일본인 둘이 삼십 년 동안 한국 음악을 먹고 소화해서 다시 한국어로 내놓았다. 그것이 신기해서 들을 만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실제로 좋아서 들을 만하다. 남산타워는 이제 노래를 하나 갖게 됐다. 비공인이지만 진지하게 쓴 노래를.
《남산타워》는 스포티파이와 유튜브 뮤직에서 들을 수 있다. 전곡 이어듣기 영상과 타이틀곡 뮤직비디오, 9월 6일 서울 스페이스 한강에서 열린 발매 기념공연 실황은 유튜브 채널에 공개돼 있다. 프로듀스 사토유키에, 레코딩 보헤미안 스튜디오, 믹싱 스튜디오 놀, 마스터링 오브라이트 마스터링 스튜디오. 아트워크 Nao(스튜디오 뱀프), 사진·영상 치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