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편집부 | 2025년 9월 9일, 하나의 연주곡이 고요하지만 강렬한 파문을 일으키며 세상에 나왔다. 아티스트 Guitar Choi의 신곡 'Dementia'는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을 넘어, 듣는 이를 자신의 가장 깊은 기억 속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힘을 가진 곡이다. 안개처럼 몽환적인 사운드로 시작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파격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3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한 편의 정교하게 설계된 음향적 건축물을 체험하게 된다. 이토록 치열하고도 섬세한 소리의 세계를 빚어낸 아티스트 Guitar Choi와 만나, 그의 음악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 'Dementia', 제목에 담긴 이중적 의미 신곡 발매 후 소감을 묻는 말에 그는 "다음 곡은 어떻게 그릴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담담하지만 벌써 미래를 향한 시선을 내비쳤다. 그의 음악 여정에서 새로운 '특이점'이 되었다고 말한 이번 곡 'Dementia'는 그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제목에 담긴 의미를 묻자, 그는 예상보다 훨씬 더 깊고 복합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이전에 어머니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아직까지 약을 드시고 계십니다. 했던 말씀을
"우리 사회의 모순이 구조적인 모순이 근본적인 모순이 드러났고... 직접적으로 그런 거대 담론 정치 얘기를 제 노래에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게 거기서 나오는 신화와 오류와 착각이 너무 커 가지고..." 뉴스아트 편집부 | 그의 신디사이저 소리와도 같은 묵직한 저음처럼 깔리는 이 한마디는 전자음악가이자 SF 작가, ‘삼각전파사’ 장호진의 세계를 여는 열쇠다. 최근 발표한 앨범 《디스토피아 2025》는 동시대 한국 사회의 불안한 공기를 포착한 음악적 기록이자, 거창한 구호 대신 삶의 미세한 균열 속에서 진실을 길어 올리려는 한 고독한 탐구자의 항해일지였다. 인터뷰 내내, 그는 매끈하게 포장된 현실 이면의 ‘이지러진 어긋남’에 집요하게 렌즈를 들이댔다. 삼각전파사의 음악은 바로 그곳, ‘삶이 무너지는 경계와 균열’에서 시작된다. 거대 서사의 노이즈를 뚫고, 삶의 현장음을 기록하다 삼각전파사가 겨누는 과녁은 분명하다. 정치적 영웅 신화, 선악의 편리한 이분법, 진영 논리의 선민의식 같은 거대 담론들이 만들어내는 ‘신화와 오류와 착각’. 그는 이런 것들이 현실의 복잡성을 가리고 오히려 “또 다른 모순”을 낳는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위가 아닌 아래로, 중심
뉴스아트 편집부 | 자이(Jai)의 새 앨범 'Golden Hour'는 25년간의 음악 여정에서 맞이한 황금빛 시간을 담아낸 작품이다. 한국 인디 음악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밴드 '헤디마마'의 리더에서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 색깔을 구축해온 자이의 7년 만의 신보는 여러 측면에서 특별하다. 록과 재즈, 팝과 소울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사운드 팔레트, 그럼에도 일관되게 유지되는 자이만의 목소리와 서정성이 어우러져 마치 사진작가들이 말하는 '골든 아워'처럼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앨범이 완성되기까지는 프로듀서 박찬울의 손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로, 또한 음악 전문 매체 '월간 믹싱'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한국 음악계에서 점차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그는 자이의 원곡들에 다양한 음악적 옷을 입히며 앨범의 전체적인 사운드와 방향성을 완성했다. ‘너의 데이트’, ‘Fever’, ‘오늘 이 밤을’, ‘때늦은 옛 이야기’로 이어지는 네 곡의 이야기는 단순한 트랙의 나열이 아닌, 하나의 정서적 여정을 담아낸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면서도 하나의 통일된 톤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세션 뮤지션들과는 어떻게 호흡을
