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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보다 높은 민간단체 청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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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6월 4일 대통령실에서는 민간단체 보조금 부정비리 1865건 314억을 적발했다고 대대적으로 언론에 발표했다.

 

최근 3년 동안 3천만원 이상의 국고보조금을 받은 민간단체 1만2,000여개 단체에 지급된 6조 8,000억원을 대상으로 넉 달간 감사를 진행한 결과, 이 가운에 일부 단체가 수령한 1조 1천억 규모의 사업 가운데 314억이 목적 외 사용 혹은 개인적 사용 등 부정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314억이면 전체 국고보조금 7조 가운데 0.45%가 부정사용된 것이다. 이 말은 99.55%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보조금은 제대로 사용했다는 말이다. 금의 순도가 99%면 순금이라고 본다는데, 민간단체의 보조금 사용 청렴도는 99.6%이다. 그런데 민간단체가 보조금을 부정사용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적발된 문제들은 국고보조금 체계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부 단체 혹은 개인의 문제로 보아도 될 정도로 미미한 비중임을 숫자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정부는 내년도 민간보조금에서 부정사용액의 16배에 달하는 5천억 삭감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징벌적 대응이며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숫자에 전력대응하는 비과학적 결정이기도 하다. 이에 일부 언론에서는 "민간단체 보조금 ‘314억 부정’ 적발하고 ‘5000억 깎는’ 정부"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싣기도 했다.

 

정부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자 윤석렬 대통령은 6월 13일 민간단체 보조금 등 각종 국고보조금 운용을 원점 검토하라고 직접 지시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강한 의지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6월 14일 기획재정부에서는 민단단체 보조금 사용 엄격히 하여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을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6월 19일에는 행정안전부에서 지자체 내년도 예산편성 때 비영리민간단체 지원 지방보조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도록 요청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별도로 전국 지자체를 자체조사한 결과 572건 15억 원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모집단의 숫자와 금액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같은 날 일부 언론에는, 호반건설이 법을 악용한 벌떼입찰을 통해 1조 3천억의 부당이익을 챙겼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호반건설에 과징금 608억원을 부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정말 화가 난다'고 하였고, 기사 아래에는 부당이익 회수 없이 그걸 벌금이라고 때리느냐는 분노의 댓글이 가득했다.

 

벌떼 입찰은, 인력과 자본이 충분한 기업이 유령회사를 잔뜩 만들어 응찰함으로써 낙찰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법의 허점을 이용한 오랜 전통이고 지금의 대형건설사도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 

 

공정위는 고발권이 있음에도 벌금으로 그친 것이다. 이처럼 공정거래 위반 사건에 대한 전속 고발권이 있는 공정위에서 조사를 지체함으로써, 불공정행위 당사자 특히 대기업을 처벌할 기회를 놓치는 일이 많았다. 가습기 살균제 살인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이런 문제들보다도 민간단체보조금 문제를 대대적으로 문제삼았는데, 그 결과가 고작 314억이다. 나머지 99.55%의 보조금은 제대로 잘 쓰였는데도 0.45%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문제삼는 이유가 뭘까?

 

 

회계분야에 빈카우터(Bean Counter)라는 말이 있다. 큰 그림을 보지 않고 자잘한 비용을 아끼거나 계산이 맞지 않는 것을 문제삼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콩은 원래 말로 세는 건데 갯수를 세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우리는 대통령이 빈카운터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법의 허점을 이용할 정도로 힘세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정과 불공정을 바로잡아주기를 바란다. 규모도 방법도 부당함의 역사와 전통도 민간보조금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들, 예를 들어 본연의 역할을 못하는 공정위나 옥상옥 구조로 사업자들을 힘들게 하는 조달청 같은 곳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