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더밀리웨이스: 심연의 끝에서 돌아온 아버지, 침묵의 우주를 건너는 사운드로 아들을 부르다

URL복사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 ‘완치’라는 기적을 쥐었으나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잃어버린 아들 ‘이안’에게 띄우는 더밀리웨이스의 간절한 연주

 

뉴스아트 편집부 | 세상에는 백 마디 말보다 더 거대한 침묵이 있다. 그리고 그 침묵을 찢고 나오는 소리만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여기,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과 가장 비참한 어둠을 동시에 통과한 한 남자가 있다. 1인 프로젝트 ‘더밀리웨이스(themilliways)’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선 뮤지션, 주진태의 이야기다.

 

그는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일지 모르나, 한국 대중문화의 심장부에서는 이미 오랜 시간 ‘거장’들의 조력자로 통했다. 지난 20여 년간 그는 문화 대통령이라 불리는 서태지가 이끄는 서태지컴퍼니의 핵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감각적인 미디어들을 빚어내는 디렉터로 활약해왔다. 무대 뒤편의 어둠 속에서 타인을 가장 화려하게 빛내던 그가, 이제는 스스로 빛이 되어 칠흑 같은 우주를 유영하기 시작했다. 그가 들고 나온 음악은 죽음과의 사투 끝에 살아 돌아온 아버지가, 거센 운명의 파도에 휩쓸려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쏘아 올리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구조 신호다.

 

서태지의 미스터리를 설계하던 남자, 소리의 건축가가 되다

 

더밀리웨이스의 음악을 처음 접한 이들은 하나같이 “귀로 듣는데 눈앞에 풍경이 펼쳐진다”고 말한다. 영상 디렉터 출신인 그는 소리를 물감처럼, 리듬을 붓처럼 사용하여 청자의 머릿속에 광활한 시공간을 그려낸다. 그의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 ‘입장’하여 체험하는 것에 가까운 경험을 선사한다.

 

그의 음악적 뿌리는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 서태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더밀리웨이스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알린 곡 ‘3rd air’는 2008년, 대중을 충격과 호기심으로 몰아넣었던 서태지 8집 컴백 티저 영상 ‘미스터리 서클’ 편의 배경음악이었다. 당시 1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전율을 남겼던 그 미완의 소리는,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건너 더밀리웨이스의 손끝에서 온전한 곡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앰비언트(Ambient)의 정적인 공간감과 포스트 록(Post-rock)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가사가 배제된 연주곡(Instrumental)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여백은 결코 비어있지 않다. 때로는 거친 파도처럼 몰아치는 록 사운드로 내면의 치열한 투쟁을 그리고, 때로는 무중력의 우주를 부유하는 듯한 몽환적인 신디사이저로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아득한 기다림을 표현한다.

 

무너진 세계, 그리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

 

시계바늘을 2017년으로 돌려보자. 크리에이터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더밀리웨이스의 운명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예고 없는 선고를 내렸다. 폐암 말기(4기).


현대 의학이 제시하는 생존 확률은 절망적일 만큼 낮았고, 죽음의 그림자는 순식간에 그의 일상을 집어삼켰다. 한창 일할 나이에 찾아온 병마는 그가 쌓아온 커리어와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질 수 없었다. 지켜야 할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전부인 어린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독한 항암 치료를 견디며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해 나갔다.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도 그를 숨 쉬게 한 것은 오직 하나, “살아서 아들 곁을 지키겠다”는 아버지로서의 약속이었다.

 

그 처절한 집념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그는 기적처럼 암세포를 몸에서 몰아내고 의료진으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아냈다. 의학적 통계를 뒤엎은 인간 승리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는, 다시 아들을 힘껏 안아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기적의 대가로 마주한 이별, 멈춰버린 시간

 

그러나 신은 그에게 ‘생명’을 돌려주는 대신,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남겨두었다. 수년간 이어진 투병 생활은 한 가장이 감당하기 힘든 현실적인 무게를 남겼다. 긴 시간 병마와 싸우느라 멈춰버린 경제 활동,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생활의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완치라는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인 2019년, 그는 투병의 후유증이 남긴 현실의 파고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 잠시 상황을 정리하고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그 이별은, 예기치 않게 길어졌다.


그가 기억하는 아들 ‘이안’의 마지막 모습은 병원에서의 짧은 만남이었다. 투병으로 야윈 아빠를 걱정스러운 눈망울로 바라보던 아이. 그날 이후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사랑하는 아들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살아남았으나, 정작 살아야 할 이유였던 아들을 곁에 둘 수 없는 현실. 건강해진 몸으로 병원 문을 나섰지만, 돌아갈 곳도 안아줄 아이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세상. 그는 차가운 작업실에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기타를 연주했다.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 음악으로 다리를 놓다

 

말(言)은 무력했다. 죽음을 이기고 돌아온 아버지가 5년 동안 보지 못한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심정을 어찌 몇 마디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흔한 언어들로는 그 거대한 상실감과 간절함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더밀리웨이스는 말을 버리고 악기를 들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시간들과 소식이 끊어진 아들... 감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들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심장에 가장 직접적으로 닿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언어를 다시 택했다. 2021년, 솔로 프로젝트 ‘더밀리웨이스’를 시작하며 그가 선보인 곡들이 가사가 없는 연주곡인 이유는 필연적이었다. 침묵 속에 담긴 진심,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눈물이 그 선율 안에 녹아있다.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공간감과 고독은 아들과 자신 사이에 놓인 긴 시간의 간극이자, 서로가 떨어져 있는 물리적 거리감을 소리로 치환한 결과물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소리의 입자들은, 아빠가 아들을 찾기 위해 어둠 속을 헤매는 발자국 소리와도 같다.

 

앨범 《Ian》: "아빠가 너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2024년, 더밀리웨이스는 아들의 이름을 그대로 딴 앨범 《Ian》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것은 앨범이라기보다,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 아들에게 보내는 ‘생존 신고’이자, 먼 훗날을 기약하는 ‘약속의 증표’다.

 

기존의 곡들이 차가운 심연과 끝없는 고독을 그렸다면, 앨범 《Ian》에는 아들을 향한 따스한 온기가 흐른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넓고 웅장한 사운드는 아들을 향해 뻗어나가는 아버지의 크고 단단한 팔과 같다. 때로는 심장을 두드리는 격정적인 드럼 비트로 "아빠가 이제 건강하다, 다시 일어섰다"고 외치는 심장 박동을 전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감싸는 기타로 아이와 함께 뛰어놀던 기억 속의 리듬을 재현한다.

 

우리의 귀가 아들에게 닿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더밀리웨이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건반을 누르고 기타 줄을 튕긴다. 언젠가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아들 앞에 다시 서기 위해,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소리의 파동이 바람을 타고 구름을 넘어, 언젠가 아들 이안의 귓가에 닿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이제 그의 음악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기적 같은 생환의 이야기와 아버지의 변치 않는 사랑 노래가 세상에 널리 퍼질수록, 5년 전 멈춰버린 두 사람의 시간은 다시 흐르게 될 것이다.

 

아빠와 아들이 뜨겁게 포옹하며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는 그 기적 같은 순간까지, 더밀리웨이스가 쏘아 올리는 이 아름다운 우주의 연주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