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채색화의 거장 내고(乃古) 박생광(朴生光, 1904–1985)이 평생 동안 연필로 채집한 드로잉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주최하는 박생광 드로잉전이 오는 5월 20일(수)부터 6월 8일(월)까지 서울 은평구 M타워 6층에 위치한 갤러리 PEG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박생광이라는 이름을 둘러싼 통념 — "오방색의 거장"이라는 정체성 — 의 그 아래를 보여주는 시도다. 청·적·황·백·흑의 강렬한 채색으로 무속과 역사, 민속을 그렸던 거장이 채색이라는 결정 이전에 어떻게 형(形)을 더듬어 갔는지, 종이에 연필이 닿는 가장 정직한 순간을 85점으로 풀어놓는다. 1950년부터 1982년에 이르는 30여 년의 답사 기록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진주에서 그랑팔레까지 — 한 화가의 81년
박생광은 1904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호 내고(乃古)는 "옛것을 따른다"는 뜻이다. 1920년 그는 일본 교토로 건너가 다치카와미술학원에서 3년간 수업한 뒤, 1923년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에 입학해 신일본화(新日本畵)의 거장 다케우치 세이호(竹內栖鳳)와 무라카미 가가쿠(村上華岳)에게 사사하며 채색화의 기본기를 쌓았다.
광복 후 그는 고향 진주로 내려가 조용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67년 서울로 올라와 홍익대·경희대에 출강했지만, 일본 화풍의 흔적이 짙은 작가라는 이유로 한국 화단 주류로부터는 오래 거리를 두었다. 1974년 그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생의 절반 이상을 그렇게 일본풍 화가라는 이름표 아래 살아낸 셈이다.
전환점은 1977년이었다. 일흔셋의 박생광은 영구 귀국하여 서울 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화풍을 일거에 갈아엎었다. 일본 화풍을 떨치고 감청·주·황을 주조로 한 한국적 색채와 굵은 주황 윤곽선으로 무속·불교·역사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술사학자 조은정은 이때 정착된 그의 화법을 "그대로 화풍"이라 불렀다. 단청 안료와 아교, 먹과 발묵을 결합해 면을 구획하고 다시 주황 색선으로 메우는 —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박생광만의 화법이었다.
1981년 백상기념미술관 개인전, 1984년 문예진흥원미술관 개인전이 화단에 큰 충격을 안겼다. 1985년 4월에는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르 살롱전〉 특별전에 초청되어 비평가들로부터 "한국의 피카소"라는 호명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그는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영구 귀국부터 별세까지 8년 — 그의 진정한 황금기였다.

오방색과 한국성 —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박생광이 만년에 천착한 주제는 한국의 가장 토속적인 자리에 있었다. 무속의 굿판과 무당, 부적, 불교의 불화와 탱화, 민화의 십장생과 모란과 쏘가리, 그리고 한국 역사의 인물들 — 전봉준, 이순신, 명성황후, 논개. 1980년대 초 그는 실제 굿판을 찾아다니며 무속 도상을 채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5년의 대작 〈전봉준〉은 길이 5m가 넘는 화면에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를 민중 화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색채의 중심은 오방색이었다. 청·적·황·백·흑 — 한국 전통의 다섯 방위 색이다. 수묵 일변도의 화단에서 외면받던 채색화의 전통을 정면으로 되살린 사건이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박생광을 "한국 동양화의 대표적인 채색화가이자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규정하며, "수묵 위주의 한국 동양화단에 새로운 경로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한다.
박생광이 남긴 명언 —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 은 그의 회화관을 가장 간결하게 압축한 선언이다. 일본 화풍이라는 출생의 이름표를 자기 손으로 떼어내고, 가장 한국적인 색채와 도상의 자리로 걸어 들어간 한 작가의 노년이 이 한 줄 안에 그대로 담겨 있다.

학계에서도 2023년에야 본격 공개된 영역
박생광의 드로잉은 미술계 안에서도 오랫동안 거의 사적인 작업으로 남아 있었다. 그의 만년 채색화 — 〈전봉준〉, 〈무당〉, 〈무속〉 시리즈 — 가 화면을 지배해 온 동안, 그 화면이 시작된 자리, 채색이 입혀지기 전 단계의 드로잉들은 미술관 컬렉션 깊은 곳에 머물러 있었다.
이 영역이 처음 본격적으로 공개된 것은 2023년 3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위대한 만남: 내고 박생광·우향 박래현〉전이다. 그곳에서 박생광이 출품한 181점 가운데 스케치만 100점이 전시됐다. 한 자리에 그렇게 많은 박생광 드로잉이 모인 적은 없었다. 평론가들은 이 자리를 빌려 짐작해 온 사실을 기록했다 — 채색화의 거장은 동시에 드문 인내와 절제의 드로잉 작가였다는 것을.
이번 박생광 드로잉전은 그 흐름의 후속이다. 한가람전이 거장의 드로잉을 학술적 재평가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면, 이번 전시는 그 작업들을 일반 관람객과 컬렉터가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로 옮겨놓는다. 박생광 드로잉이 단독 전시로 다뤄지는 보기 드문 기회다.

