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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페 2026: 예술적 탁월성과 사회정의가 교차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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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거장부터 동시대 작가까지, 약 200점의 작품으로 읽는 한국 현대미술 50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가 다수 참여
95% 상환율이 증명한 예술가들의 존엄
2026년 1월 14-26일, 인사아트센터 G&J갤러리

 

뉴스아트 편집부 | 2026년 1월, 인사아트센터 3층 G&J갤러리는 한국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역사를 펼쳐 보인다. '씨앗페(SAF) 2026'은 약 200여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대규모 전시다. 민중미술 1세대부터 신진 작가까지 삼대에 걸친 예술적 대화가 한 공간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가 다수 포함, 2025년 김종영미술상 수상작가 김주호, 2021년 FNK Photography Award 수상작가 손은영 등 제도권 미술계의 검증을 통과한 작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전시는 예술적 우수성과 사회정의라는 두 축을 동시에 다룬다. 한국 예술가 23만 명이 겪는 금융 차별 문제를 가시화하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협동조합의 3년 실험을 작품의 질로 입증한다. 95% 상환율이라는 데이터는 예술가들의 경제적 책임성을 증명하고,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작가들의 예술적 역량을 보여준다.

 

전시 맥락과 큐레이토리얼 프레임

 

씨앗페 2026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특정한 계보를 추적한다.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에서 출발해 2020년대 동시대 미술까지 이어지는 흐름이다. 이 전시가 주목하는 건 형식적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현실과 대면하는 예술'이라는 정신적 계승이다.

 

1980년대에 형성된 사회참여 미술의 전통은 이 전시의 중요한 배경이다. 신학철, 주재환, 류연복, 이윤엽으로 이어지는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물이 아니다. 이들은 극사실주의, 포토몽타주, 목판화라는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시대정신을 형상화했다.

 

이 전시의 큐레이토리얼 전략은 세대 간 대화 구조에 있다. 원로 작가들의 역사의식이 중견 작가들에게서는 일상의 서정으로, 신진 작가들에게서는 정체성 탐구로 변주된다. 김준권과 이철수의 목판화가 보여주는 장인정신은 송광연의 아크릴 자수화 기법에서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 손은영의 사진작업이 구현하는 기억의 공간은 신학철의 역사화가 다루는 집단기억과 다른 층위에서 공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라는 제도적 승인을 받은 작가들이 다수 참여한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신학철의 '묵시 802', 주재환의 '아침 햇살', 최윤정의 Pop Kids 시리즈 등은 이미 미술관 아카이브에 편입된 작품들이다. 이는 이 전시가 단순히 사회운동의 일환이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의 정전(正典) 형성 과정과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신학철: 역사의 극사실

 

 

1943년생 신학철은 민중미술의 전설적 인물이다. 그가 출품한 '한국현대사-유월항쟁도'는 이번 전시 최고가 작품 중 하나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1970년대 초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창립 멤버로 실험미술에 참여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신군부 독재에 직면하면서 작업의 방향을 급격히 선회한다.

 

극사실주의 기법과 포토몽타주의 결합. 이것이 신학철 회화의 형식적 특징이다. 수백 장의 사진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화면 위에서 재배치하며, 마치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려낸다. 작가의 손을 거친 사진은 더 이상 중립적 기록이 아니다. 노동자, 중산층,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미화되지 않은 채로 화면에 등장하고, 이들의 얼굴은 역사의 구체적 실체를 증언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묵시 802'(1980)는 그의 작업방식을 잘 보여준다. 구두 모양 얼굴을 한 샐러리맨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응시하는 초현실적 광경. 일방적 정보 흐름과 억압된 표현의 자유를 풍자하는 이 작품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서울시립미술관 역시 그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으며, 2024년 부산비엔날레 참여로 그의 현역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김준권: 진경산수의 현대적 부활

 

 

1956년 전남 영암 출생, 김준권은 한국 목판화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1994년부터 3년간 중국 루쉰(魯迅)미술대학 목판화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50년 가까운 작업 기간 동안 1,500점이 넘는 목판화를 제작했다. 이번 전시에는 '푸른 소나무'와 '섬진淸流-2' 두 점이 출품됐다.

