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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돌아온 민중의 칼날 故 오윤, 씨앗페에서 다시 민중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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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7월,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민중미술의 거장 오윤. 그가 나무판 위에 새긴 민중의 춤사위가 40년 만에 다시 대중 앞에 섰다. 이번 씨앗페 2026에서 공개되는 오윤의 목판화 10점을 경매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의 작품이 금융 위기에 처한 예술인을 돕기 위해, 일반 시민이 직접 소장할 수 있는 가격으로 선보인다.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고 외쳤던 오윤의 신념이 40년의 시간을 건너 실현되는 순간이다.

오윤, 그는 누구였나

 

예술가의 피를 물려받은 민중의 아들

 

 

1946년 4월 13일, 부산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소설 『갯마을』, 『메아리』로 한국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소설가 오영수의 장남, 오윤이었다. 문학적 토양이 비옥한 가정에서 자란 그였지만, 아버지의 문학이 바다와 갯마을 사람들의 삶을 그렸듯, 아들의 예술 역시 민초들의 삶을 향해 있었다.

 

어린 시절 오윤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매료된 것은 책 속의 세계가 아니라, 부산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생생한 삶의 풍경이었다. 시장 아주머니들의 억센 웃음소리, 부두 노동자들의 땀 냄새, 골목길 아이들의 거친 놀이. 이 모든 것이 훗날 그의 판화 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진학한 것은 1965년이었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서구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으며 추상미술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다. 하지만 오윤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민화, 무속화, 불화, 탈춤, 굿 등 한국 전통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서구 미학을 배우면서도, 그의 눈은 언제나 우리 것을 향해 있었다.

 

1969년, 현실과 마주하다

 

 

1969년은 오윤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그해 그는 시인 김지하, 화가 김정헌 등과 함께 '현실 동인'을 결성했다. 이들은 "현실 동인 제1선언문"을 발표하며 리얼리즘 미술 운동을 제창했다. 당시 한국 미술계가 추상미술과 형식 실험에 몰두하고 있을 때, 이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민중의 삶을 그려야 한다고 외쳤다.

 

미학적 선택만은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 한국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의 그늘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도시 빈민, 공장 노동자,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 경제 성장의 화려한 수사 뒤에 가려진 민중의 고통을 누군가는 기록해야 했다. 오윤은 그 역할을 자처했다.

 

대학 졸업 후 군대에 입대했으나 위장병으로 의병 제대한 오윤은 이후 경주와 일산 등지의 전돌 공장에서 일했다. 생계를 위한 노동이었지만, 그에게는 노동의 의미를 몸으로 체득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흙을 다루고, 벽돌을 굽고, 땀을 흘리는 과정에서 그는 노동자들과 함께 호흡했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노동자, 농민의 모습에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했다.

 

전돌 공장 시절, 오윤은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동대문지점과 구의동지점 내외벽에 테라코타 부조를 제작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 작업은 그에게 공공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은행을 찾는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마주하는 예술,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미술이었다.

 

1979년, 민중미술의 깃발을 들다

 

1979년, 오윤은 '현실과 발언' 동인의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다. 이 그룹은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군부독재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심화되던 시대, 이들은 미술이 현실에 개입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윤은 다른 민중미술 작가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많은 작가들이 시위 현장, 노동 쟁의,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오윤은 민중의 삶 속에 내재된 한국 전통의 정신을 발굴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그에게 민중미술이란 현실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민중의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한국적 미감과 신명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이었다.

