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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저항, <이상호, 역사를 해부하다>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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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목) ~10월 2일(일)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나무아트 대표 김진하 미술평론가 글, 사진 |

 

‘역사’를 “해부”하는 작가와 작품. “해부”를 한다는 건 역사가 무기물이 아닌 유기체, 즉 생물이란 것을 단서로 한다. 생물을 제대로 알려면 해부를 통해서 직접 관찰하고 확인하는 게 최적의 방법이다. 기괴한 생물체와 같은 한국 근현대사도 마찬가지다. 미증유의 난맥상이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럽게 엮여있어서, “해부”를 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을 만큼 몰상식적이고도 폭력적으로 전개되어와서다.

 

구한말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고 일제강점기를 떵떵거리며 살던 매국노들이, 해방 이후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붙어서 다시 득세하고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이데올로기로 군부 독재권력에 부역하면서 기득권으로 승승장구, 오늘에 이르는 과정 말이다.

 

 

그 와중에 많은 시민의 생명이 산화했고, 거기에 저항하던 지사들은 온갖 폭력과 박해에 목숨을 잃거나 몸과 영혼이 피폐해졌었다. 이런 부조리한 역사를 어찌 자세하게 “해부”하지 않고 제대로 오늘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를 해부하다>전은 바로 그런 근현대사의 모순이 집약된 광주 5.18의 직접 체험으로부터, 한국 근현대사를 하나하나 “해부”하듯 통찰하는 작가 이상호의 자전적·역사적 서사에 대한 미적 언어와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상호의 대표작들이다. 금남로에서 경찰에 쫒기는 자신을 등장시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해서 ‘죽창가’를 부르는 민중의 저항을 표현한 목판화, 1980년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투쟁하다가 산화한 동지들을 간결한 선으로만 맑게 응결시킨 <도청을 지킨 새벽의 전사들>, 반미-반독재 투쟁을 고취 시키는 포스터 형식의 각종 선전미술, 80년대 후반 대공분실에서 지독한 고문을 받은 이후 정신병원에서 겪은 피폐함과 고통을 정직하게 기록한 스케치, 친일파 계보를 민화 형식으로 자세하게 고발한 <일제를 빛낸 사람들> 등의 작품과 함께 미국과 일본의 위선 등을 회화, 목판화, 전통 민화나 탱화 형식을 차용한 일러스트, 드로잉, 포스터와 같은 다양한 양식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상호의 지난 30년 이상의 역사적 사유와 투쟁의 궤적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 전시라 하겠다.

 

돋보이는 것은 이런 비판적이고도 저항적인 내용을 담았으되, 그 형식이 독자적이면서도 각 내용과 주제에 적절하게 밀착하는 다양한 형상 언어에 바탕한 점이다. 이는 이상호의 각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의식과 미술 전반에 대한 성찰이 결코 진부하지 않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뻔한 제도 미술이나 상업성과는 거리를 둔 채 대중들과의 정치적 소통 회로의 확장을 꾀하는 이상호식 모색이, 거기에 맞는 신선한 표현법과 형식적 특성으로 연결되어서 그렇다는 것.

 

 

게다가 1980년대의 저항적 민중미술의 특성에만 머물지 않고, 또 90년대 2000년대 주류미술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각 시기마다의 동시대적 당대성을 담보해내는 조형적 양식의 모던함(그러면서도 우리 전통미술의 감성을 여전히 바탕에 둔)도 돋보인다.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진실한 태도와 애정, 그리고 주체적인 미술관이 견인해내는 결과다.

 

미술을 통한 그의 저항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