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삶의 파동을 그린 작가의 내밀한 시선, 김경진 초대전 '그냥 좀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URL복사

원두서점 갤러리 개관 초대전으로 선보이는 4년간의 예술적 고백
색채의 울림과 감성적 추상으로 풀어낸 현대인의 존재론적 질문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 '함께 그리기'의 12점 작품, 고독과 연결의 역설을 담아내

 

뉴스아트 편집부 |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에 자리한 원두서점 갤러리가 개관 초대전으로 김경진 작가의 초대전 '그냥 좀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를 오는 3월 18일부터 4월 26일까지 선보인다. 당초 4월 18일까지 예정됐으나 관람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일주일여 연장된 이번 전시는 커피와 예술이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 원두서점의 정체성을 반영한 의미 있는 기획이다.

 

김경진 작가는 4년 전, 로스터기와 커피 기물들로 가득 찬 단 4평 남짓한 원두서점의 작은 공간에서 '잘 지내고 계신가요?'라는 제목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제 그 소박했던 공간은 9평 규모의 독립된 갤러리로 확장되었고, 그 사이 작가 또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확고히 다져왔다. 이번 전시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가가 품어온 삶의 단상과 미학적 성찰을 총망라한 자리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언뜻 보기에 추상적이고 비구상적이지만, 그 안에는 작가의 섬세한 감정 상태와 철학적 사유가 녹아있다. 물감의 번짐 효과와 레이어링 기법, 때로는 단호하고 때로는 유려한 붓 터치를 통해 내면의 풍경을 시각화한 작품들은 '혼자이고자 하는 나', '함께하고자 하는 나',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인 나', '혼자이면서도 바깥과 연결된 나'라는 네 가지 주제 의식으로 분류된다.

 

 

특히 노란색과 파란색의 생생한 대비를 보여주는 작품 '물_No. 20 (2024)'에서는 개인의 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의 긴장감이 느껴지며, 소용돌이치는 청백색 파도를 연상시키는 작품 '물_No. 19 (2024)'에서는 삶의 변화무쌍함과 그 안에서의 고뇌가 엿보인다. 이러한 색채의 대비와 흐름은 시각적 유희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담고 있는듯 하다.

 

또한 식물 모티프를 활용한 작품인 '장미가 지기 전에 해야 할 일_240519', '빗방울보 Raindrops blanket _01 (2024)', '엄마의 열매 (2024)'에서는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 정서의 교감이 돋보인다. 분홍색 꽃과 초록색 줄기의 대비,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꽃의 이미지는 삶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상징하며, 펜 드로잉과 수채화 기법을 결합한 섬세한 표현은 작가의 뛰어난 기술적 역량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함께 그리기' 프로젝트다. 4년 전 첫 전시에서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종이에 5획의 선을 그려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바탕으로 완성한 작품 12점을 이번 전시에서 공개한다. 각각의 작품 뒤에는 참여자의 이름과 간략한 자기소개가 적혀 있어, 작품이 단순한 시각적 결과물을 넘어 관계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작품 뒤에는 이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신 관객분들의 소중한 이름이 쓰여있어요.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도, 꿈이 많은 청년도, 원두서점의 단골손님들의 이름도 있지요. 그 이름 하나하나를 저는 다 기억해요."라는 작가의 말은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예술적 시도를 넘어 진정한 소통의 매개체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원두서점의 노정선 큐레이터는 "김경진 작가의 작품은 고독과 소통, 단절과 연결의 역설적 관계를 시각화한다"며 "커피가 쓰면서도 달콤한 것처럼, 그의 그림에는 인간 실존의 양가적 감정이 공존한다"고 평했다. 이러한 평가는 원두서점이 지향하는 '커피와 문화예술의 불가분한 관계'라는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전시 기간 중 방문객들은 전시 전용으로 셀렉트된 원두로 내린 싱글 오리진 핸드드립 커피와 특별 제작된 전시 음료를 맛볼 수 있다. 이는 바리스타이자 큐레이터인 노정선 사장의 커피를 통한 전시 해석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마치 작가가 캔버스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듯, 바리스타는 커피를 통해 전시를 재해석한 것이다.

 

 

전시 종료일인 4월 27일에는 '아름다운 나선'이라는 제목의 클로징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다. 뮤지션 자이가 참여하는 이 행사는 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작가의 시각 예술을 청각적 경험으로 확장하는 시도다.

 

김경진 작가는 전시에 대해 "잘 지내라는 말을 직접 전할 수 없게 된 여러 인연들에게 조용히 보내는 마음도 담겨있고, 모두 만날 수는 없는 관객분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도 담겨있다"고 전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종종 단절되곤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작가의 성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연결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이번 전시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소중한 경험이다. 김경진 작가가 전하는 "그냥 잘 지내세요. 꼭이요."라는 메시지는 단순한 인사말을 넘어, 현대인의 존재론적 고독과 연결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