 

왜 목판화였나 — 되돌릴 수 없는 칼질의 미학

 

오윤이 선택한 매체는 목판화였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음에도 그가 목판화를 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한 번의 칼질로 되돌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목판화는, 투박하면서도 힘찬 그의 예술 정신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판화는 복제가 가능한 매체다. 오윤은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자신의 판화를 시집의 표지나 노동 현장의 전단지에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김지하의 시집 『오적』 표지화, 이원수의 전래 동화집 『땅속나라 도둑귀신』의 삽화가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예술이 소수의 특권층이 향유하는 전유물이 되는 것을 경계했던 그에게, 판화는 대중과 소통하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이었다.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오윤은 프레스기조차 없이 숟가락으로 종이를 문질러 판화 이미지를 전사했다고 한다. 이 투박한 방식은 그의 예술 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화려한 기술이나 장비가 아니라, 진정성과 손끝의 온기로 예술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40세, 너무 이른 이별

 

1986년 7월 5일, 오윤은 첫 개인전을 연 직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0세. 잦은 음주와 흡연으로 건강이 악화된 결과였다. 그가 남긴 작품은 100여 점.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나무판 위에 새긴 칼자국은 많지 않았지만, 그 하나하나가 한국 미술사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2005년, 정부는 그에게 옥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2006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고 20주기 회고전 '오윤: 낮도깨비 신명마당'이 열렸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유산은 훈장이나 전시가 아니라, 그가 나무판에 새긴 민중의 춤사위가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오윤의 판화는 특별한가

 

한(恨)과 신명(神明)의 이중주

 

 

오윤의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정서는 한국인의 심연에 깔린 '한(恨)'과 이를 단숨에 깨치고 일어서는 '신명(神明)'의 조화다. 그의 판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코 가냘프거나 나약하지 않다. 굵고 거친 선으로 묘사된 그들의 몸짓, 특히 역동적으로 어깨를 들썩이는 춤사위는 억눌린 현실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다른 민중미술 작가들이 현실의 고통이나 사회 문제의 사실적 표현에 집중했던 반면, 오윤은 민중의 삶 속에 내재된 한국 전통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탈춤, 무속, 도깨비와 같은 민속적 소재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서구적 조형미에 길들여진 우리 미술계에 한국적 원형이 무엇인지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오윤에게 한(恨)은 단순히 슬픔이나 원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적 고통을 견뎌온 민중의 집단적 기억이자, 그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신명(神明)은 그 한을 폭발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였다. 굿판에서, 탈춤에서, 농악에서 터져 나오는 그 신명을 오윤은 나무판 위에 칼로 새겼다.

 

투박하지만 강렬한 '칼 맛' — 오윤의 기법

 

미술 평론가들은 오윤의 판화를 평가할 때 '칼 맛(knife touch)'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정제된 선과 개성적이고 활달한 칼질로 오윤 특유의 판화 세계를 형성했다는 의미다. 그의 판화는 해학과 신명이 넘실거리는 춤과 전통을 판화만의 단호하고 날카로운 형식으로 명료하게 드러낸다.

오윤의 목판화 제작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수행이었다. 그는 먼저 수십, 수백 장의 드로잉을 그렸다. 대상을 관찰하고, 형태를 단순화하고, 본질을 추출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나무판 위에 칼을 댔다.

 

목판화는 되돌릴 수 없는 매체다. 한 번 칼을 대면 그 흔적은 영원히 남는다. 수정도, 보완도 불가능하다. 오윤은 이 긴장감 속에서 작업했다. 그의 칼질은 망설임이 없었다. 굵고 거친 선은 투박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번의 드로잉으로 단련된 확신이 담겨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오윤이 프레스기조차 없이 작업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숟가락으로 종이를 문질러 판화 이미지를 전사했다. 이 투박한 방식은 그의 예술 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화려한 기술이나 장비가 아니라, 진정성과 손끝의 온기로 예술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판화는 기계적으로 찍어낸 판화와는 다른, 손의 온기가 느껴지는 작품이 되었다.

 

대표작으로 보는 오윤의 세계

 

「칼노래」(1985) — 저항과 해방의 춤

 

 

「칼노래」는 오윤의 대표작 중 대표작이다. 칼을 든 인물이 역동적으로 춤을 추는 이 작품은 단순히 칼춤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억압된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저항 의지와 해방의 열망을 상징한다.

 

작품 속 인물의 몸짓을 자세히 보면, 어깨가 들썩이고 팔이 하늘로 치솟는다. 이것은 탈춤의 동작이자, 농악의 몸짓이다. 칼은 무기이면서 동시에 악기다. 위협이면서 동시에 축제다. 이 이중성이 오윤 예술의 핵심이다.

