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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박기인가 예술적투쟁인가, 정영창 <검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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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창 작가, 작품 계약에 따른 광주시 철거 요구 거부
장소특정작품이기에 상무관 떠날 생각 없었음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영원히 전시되는 예술작품은 드물다. 그래서 많은 작품이 생애 대부분을 창고에서 보낸다. 하지만 창고에 들어가기 곤란한 일부 작품 특히 설치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대부분 바로 해체하거나 없어져 재전시되기 어려운 운명이다.

 

지금 광주에서 <검은 비>라는 대형 설치작품의 철거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2018년에 설치된 이 작품은 2022년까지 전시 혹은 존치에 대한 ‘명시적 합의’ 없이 철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18 민주항쟁 행사위원회(이하 '5·18행사위')는 "수차례 전시 연장의 과정에서 작가는 전시 기간이 끝나면 작품을 반출·철거하기로 하고 직접 자필로 서명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작가는 “이 작품은 ‘상무관’이라는 특정 장소에 설치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고, “오랜 기간 그 자리에서 추모비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작가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고, 따라서 “철거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작품이 설치된 상무관은 옛도청복원사업의 주요대상지

 

광주민중항쟁 희생자들을 안치했던 장소로 머릿 속에 각인돼 강한 상징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무관은, 아시아문화전당 건설 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옛 모습을 잃어 온 '옛도청' 복원사업의 주요 대상지이다.

 

 

아시아문화전당 건설로 변형되거나 파괴된 옛 도청을 복원하는 사업은 2016년부터 진행된 광주의 숙원 사업이다. 2018년에 설계 용역 및 설명회까지 진행되었으나 이후 코로나로 진행이 중단되었다가, 올해 7월 사업비 총액이 결정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따라서 상무관의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 <검은 비>가 철거되지 않으면 복원사업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 ‘옛전남도청복원대책위원회’의 입장이다. 상무관은 외형이 아닌 바닥을 원형대로 복원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사인한 계약서, 전시참여승낙서, 그리고 이행각서의 내용

 

먼저 5·18 38주년 특별전을 위해 5·18행사위와 맺은 <공연예술-전시계약서>이다. 4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공란으로 남아 있다. 계약 날짜인 ‘2018년 4월 01일’을 통해 날짜만 확인할 수 있다. 이 계약서에는 작품 철거에 대한 규정은 없다.

 

 

두 번째 문서는 7월 13일 광주 비엔날레 전시를 위해 아시아문화전당과 맺은 <전시참여승낙서>이다. 5·18행사위의 요청으로 광주시를 통해 아시아문화전당과 맺은 계약이다. 첫 번째 문서 종료일로부터 13일 경과 뒤에 맺은 계약이다. 계약 기간은 2018년 7월부터 11월(비엔날레 전시 종료 시)로 되어 있다.

 

이 문서에 처음으로 철거가 언급된다. 작가가 작품을 운송 설치 철거한다는 것과, 전시운영기관에서는 작품손상이나 내구성 저하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세 번째 문서는 11월 22일에 작성된 것으로 전시 계약서나 동의서가 아니라 <이행각서>이다. 전시는 11월 11일에 종료되었으니 그 이후에 작성된 것이다. 이 문서도 5·18행사위의 요청으로 광주시를 통해 아시아문화전당과 작가 사이에 만들어진 문서이다. 작품을 2019년 5월까지 상무관에 그대로 존치한다는 내용이다.

 

철거와 관련된 내용은 앞선 문서들보다 구체적이다. ‘일시존치’ 기간에 작품의 도난 훼손에 책임지지 않으며 기간 만료 및 이전요청 시 작가는 즉시 이에 따르기로 한다고 적혀 있다. 작품 보관증에 가까운 내용이다.

 

 

네 번째 문서인 철거요청 내용증명이 오기까지의 시간 간극, 복잡한 상황

 

마지막 문서는 올해 10월 11일 작가에게 직접 전달된 내용증명이다. 12월 31일까지 철거회수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이다. 

 

세 번째 문서와 네 번째 문서 사이에 시간의 간극이 매우 크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 갈등이 이렇게 커진 것일까? 뉴스아트에서는 작가와 유관단체를 취재하여 그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파악하였다.

 

우선, 세 번째 문서에 작품 존치 기간이 2019년 5월로 명기된 것은 이 해에 상무관의 접근성개선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5·18행사 기간에는 옛도청의 모든 시설이 개방됨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39주년인 2019년에는 <검은 비>가 있는 상무관만 개방되지 않았다.