 

김준권의 수성 다색목판화는 기술적으로 대단히 까다롭다. 한 작품에 5-6개의 판을 파고, 각 판을 정확히 맞춰 찍어야 한다. 물감 농도 조절, 종이의 습도 관리, 찍는 힘의 강약까지 모든 단계가 장인의 감각을 요구한다. 이 노동집약적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들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미학적 계보를 잇는다.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로 이어지는 전통. 김준권은 이 도상학적 전통을 목판화라는 매체로 번역한다. '우리 땅-우리의 진경'이라는 고전적 명제에 충실하면서도, 민중미술운동 참여 경험은 그의 산수화에 현실의식을 부여한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린 작품 '산운'의 작가가 바로 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중국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22년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전시, 2024년 여러 미술관 순회전 등 활발한 전시 활동은 그가 여전히 현역임을 증명한다. 한국 목판문화원 원장으로서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이철수: 저항에서 영성으로

 

 

1954년 서울 출생, 이철수는 한국 판화계의 또 다른 거장이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길을 연 그는 1981년 첫 개인전 이후 데뷔 40년을 넘긴 원로 작가다. 

 

1980년대 민중판화가로 출발한 이철수의 작업은 1990년대 들어 큰 전환을 맞는다. 독일 순회전(1989) 직후 그는 충북 제천 천등산 박달재 아래로 낙향한다. 25년간 농사와 판화를 병행하며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꾼다. 수확물의 80%를 이웃과 나누는 공동체적 삶, 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로서의 사회활동, 그리고 선(禪) 사상에 대한 깊은 천착.

 

'무문관'은 선불교 공안(公案) 수행의 고전이다. 48개 화두를 담은 이 책을 이철수는 50장의 목판화로 풀어낸다. 칼로 나무를 파는 행위 자체가 수행이 되고, 판화는 명상의 결과물이 된다. 1980년대 저항의 미학에서 2000년대 영성의 미학으로. 이 긴 여정을 '무문관' 연작은 압축한다.

 

독일, 스위스, 미국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권정생 선생의 동화에 그림을 그려 여러 권의 그림책을 펴냈다.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 '배꽃 하얗게 피던 밤에', '오늘도 그립습니다' 등 20여 권의 책을 통해 문학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목판화가이자 환경운동가이자 영성 탐구자. 이철수의 작업은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통합적 실천의 사례다.

 

김주호: 일상의 조형시학

 

 

1949년생, 76세의 조각가 김주호는 2025년 김종영미술상 수상자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정통 조각가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제도권 조각의 무게를 거부한다. 강화도 내가면에서 33년째 전업작가로 살며, 밭 갈고 포도 심으며 예술과 노동을 구분하지 않는다.

 

'내 손끝에 은하수' 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김주호의 조각은 우주적 상상력과 일상적 감각을 동시에 담는다. 질구이(terracotta) 기법으로 빚어낸 인물들은 노래방에 모인 사람들, 돋보기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 세상을 향해 "조오타!"를 외치는 유쾌한 존재들이다.

 

거대하고 권위적인 조각과는 정반대 지점. 김주호의 작품은 친근하고 인간적이다. 흙이라는 가장 원초적 재료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양미술에 주눅들지 않고 '우리 것'을 찾아낸 뚝심. 일상의 생생한 풍경을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기지로 표현하는 능력. 김종영미술상 심사위원들은 이 점을 높이 평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소마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3년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 선정되는 등 제도권 인정도 받았지만, 그의 작업 근거지는 여전히 강화도 외포리다. 사람과 일상의 풍경을 관찰하고, 이를 작가 특유의 사색과 여유로 재해석하는 일. 김주호에게 예술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연장이다.

 

손은영: 사진이 기억하는 집

 

 

1975년생 손은영은 이 전시에서 가장 젊은 세대에 속한다.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홍익대 사진디자인 전공을 거쳐,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왔다. 2021년 제2회 FNK Photography Award 수상은 사진계의 공식적 인정을 의미한다.