 

굵고 거친 선은 투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에너지는 폭발적이다. 검은 면과 흰 면의 대비는 극명하다. 이것은 목판화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오윤은 이 대비를 극대화하여 작품의 강렬함을 배가시켰다.

 

2015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이 작품은 추정가 1,500만 원에서 시작하여 4,800만 원에 낙찰되었다. 이후 7,500만 원에 거래된 사례도 있다. 「칼노래」는 오윤 예술의 정수이자, 한국 민중미술의 아이콘이 되었다.

 

「무호도」(1986) — 마지막 춤

 

 

「무호도」는 오윤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86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간결하고 강인한 선으로 호랑이의 역동적인 춤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호랑이는 한국 민속에서 산신령의 사자이자, 벽사의 상징이다. 하지만 오윤의 호랑이는 위엄 있는 맹수가 아니라, 춤추는 호랑이다. 어깨를 들썩이고, 발을 구르고, 신명나게 춤추는 호랑이. 이것은 민중의 자화상이다. 고통 속에서도 춤출 줄 아는, 억압 속에서도 신명을 잃지 않는 민중의 모습이다.

 

2016년 K옥션 온라인 경매에서 이 작품은 500만 원에 출품되었으나 43회의 경합 끝에 2,700만 원에 낙찰되었다. 5배가 넘는 가격 상승, 43번의 입찰 경쟁은 오윤 작품에 대한 시장의 열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윤 예술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였다.

 

「낮도깨비」(1985) — 숨지 않는 존재

 

 

「낮도깨비」는 오윤의 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도깨비는 한국 민속에서 두려움과 친근함을 동시에 가진 존재다. 밤에 나타나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하는 존재. 하지만 오윤의 도깨비는 '낮'에 나타난다.

 

낮에 나타나는 도깨비, 즉 숨어 있지 않고 당당히 드러나는 존재. 이것은 민중의 각성과 저항을 상징한다. 더 이상 어둠 속에 숨지 않고, 대낮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는 민중. 오윤은 이 도깨비를 통해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투영했다.

 

작품 속 도깨비의 표정은 해학적이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화난 것 같기도 하다. 이 모호함이 오윤 예술의 매력이다. 단순한 선전이나 고발이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과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봄의소리」 시리즈 — 희망의 메시지

 

 

「봄의소리1」(1983)과 「봄의소리2」(1984)는 오윤의 작품 중에서도 특별히 서정적인 작품들이다. 1996년 한 보도에 따르면, 오윤 목판화전에서 「봄의소리」, 「귀향」, 「형님」, 「에비」 등 서정적이고 서민적인 정서를 표현한 작품들이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한다.

 

「봄의소리」는 제목 그대로 봄을 알리는 소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새소리일 수도 있고, 바람 소리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일 수도 있다. 오윤은 이 소리를 시각화했다. 역동적인 선과 면의 구성은 봄의 생명력을, 경쾌한 리듬은 봄의 기쁨을 전한다.

 

 

이 작품들은 오윤이 저항과 고발의 미술만을 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민중의 고통을 그렸지만, 동시에 민중의 희망도 그렸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그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그는 판화로 새겼다.

 

「석양」(1982) — 월드스타가 재발견한 오윤

 

 

「석양」은 1982년 제작된 작품으로, 최근 BTS의 리더 RM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젊은 세대에게 오윤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RM은 한국 현대미술의 열렬한 컬렉터로, 김환기, 윤형근 등 한국 미술사의 거장들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윤의 「석양」을 선택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석양」은 오윤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하루의 끝을 알리는 석양은 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전조다. 오윤은 이 작품을 통해 고난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냈다.

 

 

RM과 같은 젊은 세대 예술 애호가들이 오윤의 작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40년 전 오윤이 목판화에 새긴 메시지 —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와 연대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정신 — 는 2026년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번 씨앗페 2026에서 「석양」을 90만 원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RM처럼 오윤의 정신을 일상에서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특별한 기회다.

