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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 젠트리피케이션, 서계동 의혹(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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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결론의 두 문서를 둘러싼 의혹 밝혀져야
모두를 곤란하게 한 불통, 오직 건축물을 위해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서계동 국립극단이 부지 개발로 쫒겨나게 생겼다. 이 개발계획은 2012년에 시작되었는데, 그동안 문화체육부에서는 현장 연극인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았다. 2022년, 사업자 선정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이 사실을 알게된 연극인들이 항의하자 부랴부랴 공청회를 열었지만, 장르간 갈등만 심화되면서 연극계는 이에 대한 항의로 거리로 나서기도 하였다. (기사 하단 관련기사들 참고)

 

이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뉴스아트에서 살펴본 결과 문제는 10년 전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우리는 문제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다음과 같이 총 4회에 걸쳐 서계동 개발 관련하여 풀리지 않는 의문을 제시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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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동 의혹 시리즈 중에서

 

국립극장 문제의 발단, 의혹 (1) - 수상한 발주, 숨겨진 결과

국립극장 문제의 발단, 의혹 (2) -  500억 극장, 1200억에?

국립극장 문제의 발단, 의혹 (3) - 예비타당성 조사는 타당한가

국립극장 문제의 발단, 의혹 (끝) - 8가지 질문

 

뉴스아트가 이번 시리즈 기사에서 살펴봤듯이 현재 서계동 개발계획의 골자는, 용지보상비 500억 만 국가가 부담하고 건설비 1235억원은 민간이 부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건설비 가운데 실제 극장 개발에 필요한 돈은 최대 591억원 뿐이다. 

 

무려 72년 동안 무주택 설움을 겪어 온 국립극단을 위해 500억 원을 마련할 방법이 문체부에 없단 말인가? 500억 원을 마련하지 못해서, 민간기업에 국민 세금으로 20년 동안 1000억 원 이상을 지원하고 시설 절반에서 나오는 월 임대 소득까지 보장하는 방법을 채택하는 것이 정말 최선일까? 

 

열악한 환경에서도 역량을 발휘하여 국립극단이라는 브랜드를 지키고 가꾸어 지금의 문화강국을 만드는 데 바탕이 되어온 사람들을 내쫒으면서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미안하지만 공사를 중단할 수 없다고 하는 정부의 문화정책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정부가 주도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사태를 둘러싼 의혹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2012년 연구결과는 왜 1년 5개월 뒤에 공지되었을까?

 

2012년 연구결과는 국립극단을 비롯해 인근 이해관계자들을 두루 인터뷰한 보고서이다. 서계동 부지를 국립극단 및 기초예술 중심의 공연장 특성에 맞게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왜 아래와 같이 1년 5개월이나 지난 뒤에 공지되었을까?

 

 

이 보고서가 공지된 시점은 블랙리스트 사건이 시작된 시점이다. 2013년 8월 16일에 국정원은 '문화예술계 좌성향 세력 활동 실태'라는 보고서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올렸고, 김기춘은 8월 21일 문체부에 ‘특정 편향(左편향)예술 지원 실태 및 대책’을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9월 3일 보고서가 청와대로 올라갔고, 같은 날 국립극단에서 <개구리>를 무대에 올렸다.

 

뉴스아트는 음모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사건을 연결짓고싶지는 않다. 다만, 당시 문체부 분위기가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2. 2013년 보고서의 주인은 누구인가?

 

서계동 개발은 국가에서 감당하기 어려워 민자 개발을 끌어낼 정도로 규모가 큰 개발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용역 발주를 문체부에서 하지 않고 국립극단에서 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국립극단이 10여년 간 어렵게 일궈낸 스스로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8월 17일 자로 확인된 바에 의하면, 2013년 보고서는 문체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지 않았고 국립극단에서는 자신이 발주처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발주처가 국립극단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보고서를 찾아보고 "딱 한 부 남아있다"고 하였다. 

 

10년 이상 준비한 지금의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개발 진행은 2013년도 연구용역을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도대체 이 문서는 왜 문체부가 아닌 국립극단에 의해 발주되었을까? 국립극단은 자신의 발등을 찍는 이 용역을 왜 발주했을까? 문서의 진짜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3. 두 문서의 방향이 전혀 달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두루 청취하고 기초예술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2012년 연구결과의 내용은, 2013년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2015년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연구자들이 2012년 연구에 대하여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아트가 지난 6월 24일 공청회에서 2012년도 연구에 대하여 질의하였는데, 이 일을 진행하는 문체부 담당자들도 그러한 연구에 대하여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2012년도 문서는 어떤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어떤 이유로 사라졌다가 1년 5개월 만에 홈페이지에 등장한 것인가? 두 문서의 방향,  즉 서계동 개발의 목적과 방향이 전혀 달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발주처가 국립극단이라면, 국립극단은 왜 2012년도 연구보고서에서 원했던 것과 전혀 다른 개발 방향을 전제로 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일까?

