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공연예술인의 안전을 강화했다는 박송희법

URL복사

공연장 안전관리 감독 체계 및 법적 근거 마련
예술작품을 넘어, 현장의 예술인에 관심을
실질적 혜택 보려면 세부 시행령 개정돼야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2022년 1월 11일, 공연법 개정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세부 시행령에 ▲정부 보조금을 받은 사업에서 사고가 날 경우, 해당 정부 기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과 ▲사고로 인해 공연이 취소됐을 경우, 공연 준비 과정에 대한 인건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로 담기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고 박소희씨 부모님의 요구사항이기도 하고 이 법의 실질적 혜택을 재판 없이 예술인들이 당연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예술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할 필요가 있다. 지금 바로 공연법 개정을 맡고 있는 문화체육부 열린장관실을 온라인으로 방문해 위의 두 가지 사항을 반영하도록 요구하자. 본인 인증만 받으면 비회원 로그인으로도 의견등록이 가능하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누리고, 개정된 법안을 확장하여 적용하려면 당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2018년 박송희 추락사고(관련기사 '예술인 너 안전하냥') 이후 이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거의 모든 사고 산재 사건이 그렇듯 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지는 자가 없는 상태로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었었다.

 

예술인연대, 공공극장안전대책촉구연극인모임, 대학원생노조, KBS 실화탐사대 등에서 이 사건을 여론화시키면서 책임자 처벌과 사과, 관련법 개정을 요구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이병훈 의원(광주 동구남구을)이 이 문제를 국정감사장으로 가져갔다. 이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문체부가 매년 조사 발표하는 공연예술실태조사 항목에 공연예술 현장의 안전 문제에 대한 조사는 빠져 있다며 공연장 안전불감증을 지적했다.

 

2020년 10월 16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박종관 위원장이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는 “전도유망한 젊은 예술가의 안타까운 사고에 대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박송희 양 부모님께 진정 어린 사과를 드린다.”라고 답변했다. 사고가 난 지 2년이 넘은 때였다.

 

이후 2021년 1월 서울고등법원 민사 9부는 발주처인 김천시에게 100%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서 김천시는 유가족에게 6억 8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처분을 받았다.

 

2021년 5월 3일,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사과를 끌어냈던 이병훈 의원이 유족과 예술인들의 요구를 반영한 공연법 개정안(일명 박송희법)을 발의하였다. 이전에는 매뉴얼이나 교육 등을 통해 전달되던 사항을 법률로 명문화하여 의무화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 법안의 ‘목적’에 ‘공연장의 안전관리’를 명문화했다.

- 공연예술진흥계획에는 공연장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 무대예술 전문인 등이 업무를 안전하게 수행할 권리, 공연 관람객들에게 비상시 피난 절차를 주지시킬 의무 등을 담았다.

- 중대 사고 발생 시 보고 의무를 추가하고 이와 관련한 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공연안전지원센터(링크)를 지정하였다.

 

공연안전지원센터는 1999년 공연장 안전진단 의무조항 신설로 만들어진 기관인데 그동안 공연장이나 무대 시설의 안전진단을 시행해 왔다. 2017년 이후로 규모와 무관하게 모든 공연장 안전진단은 의무사항이었다. 2018년 대통령 지시와 2019년 재난법에 의해 이 진단 결과를 공개해야만 했다. 하지만 안전진단을 시행하는 10개 기관만 있을 뿐 관리감독 체계는 없었다. 각 기관에서 진단한 공연장 정보에 대한 정보공개요청 권한을 가진 곳도 없었다.

 

공연법 개정으로 이러한 관리감독 체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를 위해 10개 진단 기관 중 하나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이 진단시행업체에서 빠지고 감독기관으로서 공연안전지원센터와, 안전진단 결과를 공개하는 공연장안전정보시스템을 책임지도록 했다.

 

그동안 공연장에서의 안전에 무감각했던 이유는 공연장에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이란 공장, 광산, 사업소, 지점처럼 하나의 장소에서 상호 관련된 조직하에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의 일체를 말한다. 공연무대는 그 속성상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

박소희 씨가 희생된 케이스의 경우를 보자. 통상 민간오페라단 상근인력은 단장과 사무국장 두 명 정도로, 공연이 성사되면 알음알음 스탭을 모집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상호 관련된 조직하에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무대 공연은 이런 구조를 따르고 있으므로 별도의 규정이 필요했다.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이내의 노동자가 사고가 자주 난다. 매번 새로운 극장에서 일하는 무대예술인은 매번 미숙해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에 더욱 높은 확률로 노출되어 있다. 예술공연무대에서 안전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2022년 1월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공연법 개정안에는 고인의 부모님이 요청한 공연 현장 안전관리 대책이 담겨있다. 공연장 안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이에 맞춰 공연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하고,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박소희씨의 부모님과 이병훈 의원을 도와 입법에 힘을 보태준 관련자, 사건 해결을 위해 서명에 참여한 수많은 예술인과 언론 등이 함께 거둔 성과이다.

 

이병훈 의원은 입법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예술인들이 재능을 발휘할 때는 열광하면서, 그들의 노동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때는 예술인들이 투명인간이 된다”라는 말을 했다. 예술인들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 준 이 법안이, 예술작품을 넘어 예술 현장에 있는 사람, 예술인에게 관심을 갖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