 

예술의 공공성을 실천한 선구자

 

오윤에게 판화는 단순히 그림을 찍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칼끝으로 새기고 대중과 그 아픔을 나누는 소통의 의식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노동 현장의 전단지, 시집 표지, 정치적 민주화 운동 포스터와 대형 걸개그림에 아낌없이 제공했다.

 

김지하의 시집 『오적』 표지화는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금서였던 이 시집의 표지를 오윤이 그렸다는 것은 단순한 예술적 협업이 아니라, 정치적 연대의 표현이었다. 이원수의 전래 동화집 『땅속나라 도둑귀신』의 삽화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에 자신의 판화를 실어, 어린 시절부터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려 했다.

 

자본주의의 기형적인 욕망을 풍자한 대작부터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따뜻한 드로잉까지, 그의 작업은 언제나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것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오윤의 작품이 여전히 큰 감동을 주는 이유다.

 


 

오윤 작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이 왜 이례적인가

 

희귀성의 가치 — 현존 작품 100여 점

 

오윤이 남긴 작품은 100여 점에 불과하다. 40년이라는 짧은 생애, 그중에서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기간은 10여 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희귀성은 오윤 작품의 시장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K-Artprice에 따르면, 오윤 작가의 최근 5년간 낙찰액은 총 1억 7,679만 원이며, 총 23건의 작품이 낙찰되었다. 단순 계산으로 작품당 평균 낙찰가는 약 769만 원이다. 하지만 이는 평균일 뿐, 대표작의 경우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경매 시장의 뜨거운 반응

 

2015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그의 목판화 「칼노래」는 추정가 1,500만 원에서 시작하여 3배를 웃도는 4,800만 원에 낙찰되었다. 이후 K-Artprice 기록에 따르면 같은 작품의 1985년 작이 7,500만 원에 거래된 사례도 있다.

 

「무호도」의 경우, 1986년 작이 3,400만 원, 다른 1986년 작이 2,600만 원에 거래되었다. 「겨울새」 1985년 작은 3,900만 원, 「대지」 1983년 작은 3,800만 원에 낙찰되었다.

 

1996년 한 보도에 따르면, 오윤 목판화전에서 500여 점의 작품이 팔렸으며, 작품당 7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거래되었다. 30년 전 가격과 비교하면, 오윤 작품의 가치는 10배 이상 상승한 셈이다.

 

판화인데도 회화 수준의 가격 — 이례적 현상

 

일반적으로 미술 시장에서 판화는 회화에 비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복제 가능한 매체라는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오윤의 판화는 예외다. 그의 작품은 판화임에도 불구하고 회화 수준의 가격에 거래된다.

 

이는 오윤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희귀성, 그리고 한국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반영한다. 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오윤의 작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평가되며 시장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고인의 작품이 일반 판매되는 것의 이례성

 

오윤처럼 이미 고인이 된 거장의 작품이 일반 대중에게 직접 판매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통상적으로 이런 작품들은 다음과 같은 경로로만 유통된다.

 

  1. 경매 시장: 소더비, 크리스티, 서울옥션, K옥션 등 전문 경매사를 통한 거래
  2. 화랑 거래: 고급 화랑을 통한 컬렉터 간 거래
  3. 미술관 소장: 국공립 미술관이나 기업 미술관의 영구 소장

 

일반 시민이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경로로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유족이나 소장가의 특별한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씨앗페 2026에 오윤의 작품 9점이 출품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매우 이례적이고 특별한 사건이다.

 


 

씨앗페 2026의 의의 — 예술이 예술인을 구하다

 

한국 예술인의 금융 위기, 그 참혹한 현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2025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1금융권에서 배제되어 있다. 정기적인 소득을 입증하기 어려워 은행 대출에서 거절당하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응답자의 48.6%가 연 15% 이상 초고금리 대출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한 시인은 시집 출판을 위해 카드론을 받았다가 이자를 갚지 못해 창작을 중단해야 했다. 한 화가는 전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연 20%의 대부업체 대출을 받았다가 빚더미에 앉았다. 한 음악가는 악기 수리비를 마련하지 못해 연주를 포기해야 했다.

