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임윤찬과 우리들의 공통점

URL복사

가성비보다는 가심비를 따져야 하는 것이 예술
묵묵히 나의 음악을 하면서 또 다른 임윤찬의 손을 잡는다

[기고] 대구가톨릭대학교 피아노 전공 외래교수 오혜령 |

 

*** (편집자 주) 이 글은 오혜령 교수가 임윤찬의 반 클라이번 콩쿨 우승 직후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다. 오혜령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 전문연주자 및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고, 일산에서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피아노 전공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수님의 글이 수많은 예술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여 뉴스아트에서 청하여 싣는다.

 

 

지금은 반 클라이번 콩쿨 직후라 우승자인 한국의 임윤찬과 그의 노력이 집중적으로 주목을 받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세상에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수많은 연주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누군가는 임윤찬의 우승소식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묵묵히 피아노 앞에 앉아 자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몇 주간은 한국 연주자들의 국제콩쿨 우승 소식이 유독 많이 전해졌었다. 먼저 시벨리우스 콩쿨 우승소식을 전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개인적 친분으로 더 기뻤던 첼리스트 최하영의 퀸 엘리자베스 콩쿨 첼로부문 우승, 그리고 바로 어제 제 16회 반 클라이번 콩쿨의 역대 최연소 우승자 임윤찬까지 굵직한 국제대회에서의 우승소식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일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매일매일 내 이름 앞에 피아니스트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까 주저하고 고민하는, 나 같이 지방대를 나오고 연주자보다는 피아노학원 원장이라는 역할에 훨씬 더 충실한, 한때 화려한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이 소식은 스스로를 조금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18살의 임윤찬. 

 

 

그의 어린 시절이 너무 궁금해 찾아본 바로는, 친구들이 태권도 같은 것을 다닐 때 아무 것도 안 할 수 없어 동네 아파트 상가 피아노학원에서 시작한 피아노로 인해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하다보니 음악이 좋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호영재오디션에 통과하게 되면서 세간에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금호영재오디션은 국내에서 어린 연주자들을 세워주는 가장 유명한 통로가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참가하는 친구들의 수준이 기성연주자만큼이나 높고 경쟁도 치열하다. 음악적인 집안 배경도 없는 친구가 그저 동네 학원에서 뚱땅거리다 금호영재오디션을 거쳐 무대에 선다는 건 말이 쉽지 그 몇 년 간 선생님의 노력과 아이와 부모님의 애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유튜브에 유일하게 하나 있던 11세 임윤찬의 금호영재연주는 사실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최근 금호영재 무대에 서는 초등생이나 중학생의 연주를 직관한 적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테크닉이 다듬어지지 않은 것이 눈에 띄게 느껴졌는데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이들이 용케 그런 아쉬운 부분에도 불구하고 그를 발굴한 것은 신의 한 수였고 임윤찬 본인에게는 큰 행운이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 임윤찬의 금호영재콘서트 연주 장면. 동네에서 평범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10년 가까이 되는 피아노 학원 원장이면서 나 스스로 피아노와 거의 40년 동안 친구처럼 지내다보니 느낌이 각별하다.

 

우리 학원의 아이들을 한 번 다시 떠올려보았다. 행여나 신이 내린 재능인데 테크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빛을 못 보고 내 울타리에 가두어둔 아이가 있지는 않은지, 선생의 그릇이 작아서 더 큰 세상으로 날갯짓 할 수 있는 아이를 막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돌아보기도 했다. 

 

임윤찬은 금호영재오디션을 거쳐 예원학교에 입학하고 한예종 영재로 조기입학했다고 어눌한 말투로 자신을 소개한다. 나라면 그 사이사이에 있었던 힘듦을 내 부족한 언어로 어떻게든 표현해보려 했을텐데 그는 그런 감정은 당연한 것인듯 피아니스트라면 자기안에 느껴지는 용암 같은 음악적 아이디어들을 끄집어내고 표현하기 위해 공부하고 연습하는 노력을 200퍼센트 해야한다고 그저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심지어 연주를 앞두고 매번 녹음을 하면서 거의 대부분 자괴감을 느낀다고도 했으며 그렇지만 어쩌다 한 번 원하는 표현대로 연주가 나왔을 때의 만족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런 것들로 인해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세상의 모든 레퍼토리를 섭렵하고 싶고 스승 손민수 교수를 거의 종교라고 말하며 그의 가르침을 하나도 소홀히 듣지 않고 따르며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 다닐 트리포노프처럼 되고 싶어서 그가 하는 방식대로 레퍼토리 노트를 작성하며 어떤 프로그램을 연주할 지 계획을 세워보는 귀여움도 가지고 있었다. 

 

동질감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안되겠지만 동고동락이라는 말도 있으니 한 번 이야기해보자면, 같이 피아노를 연습하고 연주하는 사람들끼리 말 안해도 통하는 것이 분명 있다. 아니 아주 많다. 업계이야기라고 해도 좋고, 음대생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뭐든 상관없다. 

 

그 안에는 분명 아주 짧은 시간의 만족과 인정과 보상을 위해 긴긴 시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을 방황하는 듯한 연습기간들이 있다. 아무도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 삶이지만 가끔 전해지는 동료나 선후배들의 우승소식 같은 것들이 우리를 자극해주고 채찍질해 준다. 

 

동력이 뭐가 됐든 우리는 매일 연습하고 매일 피아노를 생각하며 음악을 밥먹듯 듣는다. "가성비"가 몹시 떨어지는 일, 그것이 바로 연습이다. 오히려 가성비 보다는 "가심비"를 따지는 것이 바로 연습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아무리 비싼 댓가를 치르더라도 내가 정말 원하고 꿈꾸던 순간을 만나고 싶은 마음. 그거 하나로 오늘도 세계 곳곳의 연습실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 갖가지 악기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런 속도 모르고 지나가는 말로 멋지다, 부럽다며 던지는 말들에는 가벼운 미소로 웃어넘길 여유도 지니고 있다. 

 

그 오랜 시간의 피눈물나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누군가는 큰 운이 따라서 받게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 받을까 말까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나는 클래식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대중적이지도 않고 돈이 되지도 않는 일이라서 다른 길을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내가 다시 태어나야하는 일임을 깨닫고 얼른 정신차렸다. 앞으로도 나는 어제처럼 음악을 사랑할 것이고 나보다 훨씬 쉽게 앞서는 듯 보이는 사람들에게 박수도 보내며 그렇게 묵묵히 나의 음악을 할 것이다. 

 

내 뒤에서 힘겹게 함께 걷는 사람들의 손도 잡아주고 싶다. 어린 임윤찬에게 누군가 손내밀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임윤찬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신이 모두에게 똑같이 음악이라는 재능을 주셨지만 내 안에 던져진 씨앗은 2022년 오늘 이런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가꾸어 열매를 맺을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다. 
 

(오혜령 교수의 더 많은 글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