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편집부 | 한국 인디 음악의 산증인 허클베리핀이 오는 12월 13일 토요일, 서울 홍대 롤링홀에서 스물한 번째 '옐로우 콘서트'를 개최한다. 2004년부터 이어온 밴드의 대표 브랜드 공연인 옐로우 콘서트는 이번 무대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24년 만에 전곡 재녹음을 완료한 2집 '나를 닮은 사내'의 수록곡들이 라이브로 처음 선보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한 무대에서 만나는 이 특별한 밤을 앞두고, 오랜 팬들과 음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97년 결성된 허클베리핀은 한국 인디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1집 '18일의 수요일'과 3집을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올린 저력 있는 밴드로, 2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 리더 이기용을 중심으로 보컬 이소영, 그리고 기타와 드럼,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성장규로 구성된 현재의 라인업은 서정적 록 사운드라는 허클베리핀만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다져왔다.

2001년 발매된 2집 '나를 닮은 사내'는 밴드 역사에서 전환점과 같은 앨범이다. 그런지 록 색채가 강했던 1집 이후, 보컬 이소영이 정식 합류하며 밴드의 음악적 방향성이 확립된 작품이었다. 바이올린 등 다채로운 악기 편성을 통해 허클베리핀 특유의 관조적이고 쓸쓸한 서정성을 구축했고, 평단의 찬사와 함께 '허클매니아'라는 견고한 팬덤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막', 'Somebody To Love', 'Em', '길을 걷다', '고양이' 등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곡들이 바로 이 앨범에 담겨 있다.

