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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어머니의 길, 박수근 <나무와 세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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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귀가, 고목과 세 여인 등 다양한 제목으로 소개된 작품
배경, 구도, 서명 위치까지 어머니의 길을 향해 배치

최석태 미술평론가 |

 

 

눈이 내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화면 중간을 차지하고 있는 헐벗은 나무 뒤로 길을 걷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땅도 하늘도 구분이 되지 않을뿐더러 온통 뿌옇다. 보통의 박수근 그림과 달리 이 나무는 그림의 아랫변을 땅으로 삼아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무 아랫부분 밑둥과 가지의 윗부분은 박수근이 잡아낸 장면의 바깥으로 뻗어 있다.

 

나무 뒤로는 머리 위에 무언가를 이고 있는 세 여인이 걷고 있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약간은 지쳐 보인다. 여인네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함지 같은 것을 머리에 얹었으나 위가 볼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팔 것을 다 팔아 거의 비어버린 함지를 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하루가 저물 무렵, 눈이 약간 오는 때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같다.

 

 

나무줄기 한가운데에 크고 작은 가지들이 나뉘어 뻗어간다. 그런데 앞부분에 가지들이 조금만 남은 상태로 잘려져 있다. 굵기로 보아 어느 정도 자란 뒤에 잘려진 것같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바람 잦아지라고 위로 뻗는 가지 세 개만 남겼을까?

 

나무의 전체 모습이 옆으로 누워 있는 것으로 보아, 순탄하게 자랐을 것 같지는 않다. 이 나무 곁을 지나가는 아낙네들처럼 어려운 삶을 살았던 것일까? 해를 맞으려 왼쪽으로 향한 가지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아낙들은 해를 등지고 걷고 있다. 눈 내리는 흐린 날이 아니었다면 앞쪽으로 그림자가 있었을 것이다.

 

박수근은 나무를 가운데 두고, 공간이 넓은 왼쪽에 두 사람 오른쪽에 한 사람을 배치했다. 왼쪽부터 각각 노랑, 빨강 그리고 검정 저고리를 입혔는데, 이 저고리 색들만이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색깔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의 회갈색인 전체 화면에서 검다시피 한 나무와 세 사람의 옷 빛깔 만이 조금 눈에 띄는 담담한 색조의 그림이다. 이를 미술평론가 박용숙은 배경을 색채의 장식으로 메꾸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서 생긴 것이 보는 사람의 상상속에서 넓게넓게 펼쳐지는 공간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색을 볼 수 있다. 박수근은 이 많은 색이 전체 색조를 넘어서지 않으면서 은은하게 드러나도록 수천 번 붓 작업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어둡지만 밝고, 보일 듯 말듯 수많은 색깔만큼이나 많은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러면서도 차분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수천 번의 붓 작업으로 마음을 달래주고 있기 때문이다.

 

간격을 달리하였지만 세 사람을 마치 줄 세우듯 배치했고, 화면 아랫변에서는 약간 올려 그렸다. 수근의 다른 그림과 달리, 발이 닿는 부분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고 배경과 균질하게 처리하였다. 죽은 상태인지도 모르는 나무를 지나, 눈 내리는 으스름에 세 사람이 가는 길이 끝없이 적막해 보이게 하기 위한 것 아닐까? 길은 이미 지나온 길을 포함하여 앞으로 더 멀리 어디론가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나무와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균질하게 처리함으로써 생긴 심리적 공간이다.

 

 

그는 여기에 더해 이 그림에만 있는 특징이라 할 조처를 덧붙였다. 그림을 다 그린 다음 써넣는 이름은, 보통 그림의 아래이거나 어느 쪽이든 귀퉁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세 사람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툭, 채일 수도 있는 위치에 적어놓았다. 아주 드문 예다. 이 그림의 전체 구도는 이 이름쓰기(서명)의 위치와 더불어 특이한 모습이다.

 

박수근은 1960년에 일어난 학생혁명 이후, 전에 없던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 작품은 새로운 그림을 그리던 시기인 1962년에 그려졌다. 하지만 칠하고 말리고 그 위에 다시 칠하고 말리는 일을 되풀이하는 박수근 특유의 화법에서 나오는 질감과 색감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 결과는 흔히 화강암이라고 부르는 쑥돌의 느낌이다.

 

 

화가는 아들에게, 아비가 추구하는 색감과 질감은 이런 것이다 하며 쑥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수근에게는 구현하고자 하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었고, 이를 한평생 추구했던 것이다.

 

박수근의  이 그림에 대한 평은 많지 않다, 그런 가운데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박수근 작품 중에서도 걸작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 여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길이 이제는 그쳤겠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하염없이 길게 이어졌을까! 아이들과 지아비를 먹여살리기 위해 그렇게 이어진 애씀이 그들의 일상을 위험에서 건져내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그림의 가로 길이는 80센티미터이다. 박수근의 작품들 가운데 꽤 큰 편이다.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려면 양손의 손바닥을 펴서 손목을 굽히지 않고 서로 붙여보자. 그 길이와 비슷하다. 수근은 길고 긴 어머니의 길을 작품의 크기, 색, 구도, 심지어 자신의 서명 위치까지 모든 것을 동원하여 표현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이 그림을 비롯해 박수근의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 머리에 무언가를 인 여인을 보면 바로 떠오르는 여인이 있다. 광복 직전에 정신대를 피하려고 16살의 나이에 노총각이던 내 큰 외삼촌과 맺어졌다가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피폐해져 늘 아팠던 남편을 대신해 물고기를 사다 새벽부터 온 산중턱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팔아서 가족을 먹여 살렸던 키 크고 고우셨던 나의 큰 외숙모님이다. 내 주변 친지들 가운데 가장 많이 고생하신 그 분을 어찌 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