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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상식과 다른 법, 사례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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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찍은 뒤 계약 이행 안 해도 계약 무시 NO
계약 해지 절차 밟아놔야 뒷탈 없어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9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발행한 <예술인을 위한 법률상담·컨설팅 사례집>에는 수많은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관련기사 예술인 맞춤형 법률상담 사례집 발간) 상담 내용을 보면 대부분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상식이 현장에서 구현되지 않다보니 예술인들이 애를 먹고 굳이 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례들은 상식과 다르다. 상식과 다를 경우 예술인이 억울함을 호소해도 처리가 어렵다. 따라서 이런 건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뉴스아트에서 그런 사례를 뽑아 정리해 봤다.

 

1. 일단 도장 찍었으면 해지할 때까지는 계약서에 매인 몸

 

상대방이 계약서대로 해주지 않는다거나 폐업 혹은 잠수를 타서 내 입장이 아무리 답답해도 함부로 행동하면 안된다. 아직 계약이 해지 또는 종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계약 해지 절차부터 밟아야 한다.

 

먼저, 계약 상대방에게 언제까지 내용 위반 사항을 시정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을 법률용어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한다'고 한다. 최고란, 채무 이행을 구한다는 채권자의 의사통지로 특별한 형식이 필요 없다.

 

이렇게 해도 위반 시정이 되지 않을 때에는 계약 해지 통보를 해야 한다. 해지 통보는 반드시 상대방에게 도달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려운 경우 법원의 "공시송달"이라는 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여기까지 해야 계약 해지 절차를 다 밟은 것이다. 이후 정해진 날짜가 지나도록 상대방이 아무 대처를 하지 않으면 계약이 자동 해지된다.

 

이렇게 계약해지 절차를 밟지 않고 계약이 해지되었다고 생각하고 창작물 등을 제 3자에게 전달하거나 사용하게 하고 계약되지 않은 곳에 출연하는 등의 행위를 하면 오히려 본인이 계약 위반을 하는 셈이다.

 

 

2. 계약금 못 받았어도 서명날인하면 계약 유효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계약금을 받지 못했어도 서명 날인을 했다면 계약은 체결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상대방이 계약해지 사유를 충족하기 전에는 계약 해지를 주장할 수 없다. 따라서 계약서에는 계약 의무 불이행시 계약을 해지한다는 규정을 넣는 것이 좋다.

 

계약금을 주지 않는 등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위에 서술한대로 '최고'하여 법률상 계약 해제권을 확보한 뒤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만일 채무자가 불이행 의사 표시를 한 경우에는 최고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쌍방의 의사표시는 문자 이메일 등으로 기록을 남겨 입증할 수 있도록 한다. 내용 증명도 기록을 남기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3. 계약 해지시 계약금과 위약금의 문제

 

일반적인 계약에서 계약금을 지급한 경우에는 계약금을 포기하면 계약이 해지된다. 계약금을 받은 경우에는 계약금의 두 배를 돌려주면 계약이 해지된다. 민법상 계약금은 곧  해약금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법률용어로 '배액상환'이라고 한다.

 

하지만 예술인의 계약에는 해약금 외에 위약벌이라는 것이 있다. 위약벌은 계약 파기로 인해 남은 계약 기간에 생기는 매출 공백에 대한 보상이다. 이 법의 취지는 계약을 해지할 때 예술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손해배상(위약벌)이나 해약금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위약벌과 관련해서는 판례가 다양하다. 분명한 것은, 계약금을 100배를 토해내라거나 상대방이 파산할 정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법원에서 명백하게 제대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약서에 배상금액이 적혀 있더라도 이것이 과하다 판단되면 법원에서 임의로 낮춰주기도 한다.

 

 

4. 원고 넘겼는데 출판을 안해요 ㅠㅠ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고 9개월 내에 출판하지 않을 경우, 작가는 출판사에게 6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해 배타적 발행 혹은 출판 이행을 요구할 수 있다. 그 기간 내에도 출판하지 않으면 배타적 발행권/출판권 소멸을 통고할 수 있다. 출판 계약을 하면서 해당 출판물에 대한 배타적 발행 혹은 출판에 대하여 몇 년의 계약기간을 정했든 무관하다.

 

물론 계약금을 받았다면 계약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출판사가 계약을 위반하였으니 돌려주지 않아도 될 것같지만, 계약금의 성격이 선인세라면 돌려줘야 한다. 따라서 계약서에 어떻게 적었는지가 중요하다. 계약금과는 별개로, 민사소송에서 출판이 늦어짐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주장할 수는 있다.

 

5. 저작권 침해 권리 행사 유효기간

 

저작권에 대한 형사고소는 저작권 침해를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관련 손해배상청구는 저작권 침해 행위가 있던 날로부터 10년 이내 또는 저작권침해를 인지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6. 공동 창작물에 대한 개인의 오해

 

법령에서는, '공동 창작 의사를 가지고 각자의 기여분을 분리하여 구별할 수 없는 창작물을 만든 경우' 이를 '공동창작물'이라고 한다. 공동창작물은 별도 협의가 없다면 모든 창작자들이 똑같은 지분을 가진다.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공동창작물을 사용하려면, 기여분이 많고 적고와 무관하게 참여한 창작자 모두가 합의해야만 한다. 미완성된 공동창작물이 이후 타인에 의해 완성되었어도 저작권은 작품에 관여한 모든 창작자에게 있다. 따라서 해당 저작물을 사용하려면 창작자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공동저작의 경우에는 △공동저작계약을 해지하는 방법, △작품 종료 혹은 연재 완료 후 저작재산권의 귀속 방법, △수익에 대한 귀속방법 등을 미리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 좋다.

 

 

7. 계약서에서 '합의' 혹은 '협의'라는 말을 쓸 때 주의점

 

법적으로 '합의'는 둘이 완전히 의견일치를 본다는 의미이며, '협의'는 의논만 하면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정할 경우 문제가 될 사항은 '합의'로, 일방적으로도 정할 수 있어야 하는 문제는 '협의'로 표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속계약을 맺은 밴드의 공연 일정이나 시간을 합의로 하지 않고 협의로 한다면, 공연 일정이나 시간에 나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소속사에서는 공연 일정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공연 일정이 문제가 된다고 해서 밴드가 공연을 거부하거나 공연에 늦으면 법적으로는 밴드가 계약을 어기는 것이 된다. 

 

한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한다'고 할 경우에는 합의되지 않으면 소송을 하여 이기지 않는 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계약은 불공정 계약일 수 있다. 하지만 불공적 계약일지라도 이미 날인한 계약서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8. 동종업종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는 건 법적 효력이 없다

 

위약벌을 지급했다면, 이후 동종업계에서 일을 하거나 다른 회사와 계약해도 된다. 활동 제약을 계약 해지 조건으로 내세울 수 없다. 활동에 제약을 거는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에 위배된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의 불공정행위에도 해당한다. 또한 헌법 상 직업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법은 상식과 거리가 있기도 하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최소한이 생존에는 중요하다. 예술인들이 활동 과정에서 지나치게 포괄적이거나, 광범위하거나, 예술창작자의 권리가 장기간 제한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혹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경우, 상대방의 말이 협박처럼 들리는 경우, 이런 모든 상황은 부당계약일 확률이 높으므로 마음 약해지면 안된다.

 

예술인들은 서명날인 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꼭 서울시 공정거래종합상담센터나 예술인복지재단 등에 상담해야 한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법을 통하기 전에 서로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