그러나 리더 이기용에게 이 앨범은 오랫동안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는 "2집 '나를 닮은 사내'는 오랜 시간 아픈 손가락이었다. 당시 저희가 가진 역량과 회사의 촉박한 일정 속에서, 노래들이 가진 본연의 가능성을 온전히 피워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다"고 고백했다. 평단의 좋은 평가와는 별개로 아티스트 스스로 느끼는 아쉬움은 선명했다. 이기용은 "던져 놓고 수습하지 못하는 작편곡의 엉성함이 심각했다.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으나 창작 단계에서의 허점이 너무 많았다. 나의 실력 부족 탓"이라며 당시를 돌아봤다.
이러한 창작자의 오랜 갈증은 결국 행동으로 이어졌다. 밴드는 8년 전 음원 유통사에 두 곡을 제외한 2집의 스트리밍 서비스 중단을 요청했고, 올해 늦가을이 되어서야 모든 곡의 재녹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기용은 "무엇보다 당시 음반을 들어준 청자들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도 컸다. 이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져 부끄러움을 더한 일종의 죄책감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재녹음 프로젝트는 단순한 음질 개선이나 리마스터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기용은 "24년의 세월을 지나 비로소 우리가 들려주고 싶었던 사운드와 편곡으로, 그 노래들에게 마땅히 주었어야 할 완전한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은 과거에 대한 저희의 대답이자, 이 노래들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드리는 저희의 진심"이라고 덧붙였다.
2집의 음악적 뿌리에 대해서도 이기용은 상세히 밝혔다. 그는 "사실 이 음반의 컨셉은 1집 활동 당시 이미 어느 정도 구상되어 있었다. 스트레이트한 그런지 록으로 가득했던 1집을 만들면서, 다음 앨범은 록을 기반으로 하되 어쿠스틱한 감성이 더 많이 녹아든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많은 이들이 허클베리핀을 너바나의 영향을 받은 밴드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는 같은 시기의 스매싱 펌킨스나 벡의 초기 포크 앨범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루 리드의 서정적인 트랙들을 허클베리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막', 'Somebody To Love', '길들여진 개', 'Em', '길을 걷다' 같은 곡들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실제 작업 과정에서 편곡과 가사는 상당 부분 바뀌었다. 기타, 신스, 드럼, 프로그래밍과 함께 한 곡을 제외한 전곡의 믹싱과 마스터링을 맡은 멤버 성장규는 "단순히 복원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밴드가 과거의 곡을 다시 해석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제가 밴드에 없던 시절의 곡들을 지금의 기술로 다시 작업한다는 건 정말 묘한 기분이었다. 마치 2001년의 장면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달까. 그때의 그림 안에 쏙 들어가서 함께 있는 느낌이었다"고 작업 당시의 감회를 밝혔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24년의 간극은 컸다. 성장규는 "그때보다 훨씬 세밀하게 다룰 수 있고, 발매된 지 24년이 지난 지금은 기술적으로도 너무 달라졌다. 그 시절엔 스튜디오에서만 볼 수 있던 큰 콘솔 앞에서 녹음했었지만, 이제는 작업실의 컴퓨터 한 대로 거의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고백했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건 기타 톤이었다. 특히 '고양이'는 라이브로도 오랫동안 하지 않아서 어떤 질감으로 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남아 있던 2001년 당시의 기타 톤을 참고하되, 지금의 감각으로 조금 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2집에는 'Somebody To Love', 'Silver', '길을 걷다', '사막', 'Em'처럼 록 밴드에서는 드물게 현악기가 많이 들어가 있어, 기타와 보컬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는 것도 큰 과제였다고 한다.
성장규는 이번 작업의 방향성에 대해 "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너무 깨끗하지만은 않고, 그래도 거칠게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깔끔했으면 하는, 어쩌면 앞뒤가 맞지 않는 생각들을 오가며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작업 막바지에는 컴퓨터가 한계까지 갈 정도로 고된 과정이었지만, 그는 "중요한 건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았다는 것. 그게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재탄생한 곡들은 원곡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선공개된 '사막'과 'Em'은 원곡에 비해 유려한 선율과 흐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었다. 허클베리핀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2001년 원곡과 2025년 재녹음 버전을 동일 구간으로 비교 청취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어, 24년 사이 달라진 사운드의 깊이와 선명함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음악계 동료들의 반응도 뜨겁다. 음악평론가이자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인 배순탁은 "어떤 음악은 단지 듣는 것을 넘어 세계를 보고, 그것과 마주하게 한다. 허클베리핀의 음악이 나에겐 그랬다"며 "24년의 역사 속에서 그들은 깊어지는 동시에 넓어졌다. 허클베리핀 역사의 복원을 넘어선 계승이자 총합이라 할 만하다. 이렇듯 때로는 현재가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이리라"고 평했다.
음악가 단편선은 허클베리핀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깊은 소감을 전했다. "허클베리핀을 처음 들었던 때를 되짚어보려면,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처음 허클베리핀의 음악을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압도감이었다. 어딘가 로파이한 사운드였지만, 그 소리들 속에서는 어떤 작가적인 정신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스스로 고독함을 택한, 외골수적인 정신 같은 것." 그는 새 버전에 대해 "한때 처절함이 강조되던 '길들여진 개' 같은 곡은 따뜻한 포크팝으로 다시 태어났다"며 "이런 시도들은 내게 중년의 필치로 다시 매만져진 오래된 산문처럼 느껴진다. 익숙한 풍경 같지만, 실은 처음 와보는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윤덕원은 "음악가는 음반이라는 닻을 던져둔 채로 항해하는 배가 아닐까"라는 비유로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를 짚었다. "한번 발표된 노래를 다시 녹음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지난 작업에 남아있는 아쉬움과 마주해야 하고, 그곳에 자리 잡은 아우라를 이겨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자신의 노래를 지속적으로 부르고 연주해온 사람만이 가능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는 "멈추지 않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불변의 아름다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뉴시스 이재훈 기자는 밴드 이름의 유래와 연결 지어 이번 작업을 해석했다. "허클베리핀과 음악 사이는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핀' 속 허크와 짐의 관계에 대한 환유다. 허크는 똑똑한 흑인노예 짐을 어둠으로 돌려보내지 않기 위해, 기준을 세우고 끝까지 그와 함께 한다. 허클베리핀의 2집 재녹음 프로젝트도 그렇다. 그건 삶의 회고, 경험의 회귀, 생명의 회복으로 수렴한다."

12월 13일 옐로우 콘서트는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곡들이 무대 위에서 어떤 울림을 만들어낼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다. 2004년부터 21년간 이어온 옐로우 콘서트라는 이름 위에, 24년 만에 완성된 숙원이 더해지는 셈이다. 이기용은 "아무도 우리에게 이 앨범의 재녹음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 음반이 과거에 특별히 사랑받았던 것도 아니며,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이 노래들이 가지고 있었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살려내고 싶었고, 청자들에게 보다 정돈된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그들에 대한 오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국 인디 씬에서 아티스트가 상업적 목적이 아닌 순수한 창작 의지로 과거 앨범 전체를 재녹음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허클베리핀의 이번 시도는 한 시대의 걸작이 창작자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며, 한국 인디 음악의 아카이빙과 재해석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밤, 24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허클베리핀의 음악적 여정이 롤링홀에서 펼쳐진다.
예매: https://smartstore.naver.com/shalabel/products/124115895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