 

대출받을 곳이 없어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 연 20%에 육박하는 고리대금 상품에 의존하게 되고, 채권 추심을 경험한 예술인의 88.3%가 창작 활동을 중단하거나 현저히 위축되었다. 한 편의 시와 한 곡의 노래가 빚 독촉 전화에 짓밟히는 순간, K-문화의 미래 자산도 함께 소멸되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은 K-팝, K-드라마, K-영화로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문화 강국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과 뒤에는 생계를 걱정하며 고리대금에 시달리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예술인들은 금융 시스템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상호부조 대출, 95%의 신뢰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호부조 대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조합이 일정한 기금을 조성하면, 협약금융기관이 그 기금의 약 7배까지 예술인들에게 연 5% 고정금리로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신뢰'다. 예술인들은 신뢰할 수 없는 대출자가 아니다. 단지 정기적인 소득을 입증하기 어려울 뿐이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은 예술인의 창작 활동 자체를 신뢰의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그 신뢰는 배신당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이미 지원받은 예술인들의 95% 이상이 성실하게 상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예술인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만 있으면, 얼마든지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다는 증거다. 문제는 예술인이 아니라, 예술인을 배제하는 금융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한 소설가는 이 대출로 6개월간 집필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완성한 소설로 문학상을 받았다. 한 무용가는 이 대출로 공연을 올렸고, 그 공연은 매진을 기록했다. 한 화가는 이 대출로 작업실을 마련했고, 그곳에서 만든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신뢰는 창작으로 보답되었고, 창작은 다시 사회로 환원되었다.

 

씨앗페 2023 —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다

 

 

씨앗페(SAF, Seed Art Festival)는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 마련을 위해 후원과 작품 구매를 연결하는 캠페인이다. 2023년 첫 행사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2023년 1월, 인사동 한복판에서 7일간의 전시와 5일간의 공연이 열렸다. 참여 작가는 30여 명, 출품작은 50여 점.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컸다. 예술인이 예술인을 돕는다는 것, 예술이 예술을 구한다는 것.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관람객은 10만 원짜리 드로잉 한 점을 구매했다. "이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이 돈이 누군가의 창작을 돕는다는 게 더 좋았어요." 또 다른 관람객은 작품을 구매하지 않았지만 10만 원을 후원했다. "저도 한때 예술을 꿈꿨던 사람으로서, 지금 꿈을 이어가는 분들을 돕고 싶었어요."

 

7일간의 전시와 5일간의 공연을 통해 3,400만 원의 기금이 조성되었다. 이 금액은 협약금융기관의 매칭을 통해 약 2억 3,800만 원의 대출 재원이 되었다.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운 순간이었다.

 

씨앗페 2026 — 더 큰 숲의 연대를 향하여

 

 

2026년 1월 14일부터 1월 26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 3층 G&J 갤러리에서 열리는 씨앗페 2026은 그 규모가 훨씬 커졌다. 세대를 아우르는 예술가들이 참여하며, 코로나 이후 최대 규모로 확대되었다.

 

참여 작가는 100여 명, 출품작은 200여 점.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것이 바로 오윤의 목판화 10점이다. 경매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거장의 작품이 일반 시민에게 직접 판매된다는 것, 그것도 예술인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서라는 것. 이것은 씨앗페 2026의 상징이자, 오윤이 꿈꿨던 예술의 공공성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오윤의 신념이 40년 만에 실현되다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

 

오윤이 생전에 외쳤던 이 신념이 40년의 시간을 건너 씨앗페 2026에서 실현된다. 그가 노동 현장에 판화를 나눠주었던 것처럼, 이번 씨앗페는 그의 작품을 다시 민중에게 돌려준다.

