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가시없는 조각자나무 노거수

URL복사

나무컬럼니스트 이동고 |

 

식물 중에서 가시가 있는 나무들은 전통적으로 귀한 나무로 여긴다. 예수님 면류관은 가시가 있는 나무다. 가시 달린 나무는 고난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신성시하기도 한다. 전통가옥에서는 방에 들어가는 입구에 엄나무 가지를 엑스 자로 묶어 놓아 액운이 방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벽사의 의미로 내걸기도 했다.

 

콩과 식물인 아까시나무에 가시가 많듯, 같은 과인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도 가시가 많다. 콩과 식물이 초식동물들이 탐내는 좋은 먹이감이라는 걸 증명이나 하듯이 말이다.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는 겉모양이 비슷한데 두 가지가 크게 다르다. 주엽나무 가시는 단면이 납작한 편이고 열매 꼬투리가 꼬인다. 이에 비해 조각자나무는 가시 단면이 둥글고 꼬투리가 꼬이지 않는다.

 

 

주엽나무는 우리 자생나무이고 조각자나무(중국 주엽나무)는 중국 남부에서 들여온 나무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고향마을인 경주 양동마을에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조각자나무가 심겨져 있다. 회재 선생은 중국에 사신으로 간 적이 없으므로 중국을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씨앗을 얻어 심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울산시 울주군 온광읍 내광리 28-3번지에도 조각자나무 노거수가 자라고 있다. 안내판에는 250년 정도로 추정하는데 바로 옆에 사는 할머니는 ‘시할아버지가 지인에게 얻어와 심었다’고 하니 대략 맞아떨어진다. 이 나무는 14미터 높이까지 자라고 있어 개울가 생육좋은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대략 400~500살 정도까지 추정할 수 있다. 할머니가 전해 들은 이야기라면 더 윗대 분이 심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개울가에 딱 붙어 심어서 그런지 가지들이 아래로 휘휘 늘어져 자라고 있어, ‘처진 조각자나무’로 보고하기도 했다.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와 달리 내광리 조각자나무는 신기하게도 가시가 거의 없다. 구순 넘은 할머니 증언에 의하면 지금 오십이 넘은 막내아들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놀았다고 하니 청년목일 때부터 가시가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독특한 유전자를 가진 나무로 봐야 할 것이다.

 

 

이웃 할머니들 증언에 따르면 봄철 이파리가 나는 정도를 보고 풍흉년을 점치기도 했는데, 올해는 한발이 심해 잎사귀들이 부실하다고 하였다. 중간중간에 가지도 말라 있다. 꼬투리도 달리긴 했지만 씨앗이 든 것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근방에 짝이 없는 이역만리에서 온 나무.

 

어느 약초 전문가는 어릴 때 조각자나무 열매를 주워서 껍질을 찢어 보면 노란색이 나는 꿀이 들어 있는데, 그것을 열심히 빨아먹고 있노라면 그 달콤한 맛에 취해 배고픔도 잊었던 어릴 때 추억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주염떡‘(쥐엄떡, 인절미를 송편처럼 빚어 팥소를 넣고 콩가루를 묻힌 떡)에 빗대어 '주염나무' 또는 '쥐엄나무'라고도 한다.

 

날카로운 가시로부터 연유한 처방일까? 피부에 고름이 생기는 각종 종기나 부스럼에 약으로 쓰였다. 한편, 대풍(大風, 한센병의 옛이름)에도 쓰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한센병 자체를 치료했다기보다는 그 가시로 동반하는 고름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할머니는 노거수로 지정된 다음부터, 간간이 나무에 영양제를 놔주러 사람들이 오긴 하지만, 마당에 꽃이며 가을잎들이 떨어지면 청소하기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고 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이 나무가 귀한 나무로 기사로 나간 뒤 사람들이 종종 이 나무를 보러 온다’면서, 이 나무를 보러오는 젊은 사람으로 인해 심심하지는 않다고 하였다.

 

 

“또 보러 오겠습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

 

혹 이 나무 만나거든 날카로운 가시 하나 떼서 방문 앞에 매달아 둬 보셔도 좋다. 예전에도 원인도 모를 감염병 창궐하는 시기에 뭐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