 

'The Houses at Night, 2021, #81'은 그녀의 대표 시리즈 '밤의 집'의 일부다. 도시 변두리 달동네의 작은 집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드러나는 이 집들을 손은영은 사진으로 포착한 뒤, 회화적 리터칭을 가한다. 사진과 회화의 중간 지대. 기록과 창작의 경계.

 

집은 손은영에게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향수와 기억의 공간이며, 모성적 장소다. 오래된 집을 수리하듯 사진을 그림으로 보정하는 과정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행위와 닮았다. 사진이 현실을 기록한다면, 그녀의 작업은 기억을 만들어낸다.

 

2020-2021년 사이 출판된 사진집은 10년간의 '집' 시리즈를 집대성했다. 검은 숲(2022), 밤의 집(2020-2021), 검은 집(2019), The underground(2018) 등 연작들은 모두 공간과 기억의 관계를 탐구한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기록적 속성과 회화적 개입을 결합해, 손은영은 사진의 존재론적 경계를 확장한다.

 

최윤정: 팝 아트의 정치적 전복

 

 

최윤정의 'face #02-홍범도'와 'pop kids #96'은 한국 팝 아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녀는 20여 년간 Pop Kids 시리즈를 지속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양평군립미술관, 오산미술관 등이 그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원색의 평면적 색채, 만화적 단순화, 안경이라는 반복 모티프. 형식적으로는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 아트 전통을 따른다. 하지만 최윤정의 작업은 미국 팝 아트와 다른 맥락에서 작동한다. 그녀가 다루는 건 소비사회의 찬양이 아니라 미디어의 비판적 분석이다.

 

안경은 '사고의 프레임'을 상징한다.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렌즈다. 스스로 욕망하기 전에 미디어로부터 행동을 권유받고, 그것에 끌린다. 최윤정의 Pop Kids들이 쓴 안경은 바로 이 미디어적 프레임의 시각화다. 'face #02-홍범도'는 역사적 인물을 팝 아트 방식으로 재현함으로써, 역사 역시 미디어를 통해 프레임된다는 메타적 질문을 던진다.

 

2018년 마이애미 SCOPE, 상하이 아트페어, 2022년 방글라데시 Asian Art Biennale 등 국제 전시 경력도 화려하다. 베이징,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한국 팝 아트가 서구 팝 아트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특수한 미디어 환경을 반영한 독자적 담론임을 그녀의 작업은 증명한다.

 

송광연: 그림으로 수놓은 모란

 

 

영남대 서양화 석사 출신 송광연의 'Butterfly's Dream'은 이 전시에서 가장 독특한 기법적 실험을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전통 자수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모두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자수를 그림으로 재현한다는 발상 자체가 역설적이다.

 

전통 모란도의 도상을 차용하면서도, 그 제작 방식은 현대적이다. 한 땀 한 땀 바늘로 수놓는 대신, 한 붓 한 붓 물감으로 그려낸다. 노동집약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자수의 질감, 실의 광택, 겹쳐진 실밥의 입체감까지 물감으로 재현하려면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이 기법적 선택은 개념적 의미를 지닌다.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벤데이 도트가 대량생산 시대의 기술을 미술로 전유했다면, 송광연의 '그려진 자수'는 수공예 전통을 회화로 번역한다. 대량생산에 대한 비판이자, 전통공예에 대한 경의이며, 동시에 회화 매체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탐구다.

 

24회의 개인전, 60여 회의 기획전 참여. 2017년 런던 사치갤러리 START 아트페어 솔로부스 작가 선정, 2016년 워싱턴DC 주미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초대전 등 국제 활동도 활발하다. 울산시립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과 컬렉터들이 그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 공예와 회화, 노동과 예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송광연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의 혼종성을 잘 보여준다.

 

세대를 관통하는 주제들

 

씨앗페 2026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작가들의 세대차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주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사회적 의식은 가장 두드러진 공통분모다. 신학철의 극사실주의 역사화, 김준권과 류연복의 민중목판화, 이윤엽의 현장 기록 판화는 모두 1980-9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유산이다. 하지만 이 전통은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최윤정의 팝 아트가 미디어 권력을 비판하고, 송광연의 회화가 대량생산 시대에 수공예의 의미를 묻는 방식으로 계승된다. 저항에서 성찰로, 구호에서 질문으로 변주되며 살아남은 것이다.