"음악이란 결국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예요. 내 음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때로는 카타르시스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스아트 편집부 | 사진작가들에게 'Golden Hour'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해가 떠오르거나 지는 시간,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그 짧은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새벽을 깨우고 황혼을 기다린다. 부드럽고 따스한 황금빛은 피사체를 가장 아름답게 비추고, 일상적인 풍경도 한 편의 예술로 탈바꿈시킨다. 뮤지션에게도 이와 비슷한 황금기가 있다.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오며 쌓아온 경험과 기술, 그리고 예술적 영감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젊은 날의 거칠지만 강렬했던 에너지가 시간이 흐르며 더욱 정제되고, 기교를 뛰어넘어 깊이 있는 표현력으로 승화되는 시기. 한국 인디 신에서 25년을 보낸 자이(Jai)가 이제 자신만의 'Golden Hour'를 맞이했다. 1. 헤디마마에서 자이로 – 록밴드 리더에서 싱어송라이터로 1990년대 말, 전설적인 여성 록밴드 '헤디마마'의 베이시스트이자 메인보컬로 데뷔한 정혜정은 당시 남성 중심의 인디 록 신에서 거침없는 카리스마와 독보적인 음색으로 주목받았다
뉴스아트 김시우 기자 | 지난 2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중심지에 "금지된 미술관(Museum of Forbidden Art)"이 개관해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고 있다. 이 미술관은 그동안 검열논란의 중심에 섰던 정치적인, 혹은 종교적이거나 성소수자 차별 등을 다룬 작품들을 직접 매입하여 보여주는 전시장이다. 김운성 작가가 이곳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소녀상'을 비롯해 수많은 문제작들을 둘러보고 미술관 관장인 로사 로드리고와 간단히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기사의 사진은 모두 미술관 측에서 제공한 것이다. Q. 박물관에서 맡은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A. 박물관 관장인 로사 로드리고(Rosa Rodrigo)입니다. Q. 금지된 미술관의 설립 배경과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A. 금지된 미술관(Museum of Forbidden Art)은 언론인이자 기업가인 타초 베넷(Tatxo Benet 이하 베넷)이 2018년부터 시작한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구상되었습니다. 'Presos Políticos en la España contemporánea('현대 스페인의 정치범'이라는 뜻)'이라는 작품과 함께 말이죠. 이 작품은 2018년 ARCO에서 지워진 채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성악가 이재성은 적어도 아내보다는 노래를 못했다. 노래방에 가면 박자 맞추고 추임새 넣는 역할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나이 47살에 성악을 시작하여 오페라 무대에 서더니 아예 아마추어 오페라단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문자 그대로 가산을 탕진해가며 23명의 스승에게 사사 받았고, 나름대로 터득한 ‘아마추어에 특화된‘ 발성법을 무료로 알려준다. 그러더니 예술인들이 기아선 상에 허덕이던 코로나 기간에 ‘영끌’하여 아예 아트홀을 하나 만들었다.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을까? 그의 첫 번째 직업은 은행원.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홀로 자녀를 키우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무려 21년이나 착실하게 직장 생활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바로 퇴사하고 군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어린이 실내놀이터를 냈다. 300평 규모의 놀이터를 ‘품질관리’ 때문에 부부가 함께 청소했는데, 2년 만에 아내의 연골이 나갔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일이 나이키 수입 의류 사업. 중국을 상대했었는데, 된통 사기당하고 “쫄딱” 망했다. “어느 정도로 망했냐 하면 보증금도 없어서 4식구가 지인의 원룸 오피스텔에 들어갔어요.” 극한 상황에 처하니 창의력이 고도로 발휘되었다.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무엇이 그녀를 붙잡았던 걸까?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교직을 떠나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그리고 비엔나에서, 거의 20년을 돌아 비로소 매진할 수 있었다. ‘연극’이라는 것에. 연극애호가였을 뿐인데, 무대에 설 것도 아니면서 <부산대 사범대극회>를 창립하였다. 졸업 후 교사 시절에는 사대극회 출신이 주축이 된 극단을 만들었고 전용 극장까지 있는 극단으로 성장하는 데 한몫했다. 처음에는 연기 이외의 일만 했다. 공적인 이유가 아니면 나서는 성격이 아니기에 연기는 생각도 안 했다. 그러다 결국 배우가 되면서 삶의 균형이 깨졌다.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역할들 속에서 연기 쪽으로 추가 기운 것이다. 갈등이 왜 없었겠는가. 