 

2019년, 작품을 그대로 둔 채 상무관 접근성개선공사가 진행됐다. 작품은 철거되지도 전시되지도 않고 그대로 방치된 채 10개월이 흘렀다.

 

방치되던 <검은 비> 기증 의사가 적힌 공문과 2020년 전시 및 철거 요청 공문

 

2020년 3월 30일, 광주시는 5·18행사위에 <검은 비> 존치기간 종료에 따른 설치물 이전 등 후속조치를 취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행사위는 4월 3일자 회신을 통해 40주년에 “추모객들에게 전시되는 것이 유익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2020년 12월까지 전시 및 안내판 설치 협조를 요청했다.

 

이 공문에서 5·18행사위는 정영창 작가의 <검은 비> 기증 의사 및 광주시 ‘5·18선양과’와의 협의가 진행 중임도 밝힌다. 뉴스아트 취재에 의하면, 정영창 작가는 광주시 공무원에게 사석에서 기증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작가의 기증 의사는 2020년 4월 12일자 무등일보에 기사화되었다. 

 

광주시는 4월 14일 자로 5·18행사위의 요청을 아시아문화전당에 전달했고, 요청은 받아들여진다. <검은 비>는 그렇게 다시 한 번 대중에게 전시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아시아문화전당은 전시종료를 앞둔 6월 3일에, “건물 복원 공사(20. 12월) 준비에 따른 설치물 이전요청.”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5·18행사위에 보낸다. 복원 공사를 위해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가져가 달라는 말이었다.

 

아무튼 그 해 <검은 비>는 옛도청 순례의 마지막 코스로 상무관에서 다시 추모객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작품 옆에는 5·18행사위의 요청대로 안내판도 설치되었다. 안내판에는 오월의 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헌정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물론 '헌정'이라는 말의 함의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랐다.

 

 

전시 종료 후, <검은 비> 보존 요구 성명서가 불러온 혼란

 

전시가 끝나고 약 보름 뒤인 2020년 8월 3일, 언론에 일제히 <검은 비>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5·18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가 끝났다고 용도폐기하는 것은 참혹한 처사”라고 하면서 <검은 비> 보존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기 때문이다. 아시아문화전당에서 6월 3일에 보낸 공문 내용을 두 달 뒤에 알게된 것인지, 새로이 공문이 발송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합뉴스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광주시가 "작품의 규모가 방대해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나 이전 설치를 위한 대체 장소 확보가 어렵다"며 "인수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임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발언의 구체적인 출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일 5·18재단은 이 성명서를 '공식 논의 없이 실무차원에서 나간 것'이라면서 부인하였다. 그리고 나흘 뒤인 8월 7일 ‘옛전남도청복원대책위원회’에서 위원장단회의를 개최하여, "복원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은 이전 또는 철거"되어야 하며 "역사적 공간 사유화는 있을 수 없"으니 "광주시는 신속히 조치하라"는 회의 결과를 위 단체들의 만장일치로 발표하였다.

 

이 회의 내용은 8월 10일에 5·18재단에 보도자료로 게시되었고, 8월 3일에 게시된 내용도 수정되었다. 다만 최초 내용은 ‘당초입장성명서’라는 첨부파일로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내용이 번복되었음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정영창 작가는 <검은 비>에 대한 지지 성명 사실만 언론을 통해 접했고, 이것이 곧바로 번복되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몰랐다고 한다.

 

5·18재단이 보도자료를 정정한 다음 달인 2020년 9월, 광주시는 독일에 있는 작가에게 작품을 철거하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작가는 이에 답변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철거 의사 없음을 밝혔다. 뉴스아트가 광주시의 이메일에 정식으로 답장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작가는, “이미 기증 의사를 밝혔고, 2020년까지 추모비로서 전시되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내 손을 떠난 작품이니 시민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했다.”라고 하였다. 

 

코로나로 중단되었다가 2년 만에 다시 시작된 <검은 비> 철거 요청 

 

이후 코로나 사태가 심해지고 복원공사가 연기되면서 더 이상의 공식적인 의사소통은 없었다. 그리고 2년 만인 2022년 9월, 작가가 독일에서 전시를 위해 입국했다는 말을 들은 광주시에서 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을 회수할 것을 요청하였다. 7월부터 옛도청복원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작가는 영구존치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광주시는 작가가 다시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유관단체인 아시아문화전당, 5·18행사위와 공동으로 작가에게 작품 철거를 다시 요청하였지만, 작가는 같은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 달인 10월 11일 광주시와 옛도청복원추진단이 직접 대화를 요청하여 정영창 작가와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대화는 원만하게 흘러가지 않았고, 광주시, 아시아문화전당, 5·18행사위는 이 자리에서 작가에게 철거를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전달하였다. 

