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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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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살인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6·10 국민대회’ 이후
명동성당 앞에서 연좌시위를 하고 있는 학생들.

전승일 작가 |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살인, 4월 13일 전두환 호헌 조치 대통령 특별담화 발표 등에 분노한 재야와 민주화 진영은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호헌 조치 철회 및 직선제 개헌 공동쟁취 선언'을 발표한다. 그리고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통령 후보 지명 대회일 날짜에 맞춰  6·10 국민대회를 개최하기로 한다.

 

6월 9일,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이 벌어진다. 시민학생들은 6월 10일 오후 12시 경 명동 제일백화점 앞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대규모 시위를 시작했고, 이날 오후 6시 성공회성당에서 열린 6·10 국민대회 이후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시위가 더욱 격렬해졌다. 

 

명동성당 농성은 그로부터 6월 15일까지 계속되었다. 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은 명동성당 시위는 6·10 국민대회가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불붙게 한 투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림은 당시 명동성당 앞에서 연좌시위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