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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이 성난 소를 그린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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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최석태 |

 

진짜 나 화 났어! 건드리지 마!

 

이중섭이 소를 자주 그린 화가라고 하지만, 그의 소그림이 젊은 시절에는 어땠는지 잘 모른다. 평안북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중등과정을 거치면서 기숙사나 하숙집 부근에 보이는 소를 적지 않게 그렸다고 한다. 이중섭의 소그림 신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아다시피 전쟁으로 거의 다 없어져 버린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고교 과정에 해당하는 시기에 영어 및 도화 교사로 부임한 임용련 선생이 모든 학년의 교실들에서 이중섭이 그린 수채화들을 보여주면서, ‘미래의 거장으로 예약된 녀석’이라고 했던 수채화들도 하나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소그림으로 가장 초기에 그려진 것은 일본에서 보낸 대학 시절과 그에 이어진 활동 시기에 보이는 소그림 몇 장이다. 소에 대한 그의 관심이 상당히 높았음을 알게 한다. 앞서 소개한 루오 화풍으로 그린 담담한 상태의 소 그림과 확연히 다른 소 그림을 이번에 소개한다. 이 그림도 역시 원작이 아니다. 카메라로 찍고 인화한 도판이 있어서 이를 일간지에 옮긴 것으로, 인화 도판은 없고 일간지에서 오려낸 도판만 남았다.

 

 

화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소의 한쪽 뿔과 부릅뜬 눈 그리고 한껏 힘을 준 콧구멍이다. 화면 왼쪽 면을 어둡게 연출하였으므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소의 오른쪽 머리(관객 입장에서는 왼쪽)부분은 간략하게 처리하고 소의 왼쪽 머리(관객 입장에서는 오른쪽)부분을 유난히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소의 오른쪽 뿔은 배경 색 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아래에 있을 눈도 마찬가지다. 왼쪽 눈은 잘 보이는 정도를 넘어 엄청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부라린 눈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소의 코도 어떻게 그렸는가! 긴장으로 확대된 콧구멍임을 알 수 있다. 앞다리도 왼쪽은 약간 치켜 들었다. 이 연출은 분노로 가득한 것 같은 소의 얼굴 표현을 이어서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고, 머리 뒤로 높게 솟아 보이는 목과 등으로 이어지는 나머지 부분과 조화롭게 마무리된다.

 

지난 번에 소개한 루오풍 그림의 소와 이 분노한 듯한 모습의 소를 그린 시간상 거리가 얼마나 될까? 같은 시기 전시에 출품했기 때문에, 두 그림이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운이 많이 다르니, 시차는 분명 있었을텐데.

 

유채화로 보이는 이 그림은 적당한 어디엔가에 제작 연도를 적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확인은 불가능하다. 신문 인쇄를 하려면 거친 망점 처리를 거쳐서 볼록 인쇄하던 당시 사정으로 보아 세부를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림이 1940년에 그려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마 연초나 봄에 그려져 늦봄과 가을에 전시되었을 것이다. 

 

소를 그리면서 분노한 모습으로 연출한 이중섭의 심정은 어떠한 상태였을까? 이중섭이 머물며 활동하던 일본에서는 그 전 해에 전시 대비 국민징용령을 공포했다. 그 두 달 뒤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함으로써 두 번째의 세계대전이 확실하게 시작되었다.

 

일본이 국민징용령을 내리고 두어 달 뒤에는 조선에서도 실시됐다. 1940년에 들어서자 마자 그 다음 달, 조선인에게 일본식이름을 강요하는 이른바 창씨개명이 강제 실시되었다. 아마 이중섭은 방학을 맞아 조선 원산에 있을 때에 이 소식을 들으며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이중섭이 이 그림을 출품한 전시가 마감된 직후에는 독일이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함락했다. 조선총독부는 그 전 해부터 폐간을 종용하던 그 나마의 민족계 일간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강제로 내지 못하게 했다. 그 이듬해 연말에 일본은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중섭이 화가 난 소를 그리게 되는 까닭이 이런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 소개한 첫번 째 소 그림은 루오를 연상하게 하는 화풍이라고 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 번에 소개하는 화난 소는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고 이런저런 사진을 통해서 본 것에 불과하지만, 왠지 아메리카 들소를 닮았다고 여겨진다. 소 머리 그림 뒷쪽에 솟은듯 높이 올라간 등이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 어지럽기 짝이 없는 시국에 시달리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화가로서의 심정을, 일본도 한국도 아닌 아메리카 들소를 가져와 그린 것일까? 이 즈음 사랑에 빠진 사람과의 관계는 둘 사이를 가로지른 장해를 극복하고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던 것 같다.

 

이중섭은 거의 1년 뒤에 이 소가 머리와 앞발을 치켜 들고 상대방을 향하여 돌진하는 모습으로 그린 그림을 선보인다. 그 소는 <서 있는 소>와는 달리 소를 약간 옆에서 본 광경으로 그려냈다. 그 소는 어떤 소일까? 다음 화에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