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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풍자 안 된다" 대관 승인 후 뒤집은 봉산문화회관…사전 심사 의무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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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심사를 거쳐 승인한 미술전시를 개막 당일 전시실 폐쇄로 차단
"내용 파악 못했다"며 사전 심사 부실을 자인
사후 검열 논란과 함께 공공기관의 행정 무책임 도마에 올라

뉴스아트 편집부 | 대구 공공 문화시설이 자체 심사를 거쳐 승인한 미술전시를 개막 당일 뒤집고 전시실을 폐쇄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문제는 행정당국이 정식 대관 절차를 통과시켜놓고 뒤늦게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 작품에 대한 사후 검열 논란과 함께 공공기관의 행정 무책임이 동시에 도마 위에 올랐다.

 

대구 중구청 산하 봉산문화회관이 정식 대관 절차를 거쳐 승인한 미술전시회를 개막 당일 돌연 차단하면서 공공 문화시설의 행정 무책임과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동시에 불거졌다. 대경미술연구원이 지난 2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봉산문화회관에서 개최 중인 '내일을 여는 미술, 대구, 미술, 시대정신에 대답하라' 특별기획전시는 작가 19명이 참여해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전이다. 이 전시는 봉산문화회관이 요구하는 모든 서류를 제출하고 운영자문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 정식으로 대관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전시 개막 당일 회관 측은 일부 작품에 대해 철거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류규하 중구청장이 직접 전시실 폐쇄를 지시했다.

 

문제가 된 작품은 작가 A씨의 '동학의국', '똥광', '팔광' 등 세 점이다. '동학의국'은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해부된 형상으로 표현했으며, 손바닥에 왕자를 새기고 신체 일부에 건진법사로 보이는 인물을 묘사했다. 작품 하단에는 "아래 괴수와 무뢰배 놈들이 역병을 여기저기 옮기고 있으니 절대주의할사"라는 문구가 적혀 의료대란을 비판하는 의도를 담았다. '똥광'과 '팔광'은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이승만 전 대통령을 화투패에 그려 풍자한 작품이다. 류 구청장은 "사회 풍자는 좋지만 개인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이어서 적절하지 않다"며 "공적 공간인 만큼 부득이하게 제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핵심은 행정당국의 태도에 있다. 봉산문화회관 대관 절차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대관 신청 안내문에 따르면 신청자는 전시계획서, 설치계획서, 출품 명단, 심사자료 등을 제출해야 하며, 특히 심사자료로 "내용을 참고할 수 있는 홍보자료 및 포트폴리오 등을 필수로 제출"해야 한다. 안내문은 "전시명, 일정, 장소, 내용, 출연진, 주최·주관, 참여자 경력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즉, 회관 측은 대관 신청 단계에서 전시될 작품의 성격과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이미 받았다는 의미다.

 

더욱이 봉산문화회관 대관은 선착순 방식이 아니다. 안내문은 "접수된 서류를 근거로 봉산문화회관 운영자문위원회에서 시설대관 적합 여부를 심사하여 결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운영자문위원회가 제출된 모든 서류를 검토하고 전시 내용의 적합성을 판단한 뒤 승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시가 시작된 후 중구 관계자는 "작가와 작품 수가 많아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전시 허가를 내줬다"고 해명했다. 이는 사실상 사전 심사 의무를 방기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대관 신청자에게는 상세한 자료 제출을 요구해놓고 정작 심사 기관은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면, 이는 명백한 행정 직무유기다.

 

중구청은 봉산문화회관 운영 조례 중 "정치적 목적의 홍보"를 금지한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예술 작품의 사회·정치 풍자까지 금지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조례의 "정치적 목적의 홍보"는 일반적으로 선거 운동이나 특정 정치 세력의 선전 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예술 작품을 통한 정치·사회 비판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 영역에 속하며, 이를 "정치적 목적의 홍보"와 동일시하는 것은 법 해석의 과도한 확장이다. 만약 정치인을 소재로 한 모든 풍자와 비판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공공 문화시설에서 금지된다면, 공공 미술관과 문화회관에서는 사회 비판적 예술 작품을 전시할 수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사후 검열의 성격이다. 행정당국이 사전 심사 단계에서 전시 내용의 적합성을 판단하고 승인했다면, 그 결정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런데 전시가 시작된 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일방적으로 전시실을 폐쇄한 것은 행정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다. 대관 신청자는 수개월 전부터 전시를 준비하고 회관의 요구대로 모든 서류를 제출했으며, 심사를 통과했다는 믿음으로 작품 운송, 설치, 홍보 등에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입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막 당일 전시실을 폐쇄하는 것은 신의칙 위반이며, 예술가와 관람객 모두에 대한 배신이다.

 

류 구청장의 "사회 풍자는 좋지만 개인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이라는 발언도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 사회 풍자와 개인 비판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 권력을 가진 정치인에 대한 비판 없이 사회 풍자가 가능한가. 역사적으로 풍자 예술은 늘 권력자 개인을 겨냥해왔으며, 이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로 인정받아왔다.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예술 작품의 내용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논리 역시 위험하다. 공공 문화시설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오히려 더 다양한 예술적 표현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번 사태는 공공 문화시설의 대관 행정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무책임하게 운영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전 심사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승인해놓고, 뒤늦게 "정치적"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전시를 차단하는 것은 행정의 예측가능성과 신뢰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더욱이 이런 조치가 특정 정치인에 대한 풍자 작품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편향성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공공 문화시설이 권력 비판을 검열하는 도구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설립 목적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봉산문화회관과 대구 중구청은 이번 사태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인정하고, 예술가들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관 심사 절차를 투명하게 개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