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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활동증명 간담회에서 나온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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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활동증명이 부인되면 내 삶이 부인되는 느낌
장르별 예술인들의 다양한 경험과 문제 공유

뉴스아트 김시우 기자 |

 

지난 1월 10일 한국스마트협동조합에서 예술활동증명 발급과정에서의 체험을 공유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조합원은 물론 비조합원도 참석한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공감을 얻은 것은, "예술활동증명이 부인되면 내 삶이 부인되는 느낌을 준다"는 발언이었다. 그동안은 발급기간이나 기준의 애매함 등이 문제였는데, 이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예술인들은, 왜 내 삶을 국가로부터 검증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자괴감을 나타냈다. 이런 감정은 지난 몇 년간 장르별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하면서 겪은 다양한 문제들이 쌓여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다양한 사례와 발언들이다.

 

기준대로 신청해도 탈락한다. 진짜 전업작가를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전업작가인지 아닌지를 자기들이 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전자음악은 하루 20개도 만들 수 있고 한 달에 예술활동증명 5개 받을 활동기록을 만들어낼 수 있 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은 몇 년 동안 영화 하나 찍으니 예술활동증명 받기 어렵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나름 권위 있는 웹진 등 인터넷 발표를 하고 심지어 수익이 있어도 종이책을 내는 문예지나 ISBN이 붙은 출판물이 없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다.

 

거리 퍼포먼스를 한다. 일이 많지는 않다. 예술활동증명을 받으려면 공신력 있는 공연장에서의 개인 공연 기록을 보완하라는데, 그런 게 없다. 포기했다. 맥빠진다. 내가 예술인인가 물어보게 된다.

 

아르코 다원예술 지원사업이 있는데도 이런 분야는 예술활동증명이 안된다. 윤석렬 정부 규제완화정책 중에 예술활동증명 완화가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한다.

 

전시 사실이 중앙 일간지에 기사화도 됐고 전시 증명도 있는데 내용이 시위현장을 담고 있기에 캠페인이지 전시가 아니라고 하면서 거절당했다. 음악도 그렇다. 어떤 음악은 해주고 어떤 음악은 안해주는데 구체적인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술활동증명을 접수하고 하염없이 처분만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사진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통 사진 작품은 아무 문제 없이 인정받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은 결과를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예술활동증명용으로 연말이면 풍경 사진을 찍어서 사진협회 등에서 단체전을 열기도 한다. 

 

예술기획자들은 더 어려운 입장이다. 공연을 함께 기획하고 진행했는데, 포스터나 앨범에 얼굴이 나오는 보컬은 쉽게 예술활동증명을 내 주는데 공연을 기획한 기획자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굴면서 추가 증빙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같이 무대를 준비했지만 희비가 갈리는 사례가 연극계에는 더 많았다. 

 

연극에서 단막극에 대한 홀대가 심하다. 1시간 30분 분량의 연극에 1분 출연하는 것은 예술활동증명용 경력이 되지만 50분 분량 연극에 50분 출연하는 것은 경력이 아니다. 단막극이라서 그렇다.  

 

예매사이트에 특별전이라고 올리면서 두 가지 작품이 나가고, 둘 중 하나에만 출연하면 독립적인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경력 아니라고 한다.

 

반면에 예술활동증명 발급 기준으로 인해 예술인들에게는 경우에 따라 생계가 달려 있는 예술활동증명이 그저 다양한 '이익챙기기'의 하나로 전락하기도 한다.  
 

돈만 내면 등단시켜주는 출판문예지들이 있다. 시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뭐할 수 없지만, 등단해서 예술활동증명 받으면 등단에 드는 비용을 뽑고도 남는다고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니...  

 

패널로 참가한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예술활동증명은 이미 법령과 무관하게 예술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예술정책의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현재 드러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산하단체들 뒤에 숨어있다고 비판하였다. 

 

역시 패널로 참가한 이종승 공연예술노조위원장은 "예술활동증명이 예술인증명으로 활용되면서 창작지원금,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최근에는 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까지 여기에 예술인의 생계가 달려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 중요한 문제의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검증된 회원이 소속되어 있는 협단체나, 예술인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지역 재단들과 협업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종승 위원장에 따르면 문체부가 예술활동증명 갱신 심사과정은 올해 안에 반드시 개선하고 예술활동증명 발급 20년이 넘으면 더이상 갱신 없이 종신 자격을 부여할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예술인들은 예술활동증명으로 인한 중압감에 시달리며 눈치를 보고, 보완요청 메일을 받으면서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예술인들 마음에 쌓여 온 자괴감은 예술활동증명과 예술인으로서의 존재를 비슷한 비중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간담회 막바지에 원로 예술인이 담담하게 밝힌 체험담이 참석자들을 구성된 세계, 가짜 생각으로부터 끄집어내면서 참석자들의 마음을 묵직하게 울렸다.

 

전업작가가 꿈인데 나이 67인데도 아직 전업작가가 못되었다. 오전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 작업한다. 주말엔 종일 작업하니 너무 좋다. 그림으로만 생활이 되는 친구가 부럽다. 나는 시장과 타협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 그 동안 활동한 모든 기록을 다 제출했는데 예술활동증명이 안됐다. 가짜 전시장 아니냐는 둥... 복잡했다. 어찌어찌 받았는데, 오전 알바로 수입이 있다는 이유로 아무 혜택이 없더라. 50% 할인도 나는 65세 이상이라 이미 무료이니 소용 없다. 하지만 난 젊어서 너무 힘들었기에 이 제도에 불만 없다. 증명이 젊은 사람에게 도움되면 좋겠다. 불편할 때 도움받는 걸로 생각하면 좋겠다.

 

노화가는, 예술인임을 증명 할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괜찮고 알바 하는 것도 좋다고 하였다. 그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예술(인)이냐 아니냐가 제일 중요하다. 내 작업에 진력하자."는 말로 이야기를 마쳤고 참석자들이 깊이 공감하였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서인형 이사장은 "예술활동증명을 둘러싼 상황이 질적으로 달라져서, 그것이 단지 예산의 집행과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존재 증명처럼 된 것같다"고 하면서 전혀 다른 생각과 논의가 필요한 듯하다는 말로 간담회를 마쳤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은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예술활동증명 제도개선을 위해 조합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도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