 

경매장에서 수천만 원에 거래되는 오윤의 작품 10점이 90만 원부터 280만 원의 가격으로 일반 시민에게 선보인다. 예술이 예술인을 구하는 아름다운 순환이며, 오윤이 꿈꿨던 예술의 공공성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1980년대, 오윤은 자신의 판화를 노동자들에게 나눠주었다. 2026년, 씨앗페는 오윤의 판화를 구매한 시민들의 돈으로 예술인들을 돕는다. 40년의 시간을 건너, 오윤의 정신은 새로운 형태로 계승되고 있다.

 


 

씨앗페에서 오윤 작품을 구매하는 것의 의의

 

단순한 '소장'을 넘어선 '연대'의 행위

 

씨앗페 2026에 출품된 오윤의 목판화 10점은 다음과 같다.

 

  • 「지리산2」(1984) - 180만 원
  • 「검은새」(1980) - 120만 원
  • 「봄의소리1」(1983) - 140만 원
  • 「봄의소리2」(1984) - 90만 원
  • 「칼노래」(1985) - 280만 원
  • 「징2」(1985) - 120만 원
  • 「무호도」(1985) - 150만 원
  • 「낮도깨비」(1985) - 240만 원
  • 「남녁땅뱃노래」(1985) - 240만 원
  • 「석양」(1982) - 90만 원

 

경매 시장에서 「칼노래」가 7,500만 원에 낙찰된 것을 고려하면, 280만 원은 놀라울 정도로 접근 가능한 가격이다. 「무호도」가 4,000만 원에 거래된 것을 생각하면, 150만 원은 기적에 가까운 가격이다.

 

하지만 이 가격의 의미는 '저렴함'이 아니다. 예술인을 위한 기금 마련이라는 목적과 오윤의 예술 철학이 만나 만들어낸 특별한 가격이다.

 

당신에게 맞는 오윤의 작품은?

 

처음 오윤을 만나는 당신에게 — 「봄의소리2」(90만 원)

 

 

오윤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봄의소리2」를 추천한다. 90만 원이라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가격에, 오윤 특유의 서정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1996년 오윤 목판화전에서 가장 많이 팔렸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봄의소리」 시리즈였다. 저항과 고발의 이미지가 강한 오윤이지만, 그의 작품 세계에는 이렇게 따뜻하고 희망적인 면도 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그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가 당신의 공간에 희망을 불어넣을 것이다.

 

오윤의 대표작을 소장하고 싶은 당신에게 — 「칼노래」(280만 원)

 

 

오윤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 「칼노래」. 경매 시장에서 7,500만 원에 거래된 이 작품을 280만 원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기회다.

 

칼을 든 인물이 역동적으로 춤추는 이 작품은 오윤 예술의 정수다. 한(恨)과 신명(神明)의 조화, 저항과 해방의 춤, 민중의 생명력. 오윤이 추구했던 모든 것이 이 한 점에 담겨 있다. 한국 미술사의 아이콘을 당신의 공간에 모실 수 있는 기회다.

 

해학과 신명을 느끼고 싶은 당신에게 — 「무호도」(150만 원)

 

 

춤추는 호랑이. 이보다 더 한국적인 이미지가 있을까? 「무호도」는 오윤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제작한 작품으로, 그의 예술 세계가 집약된 작품이다. 특히 오윤 작가의 호랑이 도상은 해학적 가치가 높아 컬렉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품 중 하나이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위엄 있는 맹수가 아니라 신명나게 춤추는 호랑이. 이것은 고통 속에서도 춤출 줄 아는 민중의 자화상이다. 경매에서 43회의 경합 끝에 2,700만 원에 낙찰된 이 작품을 150만 원에 만날 수 있다. 

 

오윤의 철학을 공간에 담고 싶은 당신에게 — 「낮도깨비」(240만 원)

 

 

낮에 나타나는 도깨비. 숨지 않고 당당히 드러나는 존재. 이것은 민중의 각성과 저항을 상징한다. 「낮도깨비」는 오윤의 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해학적이면서도 강렬한, 친근하면서도 당당한 이 도깨비는 당신의 공간에 특별한 에너지를 불어넣을 것이다. 오윤의 철학을 일상에서 마주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경매장이 아닌 '씨앗페'에서 만나는 의미

 

경매장에서 오윤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과 씨앗페에서 구매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경매장에서의 구매는 투자다. 작품의 시장 가치 상승을 기대하며, 컬렉션의 일부로 소장하는 행위다. 물론 이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개인의 자산 증식이 목적이다.

