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최근 급부상중인 장애예술을 통해, 장애는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지평을 여는 통로임을 실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는 사물놀이 연주단 '땀띠'도 그러하다.
땀띠는 20년 전 재활 목적의 음악치료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00가지 이상의 악기를 이용해 다양한 창작국악과 자신들만의 가락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땀띠의 공연을 '릴랙스퍼포먼스'로 운영하여 장애인 삶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릴랙스퍼포먼스는 눈치보지 않고 자유로이 입퇴장이 가능한 공연을 말한다. 그동안 발달장애인들은 공연 중에 소음을 일으키거나 돌발행동을 하여 공연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공연관람이 어려웠다. 하지만 '땀띠' 공연은 이를 제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이나 어린이, 노약자들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공연을 앞두고 지난 5월 9일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땀띠로서는 첫 기자간담회였다. 기자간담회를 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여기에서 시범연주를 선보였는데, 악기 종류가 정말 많았다. 다양한 나라의 악기는 물론, 10년 이상 땀띠의 연출과 음악감독을 맡아 온 '월드뮤직그룹 공명'에서 창작하여 제공한 악기도 있다. 이렇게 땀띠가 연주 가능한 100가지 이상의 악기 가운데, 이번 20주년 공연 <땀띠 날다 20년>에서는 40가지 이상의 악기를 선보인다고 한다.
땀띠는 2003년 자폐성장애, 지적장애, 뇌병변장애 등 서로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재활을 위한 음악치료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두들기는 것 자체가 목표였지만, 1년 정도 연습하자 사물놀이가 가능했다. 내친 김에 대회에도 나가보기로 했는데, 서류에 적을 팀명이 필요했다.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정말 "땀띠"가 나도록 연습했던 기억이 그대로 팀명이 됐다.
2012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창작국악 음반을 발매하면서 땀띠의 음악세계는 물론, 연주 악기도 확장되었다. 땀띠 음악감독인 송경근씨는 땀띠의 창작음반 녹음을 위해 함께 연습하면서 여러가지 면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 (정말 쉬운 악기인) 쉐이커를 알려주었는데 쉬운 박자조차 맞추지 못하는 거예요. 아 안되는구나. 이것이 장애구나 생각했는데 며칠 뒤에 그걸 해내는 거예요. 다운증후군은 선천적으로 박자를 맞추기 어렵다는 걸 나중에 알았죠. 그런데 함께 하면서 박자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같이 빨라지고 같이 느려지고... 음악적 호흡이란 이런 거구나싶었죠. -- 땀띠 음악감독 송경근
땀띠 멤버 이석현 연주자에 의하면, 땀띠는 장애인 예술에 대한 의무감 사명감 이런 것 없이 그저 스스로 즐기고 공연하는 데에 집중했다고 한다. 멤버들은 모두 직업이 있다. 그래서 각자의 삶이 분리된 채 서로를 존중하고, 정기연습 등의 강요나 의무 없이 하고싶을 때 모여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스케줄을 조정하여 하고싶을 때 연습하면서도 공연에 지장이 없도록 충분히 연습하려면 멤버 부모님들이 많이 희생하고 조율해야 한다. 그런 어려움 때문에 원래 5명이었던 멤버가 4명으로 줄었다. 또한 그런 어려움 때문에 나중에 새로운 멤버를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 대신, 20년 동안 같이 연습하고 같이 놀러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친해진, 그러나 서로에게 어떤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 멤버들의 유대감은 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유대를 기반으로 이제 땀띠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형태로의 협연도 가능하다.
땀띠 연주자는 조형곤(다운증후군), 이석현(뇌병변). 박준호(자폐스펙트럼), 고태욱(자폐스펙트럼)이다. 이들은 사물놀이 중심의 <소원굿>, 농악의 설장구를 재구성한 <땀띠설장구>, 여러 나라 다양한 악기를 이용한 <공간>, 연희적 특성이 강한 <땀띠풍류>와 12발상모놀음을 선보이는 <땀띠연희>, 창작악기와 리코더 음색이 어우러지는 <휘모리>, 멤버들의 구음을 들을 수 있는 <매우쳐라>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악보를 볼 줄 몰라서 모든 곡을 외워야 했고, 유전적 신체적 취약성도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5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 연습했다. 하지만 일단 익힌 곡은 최고의 집중력으로 즐기면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결과 수많은 레퍼토리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오직 연주에만 집중하는 장애연주자들만큼 '릴랙스퍼포먼스'에 적합한 연주자는 없을지도 모른다.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의 릴랙스퍼포먼스가 갖는 의미는 크다. 칼박자 따지지 않아도 박자가 맞을 정도로 하나가 된 사물놀이 땀띠 날다 20년 공연, 그리고 그들의 릴랙스퍼포먼스가 기대된다.
(연주 단체가) 20년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렵다. 정말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다. 땀띠 멤버들이 성장한 모습이 (공연에서) 보여지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느꼈을 다양한 과정이 (하나로 모여) 이 공연에서 느껴지길 기대한다. 관객이 뭔가 발견하길, 그리고 어머님들의 노고가 (연주에) 배어나오길 바란다. -- 서형원 연출
이번 20주년 공연에서는 땀띠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는 물론, 땀띠의 성장기를 담은 영상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장애인 예술가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열어젖힌 그 길 끝에 있는 비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땀띠 날다 20년> 공연 정보
o 일시 : 2024년 5월 31일(금) ~ 6월 2일(일) (금 19:30, 토일 15:00)
o 장소 : 국립극장 하늘극장
o 티켓 : 전석 2만원
o 출연 : 고태욱, 박준호, 이석현, 조형곤(이상 사물놀이 땀띠), 김수진(건반 및 해금), 강선일, 박승원, 송경근, 임용주(월드뮤직그룹 공명), 김위연(편곡 및 건반), 윤보연(첼로)
o 스태프 : 서형원(연출), 송향숙(조연출), 송경근(음악감독), 정우인(영상감독), 이희진(무대감독), 신 희(조명감독), 김규식(음향감독)
o 주최 : 국립극장, 사물놀이 땀띠
o 주관 : 사물놀이 땀띠
o 후원 :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