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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돼? - 백기완 3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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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2월 5일 오전, 종로구청 앞은  '고 백기완 선생 3주기 추모문화제(이하 백기완 추모문화제)' 공연장 사용 불허에 대한 항의 방문 및 기자회견으로 소란스러웠다. 구청 측은 종합민원실 출구를 폐쇄하면서 항의하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추모문화제에 대한 블랙리스트 배제 사건?

 

백기완재단, 3주기 추모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블랙리스트이후 등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종로구청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연장 사용 불허는) 추모문화제에 대한 블랙리스트 배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고 백기완 선생님은 1950년대부터 돌아가시기까지 문화예술계와 민주 활동 등에 큰 기여를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자이며 "장산곶매 이야기" 등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통일운동가로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그의 1주기 추모제는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2주기 추모문화제는 시청역 5번출구 서울광장 인근에서 열렸다. 

 

마로니에 공원의 성격에 맞지 않아서 불승인?


뉴스아트가 백기완 추모문화제 불허 배경에 대하여 종로구청에 문의하자, "공원 성격에 맞지 않아서" 공연운영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불승인했다고 하였다. 이에 '공원의 성격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문화공원'이라고 하면서 더 이상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로니에 공원은 단순한 문화공원이 아니다. 기나긴 협의 과정을 거쳐 공원과 건물 사이를 경계짓던 담장을 허물어 공간을 넓히면서 건물·공원·보행로 사이의 영역을 하나의 범주로 통합하여 경계를 없앤 곳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가장 수평적이고 누구에게나 열린 활발한 공공영역으로 평가받아온 곳이다. 

 

구체적인 기준을 계속 묻자, '장터에서나 하는 상업적인 품바공연', '소음이 심해서 민원이 들어올 수 있는 행사', '월 2회 이상 중복해서 신청하는 행사', '공원 품격에 맞지 않거나 주변 정서에 맞지 않는 행사' 등을 거절한다고 다양하게 덧붙이다가 난색을 표하며, "(예를 들어) 종교 행사라 안된다고 하면 종교 탄압이라고 하는 식이라 할 말이 없다. (공원 사용 여부를) 위원회에 완전히 위임하는데 (위원회가) 불승인 결정한 것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하였다.

 

거절은 공연운영위원회가, 해명은 공무원이?

 

거절은 위원회가 했는데 답변 책임은 공무원에게 있는 상황 자체가 문제였다. 그는 또한 백기완 문화제 측에  행사 세부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했는데 요청한 자료 7개 가운데 2개만 제출한 것도 거절 사유의 하나라고 했다. 선택적으로 행사 세부사항을 요구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더 큰 문제는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결정 구조에 있다.

 

공연운영위원회는 구의회로부터 추천받은 구의원 1인, 협회 등 관련 단체로부터 추천받은 외부 전문가나 공연 및 행사 전문가, 주민센터에서 추천받은 주민 등 총 9명을 구청장 승인을 얻어 구성한다고 했다. 임기는 2년으로 1년 추가할 수 있고 올해가 3년 째이기 때문에 내년에는 모두 개편된다고 한다.    

 

추천으로 구성, 임기 3년, 회의록 없음

 

위원들은 공개모집이 아니다. 개편 시기도 명확하지 않다. 구청 측에 의하면, 서로 안하겠다고 하기 때문에 '간신히' 추천받아서 '모신다'고 한다. 이전 위원과 중복될 가능성도 다분히 있고, 균형잡힌 구성은 고민 대상도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추천받은 사람이 구청장 승인을 못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월 1회 40분~90분 정도 회의를 하지만 회의록도 아예 없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공공기관의 회의 수당을 기준으로 참여수당이 지급된다.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위원회는 회의 결과 승인 불승인 여부만 알려주며, 공원 사용이 승인 될 확률은 통계 등의 근거는 없지만 대략 80% 정도라고 담당 공무원은 짐작한다. 하지만 회의록이 없어서 구체적인 불승인 근거 확인이 불가능하며, 민간위원들에게 따로 결정 당시의 상황을 물어볼 수도 없다고 한다. '블랙박스' 의사결정체인 셈이다.

 

생활불편 이유로 불승인했다카더라?

 

백기완 추모제 불승인은, 생활 불편을 이유로 주민들의 반대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확인은 불가능하다.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문화제가 어떻게 주민들의 생활에 불편을 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문화제가 아닌, 시위 및 집회로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2020년 김용균 추모제를 불허할 때에는 "마로니에 공원은 정치, 상업, 종교적인 행사는 원칙적으로 불허해왔다"라고 했다. 그러한 조항이 없다고 지적하자, 심의에서는 "추모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내용이 정치적인 구호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추모제를 시위 및 집회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추모제와 집회, 정치집회와 시위의 차이?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하는 모임 중에 추모제와 집회를 구분할 수 있을까? 사실은 특정인을 공개적으로 '추모'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다. 아니, 정치의 비중이 큰 사회에서는 삶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집회를 추모제라 하고 추모제를 집회라 생각하는 웃지 못할 상황은 결국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제한됨으로써 발생한다. 

 

<국제인권법>의 저자인 권혜령씨는 한국비교공법학회 저널에서 "다수의 사람이 공동의 의사를 표현하는 집회의 특성상 타인의 권리와의 상충을 제한할 필요성은 있으나 현행 집시법은 사전제한, 시간ㆍ장소ㆍ방식규제, 사후처벌 등의 규제장치로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광범위하거나 애매한 직접 규제는 위헌

 

한국의 가장 큰 우방이자 우리나라 많은 법제도의 선례가 된 미국은 주거의 평온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회 및 지위에 '면허제'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광범위하거나 애매한 규제는 위헌이며, ▲명확하고 구체적인 규제라 해도 시간제한,  사용료 부과 등 직접 규제나 편의적 법적용으로 (시위대가) 원하는 청중에게 가 닿을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하였다. 

 

공원이용승인을 "공원의 조성목적에 위배되는지 여부"와 같이 포괄적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헌이다. 그런 위헌사항을 각종 조례와 규칙에 버젓이 적어놓고 그것을 근거로 모임을 불허하거나 불법이라 하기 때문에, 집회를 추모제라 하거나 추모제를 집회라 하고 대다수 집회가 불법과 탈법의 범주를 넘나들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행정기관이 익명의 시민에게 책임 떠넘기면 안돼


지방자치단체들은, 법을 지키면서 원칙을 구현할 수 있도록 법과 규칙을 정비하고 투명하게 근거를 가지고 운영해야 한다. 행정의 책임집단이 민간위원회인 공연운영위원회 등 익명의 시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행정조차 다단계 조직처럼 운영하면 안된다.

 

백기완재단, 3주기 추모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블랙리스트이후 등은 종로구청장과의 면담을 앞두고 있다. 종로구청장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공원운영위원회 뒤로 숨지 말고, 공원운영 조례와 운영위원회의 운영방식에 대하여 책임 있는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