 

 

철거 요청 내용증명 전달 후 여론전으로 번지다

 

그 뒤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시 보도하기 시작했다. 정영창 작가는 10월 28일 <검은비> 존치를 지지하는 시민 41명의 의견과 서명이 포함된 문서를 제출하면서, 사실상 작품의 상무관 존치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광주시는 유관 단체와 다시 협의한 뒤인 11월 8일, 작가에게 12월 31일까지 회수할 것을 다시 요청하였다. 그리고 11월 22일 변재훈 42주년 5·18행사집행위원장이 기자회견 및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영창 작가에게 '계약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11월 26일 ‘검은비 존치를 위한 예술시민모임’(이하 예술시민모임)은 상무관 앞에서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를 하면서 <검은 비>는 “최초의 추모비라는 역사성 상징을 갖는다”고 주장하였다. 예술시민모임에는 김준태 시인, 임옥상 화가, 김상윤 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 장현우 담빛예술창고 관장, 김종배 5·18당시 항쟁지도부, 이상옥 광주 YMCA이사장 등 40여 명이 참여하고 있어서 <검은 비> 문제는 여론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알박기인가 예술작품인가 

 

작가는 직접 여러 차례 계약서에 사인했지만,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이라면서 본인 소유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예술작품의 처리가 어려운 것은 소유권 때문이 아니라 저작인격권 때문이다. <검은 비>에 대하여 상무관을 진정한 추모공간으로 탄생시킨 예술작품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작가의 의도적 알박기라 평하는 사람도 있는 것은 바로 이 저작인격권으로 인한 처리의 어려움 때문이다. 이처럼 취재과정에서 느낀 <검은 비>에 대한 온도차는 극심했다.

 

작가가 작품을 철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든, 그의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던, 어떤 평가를 받던, 작가가 직접 철거에 동의하는 계약서와 각서에 사인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협박에 의한 것이 아닌 한 계약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따라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뉴스아트의 질문에 정영창 작가는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라고 하였다.

 

작가는 처음부터 작품을 철거할 생각이 없었다

 

정영창 작가는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2017년에 상무관을 방문하였는데, 당시 상무관은 95년에 있었던 도청 이전으로 '상시' 개방되지는 않고 있었다. 작가는 이 공간을 상시 개방되는 추모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작품을 상무관에 넣고자 여러 단체를 접촉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5·18행사위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예정에 없던 출품이었기 때문에 5·18행사위에는 예산 여유가 없었고, 따라서 작가는 최소한의 지원만 받고 거의 자비를 들여 작품을 운송했다. 작품 출품을 위해서 <공연예술-전시계약서>에 사인하였고, 이후에는 작품 존치를 위해 계속해서 사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이 들어간 이후에도 상무관이 '상시' 개방되지는 않았고, 공사기간을 제외하고 5·18 특별전시 기간에만 개방되었다.

 

 

이것은 추모관 존치를 위한 예술적 투쟁이다. <검은 비>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정영창 작가의 말이다. 작가는 <검은 비>가 존치되어도 파괴되어도 유의미하다고 본다. 이것이 18년 동안 쌀 한 톨 한 톨을 붙여서 만든 폭 2.5미터짜리 대형 합판 다섯 개짜리 작품을 거의 자비를 들여 컨테이너에 싣고 독일, 뒤셀도르프, 함부르크, 부산을 거쳐 이 멀고 먼 광주까지 가져온 이유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의도를 초기에는 밝히지 않았고, 2022년 9월에야 영구존치를 요구하였다. 너무 늦게 시작된 '투쟁'은, 작가가 '계속 입장을 바꾼다'는 평가를 불러왔다. 

 

지금 상무관이 개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검은 비>는 관람이 불가능하다. 

 

*** 정영창 작가는 1957년 목포 출생으로 1983년 독일 카셀종합대학 미술대학에 입학한 이후 현재까지 독일 뒤셀도르프에 거주하며 전쟁과 폭력을 주제로 작품 활동 중이다. 1990년부터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