배우로 처음 무대에 선 <한씨연대기> 공연 중 교복을 입고 한 씨의 딸로서 마지막 독백을 할 때였다. “오늘 아침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그 말이 가슴 깊은 곳에 박히면서 눈물이 떨어졌다. 극 중 아버지가 아닌 권남희가 그 대사와 함께 죽었다. 배우가 아닌 권남희를 죽이고, 배우 권남희로 다시 살기로 했다. 하지만 연기를 전공하지도 않고, 나이도 경력도 애매하여 특정 극단에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아름다운 음악에 끌려 보기 시작해 표독스러운 현실에 경악하게 되는 드라마 <펜트하우스>. 성악가 이경희씨는 드라마가 보여주는 갈등과 에피소드가 과장되긴 했어도 현실을 충실히 반영했다고 한다. 성악을 전공으로 선택할 때만 해도 그렇게 치열한 세계를 살아야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전공을 선택함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입시이다. 이경희씨는 공부를 곧잘 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전공이 정해지는 예고보다는 인문계를 택하였다. 하지만 입시 중심의 고등학교 분위기에서 3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결국 1학년 때부터 성악 레슨을 받았고, 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에 바로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입학했다. “이건 성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코스였어요. 유학 가서 졸업할 즈음 콩쿠르에서 피날리스트 상을 받고 에이전시랑 계약하고 투어하고...” 성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극장장이나 연출자, 에이전시들이 각종 대회에서 유망한 성악가를 발굴하고 계약하여 월드투어 등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을 기회를 준다. 그런데 이게 동양인에게는 쉬운 기회가 아니다. 판소리를 외국인이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연주자를 선
뉴스아트 김시우 기자 | 아프리칸 타악 연주자이자 드럼써클 퍼실리테이터 박재용씨는 특별한 예술인이다. 반도체 디자인을 하는 예술인이라서가 아니다. 평범한 삶을 살다가 취미가 직업이 된 예술인은 많지만, 박재용씨처럼 본캐와 부캐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천성이 유쾌하고 낙천적이라 코로나 시기에도 의연했다. 통상 연초에 확정되는 연간 공연이 전부 취소되어 시간이 많아지자 아예 1년은 놀겠다 마음먹었다. 딸과 실컷 놀며 친해지고 캠핑도 많이 다녔다. 그러다가 코로나 장기화로 정말 어려워질 무렵,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알게 되었다 “스마트협동조합을 통해 예술인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하게 되었고, 정보를 많이 얻게 됐지요. 홍대 마포 등 좁은 세계에서만 살았는데 조합에서 다양한 예술인들과 만나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재미는 있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생활을 해가던 중 이전 직장 동료들이 안부를 물어오더니 회사로 복귀하라고 했다. 그만둔 지 무려 9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예술인은 지금 무려 반도체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하다지만, 퇴사 후 9년이 넘은 회사에 복직하다니 이 정도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고효경의 음악상담소가 최근 송출한 방송에는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인 이영경씨와 박현주씨가 출연했다. 1시간 반 동안 다른 곳에서는 듣기 어려운 즉흥연주가 계속되었다. 음악방송 1년 경력으로 이러한 섭외와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랍다. 한 페이지 놓고 한 시간 이상 연주가 가능하다는 예술인을 개인 방송에 모시는 이 재주 좋은 예술가가 사는 법을 들어봤다. 다수의 앨범을 발매한 바 있는 22년차 대중 가수 고효경씨에게도 코로나 시기는 어려웠다. 레슨, 강의, 공연, 음반 작업을 꾸준히 해 왔음에도 여전히 경제적 자립이 어려웠는데 코로나까지 닥쳤기 때문이다. 쓰리잡 포잡까지 하는 와중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까지 겹치면서 공황장애를 겪을 정도였다. 이 시기 그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플랫폼을 통해 송출되는 음악 방송 진행이었다. 1년 전, 지인이 외국에서 유행하던 클럽하우스 형태로 방송을 해 볼 것을 권했다. 지인의 격려에 힘입어 어플을 사용하는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는데, 이것이 뜻하지 않게 세상과 고효경씨를 연결했다고 한다. “낮에 반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 공연을 했어요. 피로에 쩔어 얼굴이 퉁퉁 부은 게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