 

기억과 정체성 담론은 다른 방식으로 펼쳐진다. 손은영이 사진으로 포착하는 집의 기억은 개인적이고 감상적이다. 반면 신학철이 역사화로 재현하는 집단기억은 정치적이고 비판적이다. 하지만 둘 다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기억의 매체로 자주 활용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손은영과 이수철의 작업은 사진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기억의 창조적 재구성임을 보여준다.

 

매체의 다양성은 이 전시의 또 다른 특징이다. 목판화의 거장들(김준권, 이철수)이 50년간 한 매체를 파고든 장인정신을 보여준다면, 송광연은 회화로 자수를 재현하고, 손은영은 사진에 회화적 개입을 가하며 매체 간 경계를 허문다. 이수철은 아예 사진의 정의 자체를 재구성한다. 전통 매체의 깊이와 혼종 매체의 실험성이 한 전시 안에서 공존한다.

 

자연과 영성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이철수가 25년간 시골에서 농사와 판화를 병행하며 도달한 선(禪)의 경지, 김준권이 백두대간을 직접 걸으며 체득한 국토의 영성, 김주호가 강화도에서 흙을 빚으며 발견한 일상의 신성함. 이들에게 자연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예술과 삶이 만나는 접점이다. 환경의식과 영성 탐구가 결합되며, 예술은 세속을 벗어난 초월의 영역이 된다.

 

컬렉션 가치와 제도적 승인

 

씨앗페 2026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수집 기회이기도 하다. 이 전시가 지닌 미술시장적 의미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미술관 소장 현황은 작가들의 미술사적 위상을 증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신학철의 '묵시 802', 주재환의 '아침 햇살', 최윤정의 Pop Kids 등을 소장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역시 신학철 작품 다수를 아카이브했다. 광주시립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소마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오산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등 전국 주요 공공미술관들이 이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해외 미술관 소장도 주목할 만하다. 김준권의 경우 중국미술관, 중국 판화박물관, 루쉰대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국제 비엔날레 참여 경력도 화려하다. 최윤정은 2022년 방글라데시 Asian Art Biennale에, 신학철은 2024년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했다.

 

작가 경력의 지속성도 중요한 지표다. 김준권은 50년 가까이 1,500점 이상의 목판화를 제작했다. 이철수는 데뷔 40년을 넘겼고, 신학철은 1970년대부터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김주호는 33년간 강화도에서 작업했다. 이런 긴 호흡은 작가의 진정성과 작품의 일관성을 보장한다.

 

수상 경력은 제도권 인정의 또 다른 증거다. 김주호는 2025년 김종영미술상을 받았다. 이 상은 한국 조각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다. 손은영은 2021년 FNK Photography Award를 수상했다. 이는 한국 사진계의 신진 작가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상이다.

 

가격 구조를 보면 합리적 컬렉팅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최고가는 이철수의 '무문관 50장' ₩50,000,000과 신학철의 '한국현대사-유월항쟁도' ₩25,000,000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가의 대형 주요작이 이 가격대라면 오히려 저평가된 감이 있다. 송광연 ₩9,000,000, 김준권 ₩4,000,000-₩8,000,000, 최윤정과 김주호 ₩3,000,000-₩4,500,000, 손은영 ₩2,500,000 등 중간 가격대는 신진 컬렉터들도 접근 가능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런 가격에 50년 경력 거장의 작품을 구입할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준권이나 이철수 같은 작가들의 주요작은 앞으로 시장에서 점점 희소해질 것이고, 가격도 상승할 것이다. 씨앗페 2026는 미술사적으로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을 합리적 가격에 수집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사회적 맥락의 자연스러운 통합

 

이 전시를 이해하려면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3년 실험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전시의 부차적 배경이 아니라 작품 자체와 분리할 수 없는 맥락이다.

