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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철거 시한 넘긴, 작품 <검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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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수차례 전시가 연장된 뒤에, 명시적 합의 없이 남겨진 채 철거되지 않은 작품 <검은비>는 해가 바뀐 지금도 상무관에 남겨져 있다. 광주시가 상무관 원형복원공사를 위해 지난 해 12월 31일까지 철거를 요구했지만 작가는 '이미 시민의 것'이라며 철거를 거부했고 철거 요구 시한을 넘겼다.

 


독일에 거주 중인 정영창 작가는 지난 1월 14일자 페이스북을 통해 ‘검은비 존치를 위한 예술시민모임’(이하 예술시민모임)의 이름으로 검은비를 위한 서명운동 사실을 밝히고 협조를 요청했다. 예술시민모임은 서명운동과 함께 성명서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광주의 5·18미술이 "충격적인 장면을 주저함 없이 작품으로 재현"함으로써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리얼리즘 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성"하여 민중미술의 지평을 넓혔다고 하였다. 또한 정영창 작가의 검은색 모노크롬 작업 <검은비>는 "구체적 장소와 인물 없이 성찰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광주 "5·18 예술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감수성을 제공한다"고 평가하면서 검은비가 계속 추모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공론화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예술시민모임은 2018년부터 상무관에서 추모비 역할을 해 온 <검은비> 철거에 반대해 달라면서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서명을 받고 있는데, 지난 1월말까지 온오프라인에서 서명에 참여한 사람은 450명 정도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상무관 복원공사 내용에 <검은비>를 포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검은비>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광주광역시 5·18선양과의 담당자는 올해 1월 1일자로 바뀌었다. 담당자는 다음 주에는 철거의 순서와 방식을 놓고 유관 단체와 기관의 협의를 거칠 예정이라고 하면서 상무관 원형복원을 위해 <검은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광주시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전했다.

 

상무관 원형복원을 원하는 사람들은, 2018년 최초 전시에 <검은비>와 함께 전시되었던 오월 어머니 초상화를 철거하여 어머니들에게 전달할 때 <검은비>도 함께 철거된 걸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처음부터 "영구존치를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고, 계속 연장 전시 및 존치되었기에 계약서 내용과 무관하게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나 시민의 것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계약대로 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검은비>는 예술작품이다보니 저작인격권이 성립하여,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손댈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검은비> 문제는 처음부터 극심한 오류와 오해가 발생한, 동상이몽의 사건이다. 게다가 코로나가 발생한 기간 중 무려 2년 동안에 이 문제를 놓고 쌍방이 전혀 소통하지 않으면서 그 간극을 키웠다. 뒤늦게 급하게 다시 이 문제를 꺼내다보니,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워보인다. 

 

다음은 검은비와 관련하여 뉴스아트가 파악한 진행 사항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전 기사인 알박기인가 예술적투쟁인가, 정영창 <검은 비>를 참고하면 된다.


2018년 5월 18일 ~ 6월 17일, <5·18 38주년 특별전>으로 검은비 전시 (공연예술전시계약서)

2018년 9월 ~ 11월,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시> 작품으로 사용됨. (전시참여승낙서)

2018년 11월 22일, <이행각서> 작성. 2019년 5월까지 검은비를 상무관에 존치한다는 내용.

2020년 3월 30일, 광주시가 5·18행사위에 검은비 이전 요청 공문 발송.

2020년 4월 3일, 5·18행사위에서 12월까지 검은비 전시 및 안내판 설치 협조 요청

2020년 4월 12일, <무등일보>에서 작가의 검은비 기증 의사를 보도함. 광주시는 보관할 곳이 없다면서 거절했다고 함.

2020년 4월 14일, 아시아문화전당이 5·18행사위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 (12월까지 검은비 전시 연장 및 안내판을 설치한다는 내용)

2020년 6월 3일 아시아문화전당이 12월 전시 종료 후 검은비를 이전하라는 공문을 518행사위로 보냄. 

2020년 8월 3일 5·18재단과 5월 3단체에서 검은비 보존 요구 성명 보도자료 배포했으나 당일 518재단이 실무자 착오라면서 성명서 부인.

2020년 8월 7일 ‘옛전남도청복원대책위원회’ 위원장단회의. 검은비 철거에 5·18재단과 5월 3단체 만장일치로 합의.

2020년 8월 9일 위의 내용을 5·18재단 홈페이지 보도자료란에 고시.

2020년 9월 광주시가 독일의 정영창 작가에게 작품 철거 요청 이메일 발송.  작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거부.

2022년 9월 광주시가 임시 귀국한 작가를 만나 2차례에 걸쳐 작품 회수 요청

2022년 10월 11일 광주시와 옛도청복원추진단이 정영창 작가와의 대화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철거요청 내용증명 전달. 

2022년 11월 8일 광주시와 유관 단체가 작가에게 작품 회수 재요청.

2022년 11월 22일 변재훈 42주년 5·18집행위원장이 기자회견 및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영창 작가에게 2018년에 작성된 <전시참여승낙서>와 <이행각서>에 따른 철거 약속 이행 촉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