"채색 이전의 호흡" — 85점에 담긴 30년의 답사
이번에 공개되는 85점은 종이에 연필, 또는 종이와 판지에 잉크가 결합된 형식이다. 작품 크기는 대부분 25×18cm 안팎의 소품으로, 거장이 답사 현장에서 손에 쥐고 그렸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1950년부터 1982년까지 — 30년이 넘는 시간이 작은 종이 위에 빼곡히 새겨졌다.
소재는 박생광의 작품 세계 전반에 걸쳐 있다. 1950년대 진주 연작 — 〈진주〉(1950), 〈진주 창열사〉(1950), 〈진주 남강 풍경〉(1951), 〈진주 문산〉(1952) — 은 고향의 시간이 가장 가까이 새겨진 작품들이다. 거장이 광복 후 진주에 머물던 시기, 도시의 풍경을 그가 어떻게 바라보았는지가 연필 선 그대로 남아 있다.
1950~60년대 한국 답사 연작은 그가 전국 곳곳을 누비며 채집한 지형도다. 〈창녕 만옥정〉(1953), 〈중문 계곡〉(1956), 〈제주해안〉(1956), 〈하남풍경인가〉(1958), 〈진주 청곡사〉(1963), 〈전주 한벽당〉(1966), 〈해인사〉가 한 흐름을 이룬다. 특히 1956년 1월의 〈중문 계곡〉, 〈천제연〉, 〈제주해안〉 세 점은 거장의 제주 답사기 시간을 그대로 보여준다.
1975년 가마쿠라 연작은 박생광이 일본에 머물던 시기의 시선이다. 〈가마쿠라 나무〉 3점은 같은 소재를 며칠 간격으로 다시 그린 변주다. 1977년 일출 연작 — 〈송도 일출〉(11월 21일), 〈토함산 일출〉(12월 18일) — 은 영구 귀국 직후, 곧 그의 오방색 화풍 전환이 시작된 바로 그 시점의 작업이다. 만년의 채색화가 폭발하기 직전, 거장의 시선이 어떻게 한국의 빛을 다시 만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1982년 인도 기행 연작 — 〈마차-인도 기행 중 거리 풍경〉, 〈아기 안은 여인〉, 〈우마와 시마〉, 〈아지안타(정각산 뒤에 있음 세트)〉 — 은 거장이 만년에 들어서 새로 받아들인 풍경의 흔적이다. 죽음을 3년 앞두고 그는 여전히 새로운 시선을 종이 위에 옮기고 있었다.
인물 드로잉도 함께 공개된다. 〈장구치는 여자〉, 〈드러누운 누드 여인〉, 〈다리를 오므리고 앉은 누드〉, 〈두 팔을 들고 앉은 모델〉, 〈피리부는 사람〉 등은 박생광의 채색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골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정원의 꽃과 사마귀〉(1979), 〈나뭇잎〉(1978), 〈다람쥐들〉, 〈금강역사〉, 〈석굴암 관음보살의 상체 부분〉 같은 작품은 거장의 시선이 어떤 디테일에 머물렀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증언한다.
가격대는 점당 1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로, 거장의 진품을 비교적 합리적 가격으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한 손에 잡히는 거장의 시선
드로잉은 회화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영국 백과사전 브리태니커는 이렇게 적었다 — 드로잉은 "모든 예술적 진술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것." 선이 종이를 가로지르고, 그 순간 작가의 손이 곧 작품이 된다. 채색이라는 두꺼운 절차가 없다. 보이는 것은 작가가 본 순간 그대로다.
미술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드로잉은 회화의 예비 단계였다. 리허설, 채색에 덮이는 골격. 그러다 레오나르도를 기점으로 드로잉은 자율적 예술로 자리 잡았다. 197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기념비적 전시 〈Drawing Now〉에서 드로잉을 "주요하고 독립적인 표현 수단"으로 선언한 것은 그 흐름의 정점이다.
한국 전통도 다른 길로 같은 결론에 닿았다. 필묵(筆墨)의 자리에서 선 한 줄은 작가의 호흡과 기질, 세계를 보는 시선을 그대로 싣는다. 사의(寫意) — "뜻을 그린다"는 동양화의 화법은 닮음이 아니라 선 뒤의 마음을 본다. 드로잉전은, 이 척도로 보자면, 한 작가의 집에서 가장 사적인 방이다.
박생광의 채색화는 종종 화면을 압도하는 색채와 도상 때문에, 작가의 손이 어디서 머물렀고 어디서 망설였는지를 짚어보기 어렵다. 드로잉은 그 점에서 다른 종류의 친밀함을 제공한다. 단청 안료의 적색과 군청에 덮이기 전, 거장이 어떤 선으로 세계를 먼저 보았는지의 기록 — 이것이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자리다.

씨앗페 — 작품이 동료 예술인의 상호부조 기금이 되는 자리
박생광 드로잉전은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주관하는 사회적 미술 캠페인 씨앗페(SAF, Seed Art Festival)의 일환으로 열린다. 씨앗페는 한국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출품한 작품의 판매 수익을 동료 예술인의 상호부조 기금으로 운용해,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5% 고정금리 저리 대출로 이어주는 사회적 미술 프로젝트다.
조합은 2022년부터 354건의 상호부조 대출을 집행했고, 95%의 상환율을 기록하며 "예술인은 신용이 없다"는 한국 금융권의 통념을 데이터로 반박해 오고 있다. 박생광의 드로잉이 새로운 컬렉터의 손에 닿을 때, 그 거래는 동시에 한국 예술인 동료의 다음 작업을 위한 자리가 된다.
이번 전시 작품 85점은 온라인 갤러리 씨앗페(saf2026.com)에서도 동시에 만나볼 수 있으며, 박생광의 생애·작품 세계·드로잉의 의미를 정리한 전용 페이지가 함께 공개된다.
전시 안내
- 전시명: 박생광 드로잉전
- 기간: 2026년 5월 20일(수) ~ 6월 8일(월)
- 장소: 갤러리 PEG (서울특별시 은평구 통일로 870 M타워 6층)
- 관람 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
- 관람료: 무료
- 출품: 박생광 드로잉 85점 (1950–1982 작업)
- 주최: 한국스마트협동조합
- 온라인 전시: https://www.saf2026.com/special/park-saenggwang
- 씨앗페 캠페인: https://www.saf2026.com
- 문의: contact@kosmart.org / 02-764-3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