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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창열전 완창 판소리<4> ‘춘향가’ 신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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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세계소리축제 이왕준 조직위원장 |

 

지난 9월 24일 막을 내린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주요 행사인 '국창열전 완창판소리'는 전주동헌에서 닷새 동안 매일 개최되었다. 판소리의 다섯 유파를 대표하는 다섯 분의 원로 국창(김일구, 김수연, 정순임, 신영희, 조상현)이 제자들과 함께 완창 판소리를 선보였다. 평균 나이 81세의 국창 다섯 분을 한 자리에 모시기까지 삼고초려의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뉴스아트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이왕준 조직위원장이 직접 쓴 완창판소리 직관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현재 살아계신 분 중에서 국가 주요무형문화재 판소리 부문에서 전승보유자(=과거 인간문화재)는 총 10명이다. 제일 오래되신 분이 적벽가로 2002년에 지정받은 송순섭이고 신영희 명창은 춘향가로 2013년에 받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22년에 안숙선 명창이 춘향가로 추가 지정되었고, 나머지 7분은 모두 2020년에 한꺼번에 지정되었다.<적벽가> 김일구 윤진철, <심청가> 정회석 김영자, <흥보가> 정순임 이난초, <수궁가> 김수연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에서는 이 가운데 4분을 국창열전에 모셨다. 나머지 한 분은 조상현 명창이다. 

 


오늘 국창열전 4번째는 이 가운데 신영희(올해 만 81세) 명창의 순서이다. 그리고 오늘의 판소리는 당연히 만정 김소희 바디의 춘향가이다. 김소희 명창은 근현대 판소리 역사에서 한 획을 그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다. 비교한다면 일제 시대 임방울 명창 정도일까? 결국 박록주, 박초월 명창보다 더 큰 영예를 누렸다.

 

만정 김소희는 판소리의 원조 고향이라는 칭호를 듣는 전북 고창 출신이다. 1920년대에 조선권번 소속의 동기童妓로서 노래, 춤, 기악을 두루 배웠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여러 스승들에게 배웠다. 특히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송만갑과 정정렬의 소리를 많이 배웠고, 그 외에 박동실에게서도 많이 배웠다. 해방 후에도 박록주, 김여란 등 선배 및 동료 소리꾼들에게 조금씩 소리를 배워 자신만의 소릿제를 짰는데, 이게 요새 '만정제'라 불리는 소리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을 달밤의 기러기 울음소리'에 비견될 정도로 맑고 청아하며 미려했다. 애원성(哀怨聲) 깃든 음색은 듣는 이의 마음을 한껏 뒤흔든다. 그리고 절대 가성을 쓰지 않고 상성, 중성, 하성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 그만큼 목이 좋았다.

 

사실 김소희 제자 중 가장 총애를 받았던 두 제자는 안향련과 김동애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요절하면서 그 적통은 신영희 명창이 이어받았다. 그 아래로 안숙선을 지나서 <서편제> 영화로 유명한 오정혜가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신영희 명창의 호는 계정(繼汀)이다. 스승 만정(晩汀)의 뒤를 영원히 잇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스승의 호인 ‘만정’은 김소희 명창이 자신은 60이 다되어서도 소리의 물가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훈육하는 뜻으로 지은 것이라 하니, 그 호의 무게가 대단하다.

 

오늘 무대는 신영희 명창이 두 제자 한아름, 조수황과 같이 했다. 한아름은 아직 30대 초중반이고 조수황이는 96년생 27살이다. 신영희의 막내 제자들인데 앞길이 탄탄해 보인다. 특히 조수황은 이번에 국립창극단원으로 선발되었다 하니 앞으로 서울 무대에서 많이 볼 것 같다.

 

 

신영희 명창은 처음 시작을 선도하고 중간중간을 제자들과 번갈이 불렀다. 특히 사랑가 대목과 갈까보다 대목은 본인이 직접 불렀다. 폐활량이 짧아져서 과거의 우렁찬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소리 공력이 뻗어 나왔다.

 

특히나 오늘 고수는 살아 있는 인간문화재인 명고 김청만이 북을 쳤다. 김청만도 신영희와 함께 2013년에 전승보유자가 되었다.

 

 

앞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더라도 신영희 명창의 완창 무대는 다시 보기 어려울 듯 하다. 그만큼 오늘의 무대 자체가 역사적 의미가 있다.

 

역시 판소리의 역사는 유성기 음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제자들을 통해 살아서 후대에 내리매김되지 않으면 그 존재감과 맥이 이어질 수 없다. 신영희 명창이 오늘 공연 도중 중간 아니리에서 얘기했듯이 본인의 예술 인생이 가르치고 키우고 보살펴 온 제자들을 통해 영원히 이어지길 바란다. 본인의 호처럼!!!

 

 

이제 내일 마지막 국창 무대가 남았다. 조상현 명창의 심청가이다. 조명창은 어느 국악경연대회 금품수수 사건에 휘말려 2003년 검찰에 기소되면서 2008년 무형문화재 자격을 반납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임이 나중에 밝혀졌다. 우리 조직위원회에서 11번이나 조명창을 찾아가 삼고초려한 끝에 모셨다. 대미를 장식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