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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창열전 완창 판소리<3> ‘흥보가’ 정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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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세계소리축제 이왕준 조직위원장 |

 

지난 9월 24일 막을 내린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주요 행사인 '국창열전 완창판소리'는 전주동헌에서 닷새 동안 매일 개최되었다. 판소리의 다섯 유파를 대표하는 다섯 분의 원로 국창(김일구, 김수연, 정순임, 신영희, 조상현)이 제자들과 함께 완창 판소리를 선보였다. 평균 나이 81세의 국창 다섯 분을 한 자리에 모시기까지 삼고초려의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뉴스아트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이왕준 조직위원장이 직접 쓴 완창판소리 직관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어제 하루종일 내리던 비가 그쳐 한옥마을 130년 된 동헌 하늘이 너무 해맑다. 오늘 ‘흥보가’는 박록주 바디이다. 바디란 ‘받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거로 보이는데 판소리 유파를 설명할 때 사용한다. 기악에서는 바디라는 말을 사용 하지 않고 ‘-류’라고 표현한다.

 

 

동편제 소리의 가장 대표적인 맥脈의 하나가 박록주 바디라 할수 있는데 위로는 송만갑-김정문으로 내려와서 아래로는 박송희 명창을 거쳐 오늘 정순임 명창으로 계보가 이어졌다. 정순임 명창은 2020년에 국가 주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정순임 명창은 국립창극단 시절에 박송희 명창을 통해 동편제 <흥보가>를 전수받았다. 본래 목포 출신이지만 경주에 뿌리를 내리고 지금도 경주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박송희 명창이 2017년에 돌아가시고 그 상喪을 우리 명지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루었다. 당시 전국의 모든 명인 명창 등 유명 국악인들이 명지병원에 다 집결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 뵙고 이제 이 자리에서 완창 무대를 접하려니 더욱 설렌다.

 

 

흔히 구별하는 동편제는 그 원조가 송홍록-송광록-송만갑을 정점으로 근대 5명창 등으로 퍼져 나갔는데, 서편제 소리에 비해 통성 위주이다. 소위 배 속에서 위로 뽑는, 횡경막을 크게 써서 우렁차게 소리 내는 창법을 말한다. 박력이 있고, 끊고 맺음이 무섭고, 전체 진행 속도가 거뜬거뜬해서 상대적으로 짧다는 특징이 있다.

 

오늘 노래할 박록주제 흥보가를 완성한 박록주(1905~1979) 명창은 판소리계를 주름잡고 호령한 여장부다. 1934년 조선성악연구회와 1960년대 국악고등학교(현 국립국악예고) 설립을 주도하는 등, 창극이 인기를 끌면서 변질된 판소리의 본질을 되찾고자 했다. 또한 강도근이 김정문 바디를 그대로 이어갔다면, 박록주는 창조적 계승을 위해 40대 후반 이후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시도해 갔다.

 

박타령, 비단타령이 새롭게 짠 대표적 대목이고 흥보가 과식하여 설사하는 부분 같은 재담 소리를 제거했다. 그대신 19살 한남권번 시절 김창환에게 직접 배운 제비노정기를 섞어 넣었는데, 이 제비노정기야 말로 박타령, 비단타령, 단가 백발가와 더불어 박록주 최고의 더늠이 되었다. ‘더늠’이란 판소리 명창들이 작곡 또는 변형하여 자신의 장기로 부르는 대목을 칭한다.

 

 

정순임 명창의 공연은 바디가 동편제 흥보가여서, 박록주 명창의 선 굵은 아우라가 있다. 하지만 어머니 장월중선의 아기자기한 여성적 섬세함이 곳곳에 보인다. 대표적으로 오늘도 가난타령 부분에서 먼저 가야금 반주를 대동해서 어머니 장월중선 가락으로 먼저 부른 후에 다시 박록주 원본 가락으로 불렀다. 이는 완창 무대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구성으로, 가락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정순임의 소리에 큰 영향을 미친 어머니 장월중선이 누구던가? 판소리, 가야금 병창, 춤은 물론이고 아쟁산조를 창시해서 지금 김일구 명창에게 전수한 그야말로 전통음악의 대가이다. 장월중선의 아버지 장도순도 협률사에 출연할 정도의 재주있는 소리꾼이었고, 큰아버지 장판계는 이미 판소리 명창이자 명고수로 그 이름이 엄청 높았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2007년에 장판계-장도순-장월중선-정순임으로 이어지는 가계를 ‘판소리 명가 1호’로 지정하였다.

 

 

정순임 명창은 1942년 생이니 올해로 만 81세이다. 하지만 오늘 소리하는 걸 현장에서 보니 그 성음이나 파워, 활력이 넘치는 아니리와 발림 등이 가히 60대 후반의 전성기를 지나고 있는거 같다. 정말 과장이 아니다. 끼와 재주가 넘쳐난다. 80세가 넘어서도 저리 애교스러우면서도 저리 카리스마를 품어내는 건 정말 대단한 공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제자인 정경옥과 조애란이 사이사이 마치 창극에서 역할극을 짜듯 배역을 바톤 터치하여 이어갔는데 아마 본인이 국립창극단에 오랫동안 활동했던 이력이 오늘 완창무대를 꾸미는 구성 전략에 배경이 된듯 하다.

 

 

판소리 5바탕에 서열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내용과 가사, 부르는 창자와 청중의 호응 면에서 흥보가는 가장 쉽고 대중적인 작품이다. 서민 대중이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기에 저잣거리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다. 그다음으로 여성 소리꾼이 어울리는 춘향가, 심청가가 있고, 그다음으로 남성 소리꾼이 상대적으로 어울리는 수궁가, 적벽가가 있다. 뒤로 갈수록 가사가 어려워져서 양반 식자층들이 더 즐겨 듣는다.

 

그런 의미에서 흥보가야말로 가장 대중적 정서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부富의 문제와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다. 끝까지 가사를 정독해보면 놀부는 종의 자식인 천출로서 요새 말로 졸부에 해당되고, 흥보는 몰락한 양반으로 일을 하지 않는 소위 식자충識者蟲의 무능한 지식인이다. 이 두 계층이 당시 조선조 말에 가장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집단이었다. 기본이 안 갖춰진 졸부 집단과 무능한 지식인 양반집단! 어찌 이게 200년 전의 이야기로 그치겠는가?

 

원래 흥보가는 놀부가 자기도 제비를 잡아서 떼부자가 되겠다고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에서 끝났다고 한다. 이후 판본이 보강되어서 뒷부분이 만들어졌다. 오늘 시간 문제도 있고 하여 제비 후리러 가기 바로 앞인 화초장 대목으로 끝을 맺었다. 세 사람이 같이 나와서 신나게 떼창으로 마감했다. 이미 6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덧) 동편제 흥보가는 박록주 계보 이외에도 김정문 명창을 그대로 이어받은 강도근 바디가 있다. 이난초 명창이 2020년에 정순임 명창과 함께 강도근 바디 동편제 흥보가로 주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