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라인드코어 밴드 화(HWA)가 오는 21일 데뷔 EP 'HWA'를 발매한다. 8곡, 총 10분 30초. 멜론과 스포티파이를 비롯한 모든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들을 수 있다.
10분 30초라는 숫자가 낯설다면, 그것이 그라인드코어라는 장르의 문법이다. 가장 짧은 곡 'Letter to Jane Doe'는 53초, 가장 긴 곡 'Decomposition'이 2분 6초다. 이 장르는 하드코어 펑크와 익스트림 메탈이 충돌하며 태어났다. 곡의 길이를 극단까지 깎아내고 그 안에 최대치의 밀도를 눌러 담는다. 그러나 화(HWA)의 EP는 짧고 빠르다는 장르의 관습 위에, 이 씬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것을 얹는다. 아름답고 감성적인 멜로디다.
곱창(GobChang)의 드러머가 세운 새 프로젝트

▲ 라이브 무대의 화(HWA). (사진=정우택)
화(HWA)는 2024년 드러머 GopChang과 기타·베이스의 OCheolWang이 결성했다. GopChang은 서울의 노이즈그라인드 밴드 곱창(GobChang)의 드러머로 국내 그라인드코어 씬에서 활동을 이어 온 인물이다. 2025년에는 보컬 JK가 합류해 3인조 라인업이 완성됐다. JK는 이번 EP의 가사 전체와 커버 아트워크까지 직접 맡았다.
밴드가 직접 밝힌 참조점은 그라인드코어의 계보에서도 가장 정교한 축이다. 테크니컬 그라인드코어의 전설 Discordance Axis와 Gridlink, 그리고 Gridlink의 멤버들이 지난해 결성해 데뷔작 'Grieving'을 내놓은 Barren Path. 여기에 테크니컬 스래쉬 Vektor의 화려함과 Cloud Rat의 디프레시브한 정서까지 겹쳐 놓았다. 보컬 JK의 절규는 Discordance Axis와 Gridlink의 보컬리스트 Jon Chang을 연상시킨다는 평이다.
"수준 높은 분노"
EP의 보도자료를 쓴 음악평론가 장재원은 이 앨범을 '텍스처'라는 키워드로 읽는다. 그라인드코어가 표방하는 분노라는 감정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음악의 질감에 먼저 압도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의 다른 그라인드코어 밴드들이 텍스처보다는 장르 특유의 감정에 중시하여 듣는 이 자체를 '그저 분노에 표출해 머리를 흔들며 벽에다 주먹질을 하는' 무지막지한 단세포 동물로 만들었다면, 화(HWA)의 음악은 그렇게 화난 이들을 의자에 끌어다 앉힌 후 '수준 높은 분노'를 선사한다"고 썼다. "귀를 집중시키게 하는 곡의 구조,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리프의 조합, 압도적인 드러밍, 그 분노가 침잠하는 듯 느껴지는 완급조절"이 그 근거다.
수위를 가리지 않는 비유도 등장한다. 그는 "디프레시브적인 피치, 잘 조합되어 맞물려 오히려 신경질이 날 정도로 깔끔한 리프, 수려한 멜로디 라인 등은 자위 후의 현타보다 '나는 왜 자위를 하는가', '자위를 하는 내 모습은 어떠한가'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만든다"며 분노를 소모하고 끝나는 음악과 분노를 성찰하게 만드는 음악의 차이를 짚었다. 그러면서 "그라인드코어에서 음악의 텍스처로 진지한 고찰을 하게 만든 앨범이 우리나라에 몇 개나 있던가"라고 반문했다.
외로움, 혐오, 공허 — 여덟 개의 장
가사가 다루는 것은 관계다. 밴드는 인간 관계에서 느꼈던 외로움, 인간 혐오, 자괴감, 공허감, 상처를 여덟 개의 트랙에 나눠 담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숨기고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 감정들이다.
저무는 가을빛으로 시작하는 'September Theater'에서 출발해 버려짐의 기억을 되씹는 타이틀곡 'Past Self', 거울 앞의 자기혐오를 그린 'Violent Disgust'를 지나 꽃이 시들고 나무가 썩어 가는 이미지로 상실을 마무리하는 또 하나의 타이틀곡 'Decomposition'까지 — EP 전체가 하나의 감정 서사로 이어진다.
밴드는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변화와 감정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자 핵심이며, 이러한 변화와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이 화(花)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밴드 이름의 '화'가 분노(火)인지 재앙(禍)인지 화해(和)인지 꽃(花)인지 — 이 앨범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진동한다.
커버 아트워크도 이 정서의 연장선에 있다. 고어와 노이즈로 뒤덮인 이미지가 관습인 씬에서, 화(HWA)는 새하얀 안개 같은 미니멀한 커버를 골랐다. 보컬 JK의 작품이다.
EP 'HWA' 트랙리스트
- September Theater (1:13)
- Past Self (1:04) *타이틀
- Violent Disgust (1:01)
- Hollow Face (1:44)
- Letter to Jane Doe (0:53)
- Hymn for the Night (1:04)
- Irreversible Imprint (1:20)
- Decomposition (2:06) *타이틀
크레딧
- JK: 보컬, 가사, 아트워크
- OCheolWang: 기타, 베이스
- GopChang: 드럼
- 작곡: OCheolWang ('Irreversible Imprint'는 GopChang), 편곡: 화(HWA)
- 녹음: 이진우 (Spot Sound) / 믹싱·마스터링: 유호강 (Pepperman)
- 사진: 정우택
- 인스타그램: @grind_hw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