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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본 괜찮은 공연,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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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가능한 황당한 상황에 오히려 더 몰입되는
배우 한 명 한 명의 뛰어난 발성과 연기력

뉴스아트 김시우 기자 |

 

왕따 문제를 다룬 연극이라 해서 굳이 볼 필요가 있나 했다. 그런데 공연마다 만석이라 하고, 다녀온 지인이 너무 좋았다고 하니 마음이 변했다. 게다가 사무실 동료가 원하는 날짜 예약이 안 된다고 투덜투덜하고, 사람이 많아 보조 의자에 앉아서 봤다는 말도 들린다.  이거 꼭 봐야겠구나싶었다.

 

사실 연극을 멀리한 지 꽤 됐다. 5년 전까지는 열심히 보러 다녔는데, 완성도 낮은 연극을 몇 번 경험하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멀리하게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오니 관심사에서 더 멀어졌다고 할까. 

 

부랴부랴 예약을 했다. 미마지아트센터 물빛극장은 마로니에공원 근처였다. 후배와 간단히 저녁을 먹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마로니에 공원을 만끽하다가 극장을 찾았다. 20분 전부터 입장하는대로 좌석배치를 한다고 했는데 극장 앞에 사람이 웅성웅성하니 마음이 급하다.

 

티케팅을 하고 좌석부터 맡아놓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공연시간이 무려 1시간 40분이라 중간에 화장실 가고싶을까봐 후배는 문간에 자리를 잡았는데 인터미션도 없고, 나가면 못 들어온단다. 한 번 더 다녀와야 하나 하는데 극이 시작되었다. 

 

 

 

교감인 듯한 여자 배우가 나오고,  학부모들이 나오고 약간의 긴장이 형성되고... 처음엔 좀 뻔했다. 이게 뭐 재미있다고 했던 거야?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저절로 빨려들어간다. 어이없는 상황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고, 예상 가능했지만 황당한 상황에 오히려 더 몰입되는 신기한 일을 경험한다. 배우 한 명 한 명의 뛰어난 연기력이 차츰 빛을 발하고, 그제야 놀란다. 나이 많은 여성 연극배우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나는 왜 몰랐지?

 

말이 안되는 대사와 행동들이 펼쳐지고 각자의 사연과 이유가 밝혀지면서 극은 관객으로하여금 옳고 그름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이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특별할 것이라고는 없는 이 소재를 적절한 발성과 발화로 끌고가는데 정신 없이 보다보니 무대의 불이 꺼졌다. 2막이 있나? 아니다. 끝이다. 배우들이 나와 무대인사를 한다. 벌써 1시간 40분이 지났단 말야?

 

나와 후배는 꽤 까다롭고 냉소적인 관객인데,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만들어진 연극이다. 좀 큰 극장에서 상영했으면 좋았겠다. 그러면 관객도 더 많이 들고, 의자도 더 편했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몰입도는 작은 극장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속가능한 공연을 위한 공연예술인 협동조합'의 공연은 앞으로 믿고봐도 좋겠구나싶다. 출연 배우들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여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궁금한데. 

 

지난 주에 사춘기 딸과 관람한 아버지의 감상으로 관람평을 마친다. 

 

"누군가의 얼굴이 보고 싶은 것은 사랑하고 그립기 때문이다. 다 그런 건 아니다.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중학생 딸을 괴롭히다 마침내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도록 몰아간 학교 친구들의 부모 얼굴을 보고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그 부모들은 하나같이 사과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 아이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삶의 고통이란 이러한 이들을 마주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통은 아이들을 위해 고안된 학교라는 장소에서부터 비롯된다.

 

함께 본 딸은 시큰둥했다. 일상에서 그런 상황을 벌써 익힌 딸의 당연한 반응일까? 고통의 유형마저 국경을 가볍게 뛰어넘게 만드는 이런 삶의 양식에서는, 사건의 단순한 전달로는 감동을 얻기 어려운 법이다.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그 부모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싶은 적의와 분노가 내게 밀물처럼 일게 한 것은 배우들의 땀 냄새 밴 열연이었다."

 

공연정보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