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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의 놀라운 그림 <아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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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문화가 나다!

미술평론가 최석태 |

 

이번에 소개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그림이다! 놀라운 그림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다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림의 이름, 제목이다. <아我>라니! 제목을 보고 놀라고 그림을 보고 다시 놀란다. 그러니 놀라운 그림이라고 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도영은 그림에 무엇을 그렸길래 , <아我>라고 하는 놀랄만한 제목을 붙였을까? 그림 왼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신라와 고려의 옛솥, 질그릇 제기에 무궁화,

술항아리에 술잔, 붓과 벼루 이 모두가 나로다

羅麗 鼎 彝 無窮花/壺觴 筆硯 總 是我

(현대어 풀이, 서예가 김종원 선생)

 

화제 옆에 무진(戊辰) 오월(五月) 관재(貫齊)라고 썼다. 무진은 1928년이다. 이도영이 죽기 6년 전이다. 관재는 이도영의 가장 널리 알려진 호이다. 무진 오월 관재를 요즘식 풀면 이렇다. '1928년 5월 이도영.'

 

그림에 적은 글은 그림의 소재를 따르고 있다. 나오는 순서로 보면, 왼쪽 위에 청동솥이 반나마 그려져 있고, 그릇 어깨에 손잡이인지 뿔인지 모를 것이 솟은 질그릇이 그려져 있다. 그 앞에는 표주박 모양 청자병이 그려져 있고, 받침이 있는 뿔모양 잔이 그려졌다. 뿔모양 잔 옆에는 대나무 문양을 새긴 돌벼루가 보인다. 그 옆에 붓 두 자루를 어긋나게 놓았다. 이런 상태가 그림에 그려진 소재들이다. 벼루나 붓을 제외하면 모두 오래 전 물건들이다.


그림 아래 오른쪽에 찍은 인장에는 황룡(黃龍) 45살(四十五歲)이라고 새겨져 있다. 황룡이라는 것은 그림을 그린 1928년 무진년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그림에 나오는 소재들 중에서 두가지 기물만 좀 더 살펴보자. 화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무궁화가 꽂힌 질그릇이다. 어깨 부분에 손잡이인 듯한 원뿔 모양이 달린 토기다. 한 쪽은 부러져 있다. 조선고적도보 제3권 도1280에 '귀 달린 도가니'란 뜻으로 풀 수 있는 이부감(耳附坩)이라 적은 유물이 나오는데, 이도영 그림의 원뿔 손잡이 토기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싶다. 요즘 나오는 이런저런 도록에는 이 도자기를 이부감이 아닌 다른 말로 부르고 있다. 대략 아울러 보면 이렇다. 쇠뿔 모양 손잡이 달린 입 넓은 항아리.

 

 

또 하나는 둥근 받침 위 원뿔모양 토기다. 소의 뿔을 닮은 잔을 둥근 받침에 얹은 모양이다. 각배라고 널리 부른다. 이것과 똑같은 것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비슷한 설정의 토기는 꽤 있다.  뿔이 받침에 올려진 듯한 것으로, 실제 생김새를 따르면서도 그리면서 단순하게 만든 것이라 보인다.

 

 

이 질그릇들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발굴을 거쳐서야 비로소 우리 눈앞에 놓여진 것임을 우리는 흔히 잊고 있다. 무덤에 묻혀 있던 것이 발굴을 거쳐 박물관에 놓여지고, 도록에 실려서 보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들이 거의 이천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오래 전 문화가 지금도 살아서 찬연하게 빛난다는 것이다.

 

이 그림이 실린 곳은 <여시>라는 월간지이다. 여시는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어버렸다. 일본 강점기부터 자주 되풀이된 불행한 사례의 하나일 뿐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의미가 만만치 않다. 책 거죽을 보면 가장 커다란 글자가 잡지 이름이다. 여시, 부처님 말씀 여시아문을 줄인 것이 분명하겠다. 여시는 이와 같다는 뜻이다. 이와 같다! 

 

책표지 글씨는 김정희 특유의 글씨체다. 해당하는 문자를 김정희의 글씨작품에서 뽑아왔다. 이렇게 꾸민 일을 맡은 사람은 고희동이다. 아마 이름만 내세웠을 뿐, 실제 일은 이도영의 제자로 이 잡지의 주동자 중의 하나인 이용우가 했을 것이다. 여시의 위에 있는 낯선 글자는 범어다. 

 

 

책의 사이사이 별지로 한면에만 인쇄한 도판들을 배치했다. 조선 후기 대화가 김홍도의 그림과 당대 서예가 김돈희의 글씨를 책 앞부분에 담았다. 이어서 사이사이 오세창이 1925년의 대홍수 때 경기도 광주에서 드러난 고구려 때의 기와에 새겨진 글자의 탁본과 함께 곁들인 해제, 문제의 이도영 그림, 바로 이어 이한복이 쓴 김정희에 대한 논문을 배치했다.

 

이어서 곧장 책거죽 글씨를 빌어온 김정희의 도장들을 보여주고, 안견으로 하여금 <꿈에서 노닐던 복숭아밭夢遊桃原圖>을 그리게 한 것으로 유명한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 이용의 글씨를 보여준다. 이용우의 그림도 별지로 인쇄하였다.

 

이 잡지를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의 서예와 그림을 독자에게 보이고 싶어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잡지 이름을 논하는 글도 있다. 이도영의 특이한 그림 제목 <아>도 잡지 이름의 특이함에 맞추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허버트 리드는 유명해진 저서에서 “한 국가의 민족 에토스가 도자예술을 매개로 표현된다. 한 국가의 예술과 그 섬세한 감수성을 되짚어보는 데 도자기야말로 믿을만한 시금석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예술의 의미,1931 출간, 1968 개정; 임산 옮김, 에코리브르, 2006, 46쪽) 

 

그래서일까? 이도영은 대체로 이 그림에서 여러 개의 신라, 가야의 토기 그리고 고려시기 청자 등 여러 시기를 아우르는 그릇들을 배열하여 말 그대로 우리 문화의 찬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에 곁들인 종은 중국이나 일본 등 이웃 나라에는 없는 우리 특유의 것으로, 자신의 취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