 

반면 씨앗페에서의 구매는 연대다. 작품을 소장하는 동시에, 그 구매 금액이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사용된다. 한 점의 작품 구매가 금융 위기에 처한 예술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오윤이 생전에 실천했던 예술의 공공성을 함께 실현하는 행위다. 그가 노동 현장에 판화를 나눠주었던 것처럼, 당신의 구매는 예술을 다시 민중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40년 전 오윤이 꿈꿨던 세상

 

1980년대, 오윤은 자신의 판화를 시집 표지에, 노동 현장 전단지에, 민주화 운동 포스터에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그는 예술이 소수의 특권층이 향유하는 전유물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2026년, 씨앗페는 그의 작품을 다시 민중에게 돌려준다. 경매장이 아닌 전시장에서, 수천만 원이 아닌 수백만 원에, 컬렉터가 아닌 일반 시민에게.

 

당신이 씨앗페에서 오윤의 작품을 구매하는 순간, 당신은 단순히 한 점의 판화를 소장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오윤이 40년 전 꿈꿨던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작품 구매 = 예술인의 내일을 바꾸는 일

 

씨앗페에서 판매되는 모든 작품의 수익금은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사용된다. 이 기금은 협약금융기관의 매칭을 통해 약 7배로 확대되어, 더 많은 예술인에게 연 5% 저금리 대출로 제공된다.

 

당신이 오윤의 「봄의소리2」를 90만 원에 구매한다면, 그 금액은 기금으로 조성되어 약 630만 원의 대출 재원이 된다. 한 예술인이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칼노래」를 280만 원에 구매한다면, 그 금액은 약 1,960만 원의 대출 재원이 된다. 두세 명의 예술인이 고리대금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자. 당신이 구매한 오윤의 작품으로 조성된 기금이 한 젊은 시인에게 대출로 제공된다. 그 시인은 6개월간 생계 걱정 없이 시를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집이 출판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한다. 당신의 한 점이 만든 아름다운 연쇄 반응이다.

이것이 씨앗페에서 오윤 작품을 구매하는 것의 진정한 의의다. 당신은 예술을 소장하는 동시에, 예술인의 내일을 바꾸는 일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칼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2026년, 오윤 서거 40주기를 앞두고

 

1986년 7월 5일, 오윤은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26년은 그가 떠난 지 40년이 되는 해다. 40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가 지나가는 시간이다. 오윤을 직접 알았던 사람들은 이제 70대, 80대가 되었고, 젊은 세대에게 오윤은 교과서에서나 보는 이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나무판에 새긴 칼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고 선명해지고 있다.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변했다. 1986년 당시 한국은 군부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최루탄과 곤봉으로 짓밟혔다. 오윤은 그 시대를 살았고, 그 시대의 아픔을 나무판에 새겼다.

 

2026년,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K-팝, K-드라마, K-영화로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문화 강국이 되었다. 하지만 정말 모든 것이 변했을까?

 

2026년, 우리는 왜 여전히 오윤을 필요로 하는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기술적으로 화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메타버스에서 전시가 열리며, NFT로 예술 작품이 거래된다. 하지만 오윤의 투박한 목판화가 여전히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안에 담긴 진정성 때문이다.

 

오윤은 예술가가 시대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그는 화려한 화단이 아닌 노동 현장에서, 고급 화랑이 아닌 거리에서, 소수의 컬렉터가 아닌 민중과 함께 호흡했다.