 

한국 예술가 23만여 명 중 85%는 은행 대출을 거부당한다. 불규칙한 수입이 주된 이유다. 거부당한 이들 중 48.6%는 연 15-20%의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고, 43%는 채권 추심을 경험한다. 이 수치들은 한국 사회가 예술가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여준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은 2022년부터 예술가 전용 대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지난 3년간 354건의 대출, 총 7억 원 규모. 95%라는 압도적인 상환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가들이 경제적으로 무책임하다는 편견이 틀렸음을 데이터로 입증한다. 문제는 예술가들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을 평가하는 금융 시스템의 편향이었다.

 

씨앗페 2026 전시는 이 선순환 구조의 정점이다. 협동조합이 작가를 지원하고, 작가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해 다시 조합에 기여한다. 전시 수익금은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을 더욱 확대하는 데 쓰인다. 예술과 경제, 개인과 공동체, 창작과 연대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이는 자선이 아니다. 시스템적 차별을 인식하고 교정하려는 시도다. 예술가들은 이미 자신들의 신용도를 95%라는 숫자로 증명했다. 이제 필요한 건 이 데이터를 인정하고, 예술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사회적 합의다.

 

문화 참여로서의 관람과 소장

 

씨앗페 2026는 2026년 1월 14일부터 26일까지 2주간 진행된다. 인사아트센터 3층 G&J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중심부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개방되며, 입장료는 무료다.

 

씨앗페 2026 전시를 방문한다는 것은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단면을 목격하는 일이다. 민중미술 1세대부터 동시대 작가까지 삼대에 걸친 계보를 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약 200점이라는 규모 역시 상당하다. 무료 입장이기에 누구나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다.

 

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투자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가의 작품을 소유한다는 것, 50년 경력 거장의 작품을 컬렉션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미술사의 일부를 개인이 보관하는 일이다. 현장 구매도 가능하고, 온라인 갤러리(auto-graph.co.kr)를 통한 구매도 가능하다.

 

협동조합 후원은 또 다른 참여 방식이다. 작품 구입 여력이 없더라도, 100억 원 상호부조 기금에 기여할 수 있다. 소액이든 거액이든, 모든 기부는 23만 한국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 개선에 직접 쓰인다. 95% 상환율이 증명하듯, 이 기금은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후원 링크(socialfunch.org/SAF)를 통해 참여 가능하다.

 

관람이든 구매든 후원이든, 모든 참여 방식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입장 표명이다. 예술을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인프라로 인식할 것인가. 씨앗페 2026는 후자를 택한 이들의 실험이다.

 

계속되는 대화

 

2026년 1월의 인사동 전시장은 한국 현대미술의 현재를 응축한다. 신학철의 역사화가 증언하는 1980년대, 김준권과 이철수가 파고든 목판화의 50년, 김주호가 빚어낸 일상의 조각, 손은영이 포착한 기억의 집, 최윤정이 해체한 미디어 권력, 송광연이 그려낸 수놓은 모란. 이 모든 작품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출발했지만, 한 공간에서 만나 대화한다.

 

예술적 탁월성과 사회정의는 분리될 수 없다. 씨앗페 2026는 이 명제를 작품의 질과 전시의 구조로 입증한다.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안정적 창작 환경이 필요하고, 그 환경을 만들려면 공정한 금융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협동조합은 이 선순환을 10년간 실험했고, 95%라는 상환율로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 전시를 보러 가는 것, 작품을 구입하는 것, 협동조합을 후원하는 것. 이 모든 행위는 예술이 어떤 조건에서 생산되고 유통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드러낸다.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한국 문화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참여하는 일이다.

 

예술과 사회의 대화는 씨앗페 2026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 전시는 끝이 아니라 하나의 마디점이다. 민중미술의 유산을 동시대가 어떻게 계승하고 변주할 것인가, 예술가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미술 시장과 공공성은 어떻게 양립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한 번의 전시로 답할 수 없다. 다만 씨앗페 2026는 하나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한다.


전시 정보

  • 전시명: 씨앗페 2026 (Seed Art Festival 2026)
  • 기간: 2026년 1월 14일(수) - 1월 26일(월)
  • 시간: 11:00 - 20:00 (매일)
  • 장소: 인사아트센터 3층 G&J갤러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41-1)
  • 입장료: 무료
  • 전시 규모: 약 200점

주요 행사

  • 1월 14일: 오프닝 (작가 퍼포먼스)

참여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