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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강한 굴피나무, 350년 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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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 두서면 전읍리 양지마을 굴피나무
삼국시대에 쓰임새 많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나무컬럼니스트 이동고 |

 

오리나무와 굴피나무가 살아가는 조건은 비슷하다. 물이 가까운 개울가에 습한 곳에 살아간다. 흔히 콩과식물만 질소고정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식물이 근균을 이용해 공중질소를 직접 이용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아까시나무, 자귀나무, 싸리나무, 붉나무, 등나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자작나무과 식물인 사방오리, 산오리, 오리나무 등도, 또 보리수나무, 보리장나무도 그러하다.

 

전통적으로 이런 식물을 비료목이라 부른다. 이러한 식물들은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흙을 거름지게 하고 미생물을 풍부하게 만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도로공사를 끝낸 마감처리용으로 는 단풍이 좋은 붉나무는 단연 인기인지라 어디든지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양지마을 어른의 말에 의하면 봄철 논에 넣는 생거름으로는 굴피나무 잎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오리나무 종류보다 더 좋은 거름이라고. 굴피나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비료목이 아닐까. 

 

 

굴피나무는 가래나무과 흔히 자라는 나무이다. 일반 농가는 지붕을 잇는 재료로 볏짚이 가장 흔하지만 산간지방에는 귀한 재료라 굴피나무나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굴피집’이라고 부른다. 

 

흔히 굴피집은 굴참나무 껍질만을 이용했다고 하지만 이름 자체가 ‘굴피’인 나무를 빼놓을 순 없다. 다만 지금은 굴피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은 집을 발견할 수가 없다.

 

 

오래전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부터 한반도의 중부 이남 지역에는 굴피나무가 일찌감치 우세종으로 널리 자라고 있었다.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굴피나무가 빠지지 않고 출토되고 있다. 3∼4천 년 전의 논농사 유적지인 울산 옥현리의 청동기 유적지에서 나왔다.

 

역사시대 이후에는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서 출토된 원삼국시대에는 목관으로 출토된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거목도 많았고 최고의 나무로 대접받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선착장으로 추정하는 울산 반구동 유적지에서도 2열 목책(木柵)나무의 일부로 온전한 채로 발견되었다. 해상왕 장보고의 유적지가 있는 완도군 장도를 둘러싼 목책을 세우는 통나무 용도로 비자나무와 함께 섞여 있었다. 그 시절의 굴피나무는 두세 아름은 거뜬히 넘기는 재질이 좋은 나무였고, 거목으로 자란 껍질은 코르크층도 두껍게 발달했을 것이다.

 

 

굴참나무나 굴피나무는 코르크 껍질을 벗겨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이것도 두꺼운 껍질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 보인다. 

 

그 좋던 굴피나무 재목은 지금은 도태되어 거목이 없는 잡목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가운데 굴피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굴피나무 노거수는 울산 노거수 280여 그루 가운데서 전읍리 양지마을에 딱 한 그루밖에 없다. 아직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가 없으니 전읍리 굴피나무의 가치를 새롭게 볼 필요성이 있다.

 

굴피나무 껍질에는 독성분이 있어 가루로 내서 물에 풀거나 그물에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만큼 물에 친숙해서 물에 썩지 않고 잘 견디기에 항구용 목책이나 비를 견디는 지붕재, 섬유질을 뽑아 그물로 활용했다. 또 굴피나무는 무릎 관절이 붓고 물이 차서 아픈 통증에  쓰는 민간특효약으로 알려져 있다. 
 

 

전읍리 굴피나무가 자라고 있는 언덕은, 예전에는 갖가지 나무로 뒤덮인 숲이었다고 한다. 시야가 확 트인 마을 입구 언덕에 자리 잡아 마을로 오가는 이를 잘 볼 수 있고, 겨울철 찬바람도 막아주어 신성시한 비보림이자 방풍림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굴피나무는 오랜 기간 당산나무였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굴피나무 원둥치는 썩어 없어져 일부 가지만 남은 것이라니 현재 굴피나무 350년의 2~3배를 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양지마을 숲은 서나무와 느티나무가 섞여 거대한 그늘이 되었고, 평상을 이어 붙여 누런 벼들이 익어가는 확 트인 경치를 내다보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마침 말복이었고 가져간 수박 한 덩이로 동네 어르신들 다 모여 나눠먹는 소박한 행사가 되어 모두 흐믓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