 

4. 1200석 규모 대극장은 어디에서 무엇을 근거로 등장했을까?

 

2013년도 용역보고서는 대극장인 예술의 전당과 국립극장의 객단가를 기준으로 이후 건립될 서계동 공연장의 객단가를 계산했다. 2015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담당했던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에서는 예술의 전당과 국립극장의 기획공연이나 대관공연의 평균 관람료를 기준으로 객단가를 산출했다고 했다. 이는 명백히 그동안 국립극단에서 수행해 오던 기초예술과는 거리가 먼 방식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13년 연구에서는 소규모 극장 3개를 없애고 근린생활시설을 늘리는 것은 공간 구성 대안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요지부동의 1200석 규모 대극장은 무엇을 근거로 등장한 것일까?

 


5.  왜 민자인가?

 

문체부는 공사비 1200억원이 없어서 민자개발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뉴스아트의 분석에 의하면, 민자개발을 하기 때문에 공사비가 1200억원이 된 것이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500억원으로 극장을 새로 지을 수 있다. 

 

행복주택 문제도 있다. 문체부는 박원순 시장 당시 재개발 제한 구역이었던 서계동에 높은 건물의 극장을 지을 수가 없어 국토부와 MOU를 맺어 행복주택을 포함함으로써 고층 개발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연극인들은 행복주택을 원한 적이 없다.

 

민자로 하려니 고층건물이 필요하고, 고층으로 지으려니 재개발 제한에 묶이게 되어 행복주택이 필요했던 것이다. 민자 개발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런데 대체 왜 민자개발을 하려고 했을까? 

 

6. 예비타당성조사를 어떻게 통과했는가?

 

2013년 12월 보고서에 의하면, 경제적 분석 결과가 0.6으로 1.0을 넘지 못하여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듬해인 2014년 5월에 시작한 KDI의 타당성 조사에서는 1.03으로 간신히 커트라인을 넘겨 경제성을 인정받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평균관람료를 대규모 공연장의 기획공연과 비싼 대관공연을 기준으로 잡았기 때문인가? 타당성 조사라는 것은 모두 이렇게 숫자놀음인가?

 

 

7. 왜 현장과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았는가?

 

국립극장에서 모두 해고된 뒤에도 연극인들은 서계동에서 시즌제 단원으로 참여하여 국립극단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연극인들과 문체부는 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는가. 문체부는 국립극단과 소통했다고 하지만, 언제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소통하였는지 밝혀 달라는 뉴스아트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국립극단의 김관모 예술감독은 연극인대토론회에서, 2020년 10월 출근 직후 전임 감독으로부터 처음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연극인 대상 공청회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다고 한다. 당시 문체부는 설계가 나와야 공청회가 가능하다고 했단다. 김감독은 그 때는 너무 늦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문체부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2021년 여름, 문체부 인사 이동으로 현재의 담당자가 왔다. 김감독이 공청회의 중요성을 재차 설명하자 문체부에서는 주요 인사 중심으로 간담회를 제안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비로소 국립극단과의 간담회도 성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감독의 우려대로 이미 때는 늦었다. 연극계의 입장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늦어진 것이다.

 

1200석 대규모 극장이 포함된 연구 용역을 발주한 당사자인 국립극단에서 그제서야 국립극단 전용 극장을 요구했으나, 문체부가 난색을 표했다. 이후, 간담회, 차담회, 공청회, 토론회, 회의  등 다양한 접촉이 있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갈등만 커졌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가 곤란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 곤란한 상황을 이용해, 기차는 계속 달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불통의 목적이다.

 

8. 비전은 있나?


김옥란 평론가는 1200석 대공연장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과연 관객이 원하는 것이며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물었다. 이는 곧, 문화예술에 대한 문체부의 비전과 원칙에 대한 질문이다.

 

국립극단을 포함한 국가기초예술 발전에 대한 계획이 있는가? 기초예술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가?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비전은 있는가?

 

서계동 공공문화공간을 둘러싼 이 복잡함과 시끄러움은, 그저 극장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와 '체육'과 '관광'이라는, 하나의 부서에서 감당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되는 분야를 한데 모아둔 이 거대한 정부부처가 과연 비전과 원칙은 가지고 있는가 하는 그런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