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2월 10일 토요일, 밤이 깊은 뒤에 뉴욕 록펠러센터로 트럭 한 대가 들어왔고, 인부들이 비계를 세우고 RCA 빌딩 로비의 벽을 올랐다. 손에는 도끼가 들려 있었다. 벽에는 가로 11미터 45센티미터, 세로 4미터 85센티미터짜리 벽화가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부수어 벽에서 떼어냈다. 그 벽화는 이미 아무도 볼 수 없었고, 아홉 달 전에 천으로 덮여 가려진 상태였다. 계약금 2만 1천 달러는 전액 지급된 뒤였고, 화가는 진작 해고됐으며, 작업은 미완성으로 멈춰 있었다. 돈은 돌려받지 못했고,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부수었다. 왜 그랬을까. 예술이 정책을 바꾼 가장 극적인 사례, 더스트볼을 아시나요 지난 글에서 나는 1930년대 미국의 더스트볼을 다루면서 도로시아 랭의 사진과 존 스타인벡의 소설과 우디 거스리의 노래가 정치의 비용 계산을 바꾸어 놓았다고 썼다. 그 뒤로 비슷한 사례를 더 찾아보았는데, 자료를 파고들수록 눈에 들어온 것은 달랐다. 예술이 법을 바꾸었다는 인과를 문서로 증명할 수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었지만, 권력이 예술에 되받아친 기록은 지나칠 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형량이 있고, 압수 목록이 있고, 서한이 있고
황경하 | 재즈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 정수민이 그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잔해 (Remnants)]를 들고 돌아왔다. "남은 것들을 정리했다. 사라진 것, 남겨진 것, 그 사이 어딘가에 있던 것들. 기억은 정확하지 않고, 감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이건 그냥, 그 이후의 소리다." 앨범을 여는 이 짧은 글귀는, 데뷔 이래 줄곧 사회의 소외된 풍경과 인간 내면의 깊은 감정을 탐구해온 그가 도달한 새로운 음악적 경지를 암시한다. 이번 앨범은 사건의 중심이 아닌 그 주변부, 폭풍이 아닌 그 후의 고요함, 기억이 아닌 기억의 흔적을 소리로 그려내는 깊은 사색의 공간이다. 베이스를 든 철학자, 시대를 연주하는 베이시스트 정수민은 현대 한국 재즈 씬에서 가장 뚜렷한 자기 언어를 가진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콘트라베이스라는, 묵묵히 뒤를 받치는 역할에 머무르기 쉬운 악기를 전면에 내세워 시대와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왔다. 그의 철학은 2018년 데뷔 앨범 [Neo-liberalism]에서부터 선명했다.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의 주소를 딴 '강남 478'과 같은 곡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처와 도시의 비정한 이면을 서정적인 재즈 선율로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