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편집부 | 20대 대선을 거치며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문화예술 공약은 그 규모와 지향점에서 예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문화예산 2.5% 시대', '예술인 기본소득', 'K-콘텐츠 초격차 성장' 등 파격적인 키워드로 요약되는 그의 청사진은 'K-컬처'라는 이름 아래 양적, 질적으로 만개한 한국 문화예술의 새로운 도약을 약속하는 듯했다.
이는 예술을 '노동'으로, 문화를 '기본권'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동시에, 거대한 비전 이면에 숨은 재원 마련의 현실성, 정책 실행 과정에서의 균형감, 그리고 국가 주도 성장의 잠재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본지는 그의 공약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한국 문화예술 생태계에 던져진 기대와 과제를 함께 조명해본다.
기대(期待): '예술하기 좋은 나라'를 향한 구체적 로드맵
이재명 후보 공약의 가장 큰 미덕은 문화예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재원'과 '복지'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 했다는 점이다.
1. '문화예산 2.5%'가 열어젖힐 가능성
역대 정권에서 공약으로 등장했으나 번번이 좌절됐던 '문화예산 2%대'의 벽을 넘어 '2.5%'라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한 것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이는 정부 총지출 대비 1.3%대에 정체된 문화예산을 두 배 가까이 늘리겠다는 약속으로, 실현된다면 만성적인 예산 부족에 시달려온 순수예술, 기초연구, 지역 문화 인프라 등 생태계 전반에 '마중물'이 아닌 '실질적 성장 동력'을 공급할 수 있다. 이는 곧 창작 활동의 안정화, 문화시설 운영의 내실화, 그리고 새로운 예술적 시도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담보다.
2. '예술은 노동'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
'예술인 기본소득(연 100만 원)'과 '청년 예술인 1만 시간 지원 프로젝트'는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노동'의 가치로 인정하고, 국가가 그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하겠다는 선언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국가가 청년 예술가를 '마을예술가'로 고용하는 5년 지원 프로젝트는 단기적 지원을 넘어, 청년들이 경력 단절의 공포 없이 창작에 몰두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혁신적인 모델이다. 이는 예술인 고용보험 확대 등 사회안전망 강화 공약과 맞물려, '가난을 증명해야 지원받는' 시혜적 복지에서 '권리로서의 창작 환경 보장'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3. 산업과 순수의 균형을 모색하다
K-팝, 드라마, 웹툰 등 세계를 휩쓰는 K-콘텐츠 산업의 '초격차 성장'을 지원하면서도, 동시에 국민의 '문화기본권'과 '1인 1예술교육', '지역 문화마을 조성' 등을 통해 문화 향유의 저변을 넓히겠다는 전략은 주목할 만하다. 산업적 성과가 국민 전체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했다는 점에서다. 이는 자칫 산업 논리에 매몰될 수 있는 문화 정책에 '사람'과 '지역'이라는 가치를 불어넣으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우려(憂慮): 거대 담론의 그늘과 디테일의 부재
장밋빛 청사진 이면에는 현실적인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특히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실행 방식에 대한 우려는 공약의 '선한 의도'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다.
1. 재원 마련과 '쏠림 현상'의 문제
'문화예산 2.5%'는 가장 매력적인 공약인 동시에 가장 큰 질문을 남긴다. 국방, 복지 등 다른 분야와의 치열한 예산 경쟁 속에서 증세나 구체적인 재원 이전 계획 없이 제시된 목표는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설령 예산이 확보된다 하더라도, 그 분배의 문제가 남는다. '문화수출 50조 원', '글로벌 Big5' 등 가시적이고 정량적인 성과를 강조하는 기조는 결국 예산이 소위 '돈 되는' 장르, 즉 상업적 성공이 보장된 일부 콘텐츠 산업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이는 실험적, 비주류, 순수예술 분야의 고사로 이어질 수 있으며,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2. '예술인 기본소득', 누가 '예술인'인가?
'예술인 기본소득'은 환영할 만한 정책이지만, 그 성공은 '누구를 예술인으로 볼 것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려있다. 현재의 예술인활동증명 제도는 그 기준과 절차를 두고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제도를 성급히 도입할 경우, 지원에서 배제되는 '경계인'을 양산하거나, 자격 심사를 둘러싼 행정력 낭비와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1만 시간 지원 프로젝트' 역시 국가가 고용한 '마을예술가'가 관 주도의 획일적인 사업에 동원되거나, 5년의 지원 기간이 끝난 뒤 다시 막막한 현실로 내몰리는 '기간제 예술가'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세심한 정책 설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3. 국가 주도 성장의 명암(明暗)
공약 전반에 걸쳐 '국가 주도의 강력한 지원'이 강조되는 점은 양날의 검이다. 이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정책 추진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예술 정책의 대원칙을 흔들 수 있다. 거대 자본과 국가의 입김이 강해질수록 창작의 자율성은 위축될 수 있다. 특히 '문화마을 조성'과 같은 지역 사업이 중앙의 시각으로 획일화되거나, 정치적 입김에 따라 지원이 편중되는 과거의 관행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결론: '어떻게'에 달린 한국 문화예술의 미래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문화예술 공약은 한국 사회가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중요한 제안이었음은 분명하다. 재원의 확충, 예술인 복지, 산업적 성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담대한 비전은 예술계에 오랜만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을'이 아닌 '어떻게'이다. 약속된 재원을 어떻게 공정하고 균형 있게 분배할 것인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들을 어떻게 촘촘하게 끌어안을 것인가? 산업의 논리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어떻게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작동시킬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장 친화적인 해답을 마련하는 과정이야말로, 'K-컬처 르네상스'라는 거대 담론을 공허한 구호가 아닌, 살아 숨 쉬는 현실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그의 공약은 우리에게 달콤한 미래를 약속하는 동시에, 그 미래를 제대로 가꾸어 나갈 지혜와 디테일을 요구하는 무거운 과제를 함께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