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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애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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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초상화나 그려주던 심정을 담은 마음 詩
전업 작가로 나서기로 결심한 이유

최석태 미술평론가 |

 

박수근이 쓴 시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시조다.

 

마음없는 붓을 들고 오늘도 오고가고

그림은 더디고 세월은 빠르고나

못오는 청춘이라 허송하기 서러워라  - 마포로에서, 박수근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인화하면서, 자신이 쓴 시가 곁들여 나오게 한, 특이하다면 특이한 사진이다. 박수근의 굳은 얼굴 표정과 더불어 시의 내용을 읽어 보면 박수근의 남다른 결의를 볼 수 있는 사진이다. 때는 1954년 초 겨울인 듯하다.

 

 

이 시기에 박수근은 미군PX에서 미국군 사병들이 주문하는 초상화 따위를 그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사진에서 박수근은 '나는 이런 상태를 이제는 이만 그치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

 

일본 강점기 끄트머리 시기에 평안남도 도청 서기로 생활하기를 5년 여, 이어 북한 강원도 김화군 금성여자중학교 미술교사로 다시 5년 여, 도합 10년 좀 더 되는 시기 동안에 개인적으로는 안정되게 지냈다. 그러다가 전쟁이 나서 직장은 물론 집도 잃고 가족과도 헤어졌다가, 다시 조금은 안정을 취하던 때였다. 하지만 휴전으로 전쟁은 그쳤다 해도 아직 폐허속에 살아가던, 이렇다 할 전망을 세우기 힘든 때였다.

 

그런데 이 사진을 통해 선언 아닌 선언을 한 뒤에 박수근은 말 그대로 전업작가의 길을 간다. 박수근의 그림을 많이 팔아주던 반도화랑도 아직은 2년이 더 지나야 문을 열게 될 것이었다. 그는 과연 무엇을 믿고 이런 중대한 결행을 했을까! 당시 그의 나이는 40살, 이 '나이'가 그를 결심하게 한 것일까?

 

시는 옛시조나 한문시에 적지 않게 나오는 '권학문(勸學文)'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 1950년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미술교사였다. 전선이 크게 오락가락하다가 급기야 김화군을 비롯한 중부 지방이 전쟁터 한가운데가 되면서, 아내는 남편 박수근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따로 숨어지내야 한다고 하여 가족과 흩어진다.

 

덕분에 겨우 살아남기는 했으나 그 소용돌이 속에서 그만 이산가족이 된 박수근은 군산으로 흘러들어가 노동일을 하는 등, 가족의 생사도 모르는 가운데에서 오는 걱정과 외로움  등으로 제정신이 아니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다가 해를 두 번이나 넘긴 1952년 10월에 가족과 연락이 되었고, 드디어 다시 만난다.

 

안정을 찾은 박수근은 이전부터 이용하던 화방에 가서 그림을 팔기도 하여 적으나마 돈을 벌기도 하였다. 바로 그 화방에서 사무공간 환경정리를 해줄 미술가를 구한다고 해서 간 곳이 미국육군범죄수사사령부였다. 이곳은 그러나 수입이 적어서 힘들었다.

 

수근은 수입이 좀 더 많을 것으로 기대되는 곳으로 옮긴다. 그 곳이 바로 미군PX였다. 초상화 등을 그려주며 2년 정도 일한 뒤, 그림 그리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그만 둘 결심을 한 직후 사진을 찍으면서 시를 곁들여서 자신의 결의를 더욱 더 도드라지게 했다.

 

지금의 대형 유명 백화점을 징발해 미군 사병의 PX로 썼던 그 곳에서 박수근은 훗날 자신의 사람됨을 너무도 훌륭하게 묘사한 유명한 소설을 쓰게 되는 박완서를 만나는 행운도 있었지만, 더 이상 그곳에 다니기를 그만 둔다.

 

 

두툼한 겉옷을 입은 모습에서도 계절을 추정할 수 있지만, 같은 곳에서 같은 날에 찍었으리라 여겨지는 사진이 있다. 시의 끄트머리에 장소를 밝히는 정보가 적혀 있지만, 영어로 스튜디오 아폴로라고 적은 부분이 나오고, 두툼한 겉옷과 아울러 난로에 손을 가까이 대고 있는 모습이므로 겨울임을 알 수 있다.

 

박수근이 큰 결심을 하게 된 까닭을 다시 생각해보자. 나이가 40이 넘으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당시 평균 수명은 짧아서 40살이면 곧 인생을 마감하는 준비를 해야 했던 것이 분명하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도 살아났고, 작으나마 집도 마련했으니 생활상의 문제는 훨씬 적었다.

 

당시 박수근이 다니던 미군PX는 사병이 아닌 장교나 주로 인텔리 층에 속한 군속들이 일하는 곳이었는데, 그 부인들도 대개는 당시 미국에서는 드물게 대학을 나온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박수근의 그림을 알아보고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전업작가의 가능성을 보고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나머지 삶과 예술에서 그를 도우고 격려했던 여러 명의 미국여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박수근의 그림은 그 이전의 그림과 비교하여 큰 변화를 보이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