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고 나무컬럼니스트 | 전설같은 엣날 이야기. 옛날 지구에 '연달뫼'라는 산이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올 때면 이름 모를 꽃이 온 산을 덮었지만 산은 높고 험해서 그 산에 올라가 본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꽃들은 해마다 봐주는 이도 없이 외롭게 피었다가 쓸쓸하게 지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하늘에 있던 두 천사가 하느님께 죄를 지어 이 산으로 귀양을 와, 그 꽃을 따먹고 살게 되었다. 그 이후로 적막하던 그 산은 즐거움이 넘치는 산으로 변했다. 천사들의 노래와 춤이 끊일 사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산 밑에 살던 나무꾼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 산을 반드시 오르겠다는 마음으로 손발에 가시가 찔려가며 드디어 산에 올랐다. 밑에서는 똥긋한 산봉오리인 줄 알았는데 산 정상은 의외로 널직한 데 놀랐다. 게다가 어디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여기는 천사나라 인간은 못 오는 데 연달산은 하늘산 인간은 못 올라오는 곳 향기 좋고 빛 고흔 이 꽃, 인간은 먹지 못하는 것 향기 좋고 빛 고흔 이 꽃, 무엇이라 이름 질까 연달산에 피는 꽃이니 연달래꽃이라 할까 연달래들이 피는 숲 속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를 따라 갔더니 거기에 아
나무컬럼니스트 이동고 | 음식의 간이 맞지 않아 매우 짜거나 쓴맛이 나면 흔히 ‘소태맛’이라고 한다. 쓴맛은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되는 맛이라 안전을 위해서도 사용한다. 유아들이 삼키기 쉬운 크기가 작은 장난감이나 마시면 위험한 부동액이나 농약 등에는 강한 쓴맛을 느끼게 하는 비트렉스(Bitrex)라는 물질이 첨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 이 쓴맛에 대해 거부반응이 커서 어른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 아이들이 알칼로이드를 함유한 채소를 싫어하는 이유가 다 있다. 쓴맛 수용체가 어른보다 7배 정도 더 많아 알칼로이드 쓴맛이 약해도 아이들에게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쓴 약을 먹일 때는 한판 전쟁을 치르고, 사탕은 보상이다. 소태나무 껍질은 아주 쓴맛이 강하다. 소태나무는 한자로 고수(苦樹), 고목(苦木) 등이다. 그 맛을 본 사람은 드물겠지만, 소의 태(胎)가 쓴맛이 강하다는 데에서 소태나무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소의 태반이나 탯줄은 그저 물컹하고 질기기만 할 뿐 별다른 맛이 나지 않는다. 혹 쓸개라면 모를까. 실제로 중국의 소태나무 별칭 가운데 하나가 웅담수(熊膽樹)다. 예전에는 따로 간식을 만
나무컬럼니스트 이동고 | 오리나무와 굴피나무가 살아가는 조건은 비슷하다. 물이 가까운 개울가에 습한 곳에 살아간다. 흔히 콩과식물만 질소고정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식물이 근균을 이용해 공중질소를 직접 이용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아까시나무, 자귀나무, 싸리나무, 붉나무, 등나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자작나무과 식물인 사방오리, 산오리, 오리나무 등도, 또 보리수나무, 보리장나무도 그러하다. 전통적으로 이런 식물을 비료목이라 부른다. 이러한 식물들은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흙을 거름지게 하고 미생물을 풍부하게 만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도로공사를 끝낸 마감처리용으로 는 단풍이 좋은 붉나무는 단연 인기인지라 어디든지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양지마을 어른의 말에 의하면 봄철 논에 넣는 생거름으로는 굴피나무 잎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오리나무 종류보다 더 좋은 거름이라고. 굴피나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비료목이 아닐까. 굴피나무는 가래나무과 흔히 자라는 나무이다. 일반 농가는 지붕을 잇는 재료로 볏짚이 가장 흔하지만 산간지방에는 귀한 재료라 굴피나무나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굴피집’이라고 부른다. 흔히 굴피집
나무칼럼니스트 이동고 | 8년 전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여행한 적이 있다. 차를 달려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과수원 지역이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무엇을 키우는지 궁금했는데 안내자가 사과배 과수원이라고 했다. 마침 배꽃이 피는 5월이라 차를 잠시 멈춰 달라고 부탁하고는 사진을 찍었다. 이 사과배는 대략 120여 년 전에 탄생했는데 사과배는 조선족 농경 문화의 축소판이자 조선족이 중국 땅에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연변을 대표하는 과일인 사과배 탄생비화는 이러하다. 1897년 함경북도 경성군 주남면 용정동에서 살던 가난한 선비 최병일 선생은, 일제의 탄압과 시달림 속에서 조선의 운명이 다해감을 감지하고는 식솔을 거느리고 중국 용정 노두구진 소기촌을 이주했다. 당시 아들 최창호는 막 스물을 넘긴 나이였는데 할아버지가 러시아에서 벌어온 돈으로 총 10여 ㏊의 땅을 사들였다. 논농사와 밭농사 외에 과수원을 꾸리고 양봉업을 벌였다. 산등성이 비탈에 살구, 오얏, 배, 복숭아, 찔광이(산사 열매)와 돌배나무를 줄지어 심었다. 1921년, 원예지식도 풍부했던 최창호는 조선의 고향으로 다녀오는 동생 최두범에게 부탁해
나무컬럼니스트 이동고 | 식물 중에서 가시가 있는 나무들은 전통적으로 귀한 나무로 여긴다. 예수님 면류관은 가시가 있는 나무다. 가시 달린 나무는 고난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신성시하기도 한다. 전통가옥에서는 방에 들어가는 입구에 엄나무 가지를 엑스 자로 묶어 놓아 액운이 방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벽사의 의미로 내걸기도 했다. 콩과 식물인 아까시나무에 가시가 많듯, 같은 과인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도 가시가 많다. 콩과 식물이 초식동물들이 탐내는 좋은 먹이감이라는 걸 증명이나 하듯이 말이다.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는 겉모양이 비슷한데 두 가지가 크게 다르다. 주엽나무 가시는 단면이 납작한 편이고 열매 꼬투리가 꼬인다. 이에 비해 조각자나무는 가시 단면이 둥글고 꼬투리가 꼬이지 않는다. 주엽나무는 우리 자생나무이고 조각자나무(중국 주엽나무)는 중국 남부에서 들여온 나무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고향마을인 경주 양동마을에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조각자나무가 심겨져 있다. 회재 선생은 중국에 사신으로 간 적이 없으므로 중국을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씨앗을 얻어 심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울산시 울주군 온광읍 내광리 28-3번지에도 조각자나무 노거수가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