 

2026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불평등과 양극화로 신음하고 있다. 예술인의 84.9%가 제1금융권에서 배제되고, 48.6%가 고리대금에 노출되어 있다. 40년 전 오윤이 목격했던 민중의 고통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1980년대, 오윤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목격했다. 2026년, 예술인들이 고통받고 있다. 시대는 변했지만, 구조적 불평등은 여전하다. 이런 시대에 오윤의 작품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유효한 현재의 메시지다.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일어서는 민중의 신명, 고통을 함께 나누는 연대의 정신, 예술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나눠야 할 공공재라는 신념. 이것이 2026년, 우리가 여전히 오윤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오윤이 남긴 것 — 칼자국 너머의 유산

 

오윤이 남긴 것은 100여 점의 판화만이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남긴 것은 예술가로서의 태도, 시대와 마주하는 방식, 민중과 함께 호흡하는 정신이다.

 

그는 서울대 조소과를 나왔지만 전돌 공장에서 일했다. 화려한 화단에서 인정받을 수도 있었지만 노동 현장을 선택했다. 작품을 비싸게 팔 수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이 모든 선택이 오윤이 남긴 유산이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오윤 회고전 '낮도깨비 신명마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미술 애호가들만이 아니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사람들, 오윤의 판화를 전단지로 받아 들었던 노동자들, 그의 정신을 이어받고 싶은 젊은 예술가들. 그들은 오윤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한 관람객은 이렇게 말했다.

 

"오윤의 작품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40년 전 그가 새긴 칼자국이 지금도 제 마음을 흔듭니다."

 

씨앗페 2026 — 민중의 춤사위는 계속된다

 

오윤은 떠났지만, 그가 나무판 위에 새겨놓은 민중의 춤사위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2026년 1월 14일부터 1월 26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 3층 G&J 갤러리에서 씨앗페 2026이 열린다. 그곳에서 오윤의 목판화 10점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칼노래」의 역동적인 칼춤이, 「무호도」의 해학적인 호랑이가, 「낮도깨비」의 당당한 모습이, 「봄의소리」의 따뜻한 울림이 당신을 부른다.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40년 전 오윤이 꿈꿨던 세상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예술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나누는 공공재가 되는 순간이다. 예술이 예술인을 구하는 아름다운 순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1986년 7월, 오윤은 첫 개인전을 연 직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경매장에서 수천만 원에 거래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높은 가격이 아니었다. 그가 바랐던 것은 자신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과 나눠지는 것, 그 작품을 통해 민중의 삶과 정신이 전해지는 것이었다.

 

씨앗페 2026은 오윤의 그 바람을 실현한다. 경매장이 아닌 전시장에서, 컬렉터가 아닌 일반 시민에게, 투자가 아닌 연대로. 이것이 오윤이 진정으로 원했던 방식이다.

 

당신의 한 점이 예술인의 내일을 바꿉니다

 

씨앗페 2026에서 오윤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당신은 한국 미술사의 거장, 민중미술의 아이콘 오윤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다. 경매장에서 수천만 원에 거래되는 작품을 접근 가능한 가격에 만날 수 있는 이례적인 기회다.

 

둘째, 당신의 구매 금액은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사용되어, 금융 위기에 처한 예술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당신의 한 점이 예술인의 내일을 바꾼다.

 

셋째, 당신은 오윤이 40년 전 꿈꿨던 예술의 공공성을 함께 실현하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예술이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라 모두가 나누는 것이 되는 세상, 그 세상을 당신이 함께 만들어간다.

 

오윤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 40년이 지난 지금, 당신이 그 말을 실천할 차례다.

 

당신이 씨앗페에서 오윤의 작품 한 점을 구매하는 순간, 당신은 단순히 그림을 사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40년 전 오윤이 나무판에 새긴 칼자국을 이어받는 것이다. 당신은 민중의 춤사위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당신은 예술이 예술인을 구하는 아름다운 순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씨앗페 2026


일시: 2026년 1월 14일(수) - 1월 26일(일)
장소: 인사아트센터 3층 G&J 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41-1)
관람: 무료
온라인 갤러리: saf2026.com

 


 

40년 만에 돌아온 민중의 칼날.
오윤의 춤사위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이제 당신이 그 춤에 동참할 차례다.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 — 고 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