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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마음, 이중섭의 연애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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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지 못하는 마음과 환영 받고 싶은 마음을 함께 담아
사랑하는 여인에게 띄운 사랑의 그림

최석태  미술평론가 | 

 

 

그림 한가운데에 소가 보인다. 머리와 앞다리만 보아서는 소가 분명한데 나머지는 물고기 꼬리다. 그러니 괴물이고, 이 괴물은 물에서 튀어오르는 듯 그려졌다. 소의 목 위에는 한 팔로는 뿔 한 쪽을 붙들고, 다른 팔로는 자기를 잡으려고 뻗친 손길을 물리치려는 듯한 인물이 타고 있다. 꼬리 부분에 두 다리를 감듯 올라탄 커다란 인물이 앞에 있는 작은 사람을 잡으려는 듯 한 팔을 뻗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반원을 그리며 왼쪽으로 향한다. 오른쪽 구석에 그려진 연꽃은 꽤 크게 그리고 분홍 빛깔을 칠해, 작은 사람과 마찬가지 빛깔을 띠게 했다.

 

물감으로 칠한 것은 선으로 그리기를 마무리한 다음이 분명하다.  분홍과 파랑이 전부다. 파랑으로 칠한 곳은 바다로 여겨지는데, 그 사이사이에 그려진 물고기들은 웃는 듯한 표정이다. 괴물에 올라타거나 그 사람을 잡으려는 듯한 분위기를 빼면 따스한 분위기가 화면을 지배한다.

 

소를 닮은 괴물이 향한 곳은 육지로 설정한 듯 하다. 소의 입과 오리의 목이 서로 닿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 소를 오리는 반기는 듯하다. 그 곁에는 남자인 듯한 인물이 한 다리는 물에 담그고, 한쪽 팔꿈치를 괴고 다른 쪽 팔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반쯤 누운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남자와 오리 뒤로는 산들이 이어져 있다. 육지와 물이 이루는 경계는 흡사 우리 국토 북동부에 있는 원산만과 모양과 흡사하다. 산봉우리 뒤로 겹쳐 그린 두 줄은 무지개를 암시하는 것일까? 나비와 양으로 보이는 작은 네발 짐승을 곁들여 분위기를 돋군다.

 

이중섭의 엽서 그림에 등장하는 이 남자와 오리는, 같은 해인 1940년 초에 먼저 그려져 그 해 5월 일본에서 열린 제4회 지유텐 공모전에 출품된 <달보기望月>에 나오는 설정과 흡사하다. <달보기望月>의 앞부분에 누워있는 여자는 바로 뒤에 앉아있는 네 발짐승에 기대고 있고, 엽서 그림의 남자는 바로 뒤 오리에 기대고 있다.  

 

그림 속 오리는 이중섭의 속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부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풀어보기로 한다.

이 그림은 이중섭이 사랑하게 된 대학 후배 마사꼬에게 보낸 그림 중 첫 그림이다. 관제 엽서에 그림만 그려서 보낸 것이다. 글로된 사연없이 그림으로만 마음을 전한 것이다. 만만치 않게 복잡한 얼개로 보아 아마도 여러 번에 걸쳐 설정을 고치기를 거듭하였으리라 보인다. 이 그림에 들인 정성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중섭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그렸을까? 필자가 접한 정보들을 이 그림 읽기에 적용해보겠다. 이중섭은 1940년 봄, 일본에서 다니던 분카가쿠잉 미술대학교에 돌아갔다. 그림 그리기에 너무 몰두하여 몸이 상했으므로 휴학을 하고 꽤 쉬었다.

 

 

복학하자마자 2년 뒤의 후배 마사꼬를 보고는 단박에 반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중등과정 졸업 사진첩에 일본에서 날아온 불덩어리가 조선을 태우는 장면을 그려 넣으려 했거나, 다니던 학교의 낡은 과학실을 새로 지으려는 의도로 몰래 불 질러 일본 보험회사의 보상금을 받으려 했던 사람으로서, 이는 스스로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두어 달을 끙끙 앓았다고 한다.

 

결국 사랑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교제를 시작했으나 문제가 있었다. 마사꼬의 예전 남자친구가 징병 당하여 전장으로 가자마자 죽은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 언니의 남편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같은 경우로 죽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마사꼬는 이중섭에게 마음을 열기 어려웠던 것이고, 이중섭은 엽서 그림을 통해 바로 이런 상태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기대앉은 사람으로, 마사꼬가 망설이는 까닭을 소 뒷부분에 간신히 올라타 앞사람을 잡으려 하는 사람에 빗대어 그린 것은 아닐까? 그림을 받아본 마사꼬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 옆에 그려진, 반가와하는 표정의 오리를 보고 웃었으리라. 

 

선을 그은 재료는 무엇일까? 볼펜 자국과 흡사한 이 선들은 먹지를 대고 그어진 것이 확실하다. 이 무렵 아직 볼펜이 실용화되기 이전이다. 먹지를 대고 그리는 방법은, 전하고 싶은 사연이 복잡하고 많았던 이중섭으로서는 작은 화면에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제대로 옮기는 수단으로 적당했던 것 같다. 이후 여러 달 동안의 이런 시도를 넘어서 능숙해졌을 때, 이 방법에서 벗어나 곧장 그리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림의 아래 왼쪽 구석을 살짝 벗어난 곳에 제작 연도를 적었다. 좀 더 앞쪽에 적었을 법한데 그러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서기로 써넣은 연도 앞 빈자리에 점을 찍은 것으로 보아 앞쪽에 무언가를 적었다가 지운 것으로 보인다. 아마 한글로 적은 이름이 아닐까? 이 그림에 이어지는 그림에는 한글 이름쓰기가 빠지지 않으므로 그렇게 짐작해 본다. 이중섭이 지웠을까? 그림을 전해 받은 마사꼬가 지웠을까? 누가 그랬을지는 일단 상상에 맡기자. 그 당시 한글은 이미 사용이 금지된 글자였다.

 

이 그림에 앞서, 사진으로나마 남아있는 이중섭의 그림 중에서 소가 등장하는 그림이 몇 개 있다. 이 그림 이후에는 엽서에 그린 그림들이 적지 않은데, 소는 드물게 나타난다. 그런 것으로 보아 그림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마사꼬에게 그림으로만 사연을 전하고자 보낸 것으로 보인다. 중섭의 첫 엽서이다.

 

뒷면의 소인을 보면 원산에서 보냈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부인도 이전에 원산에서 첫 엽서 그림을 보내 왔다고 증언했다. 원산은 이중섭이 당시 살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