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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춤 100인무 공연리뷰, <백가지 색으로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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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영 풍물굿 담론가, 성균관대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낙동강을 따라 아파트 숲이 길게 이어지고, 낙동강과 아파트숲 사이 경계에 있는 화명생태공원에서 여섯 번째 북춤 100인무 잔치가 벌어졌다. 나는 첫회와 4회에 참여하였고 이번이 세 번째 놀러 온 것이다. 풍물굿쟁이로 도시의 풍물굿, 경계를 넘는 풍물굿이 열린다기에 부안, 진안을 거쳐 오게 되었다.

 

소리결의 100인의 북춤은 물론이고 배관호, 손영만, 원공 스님의 경상풍류가 기대되었다. 큰기(용기)놀이, 진안중평굿, 논산광석두레도 무척 보고 싶었다. 굿 벌이는 굿쟁이들의 면면과 구경 온 이들을 보니 김천, 대구, 서울, 부안, 진안, 논산, 평택, 구리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굿 하러, 굿 보러 온 이들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쟁쟁한 풍물 단체와 풍물굿 명인들을 한 판에 불러들인 소리결의 저력과 뚝심도 예사롭지 않다.

 

전날 부안에서 행사가 있었기에, 부안에서 새벽 7시도 되기 전에 출발했다. 진안중평굿 상쇠님과 용기놀이팀 6명으로 한 차를 꾸려 진안과 장수를 거쳐 11시 즈음 현장에 도착했다. 우선 놀란 것은 행사 주차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화명생태공원의 규모였다. 구포낙동강교를 건너며 행사장 천막과 깃발들을 보았건만 한참 강변도로를 올라갔다가 다시 또 한참을 내려와야만 했다. 전라도에서는 보기 힘든 공원의 규모와 다양한 시설 공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길고 긴 공원을 지나 주차장에 당도하자마자 거의 동시에 달성다사농악 배관호, 김천빗내농악 손영만, 전 함안화천농악의 원공스님을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부안에서 4시간 반 넘어 드디어 도착하였구나. 먼저 도착한 진안중평굿의 서울팀이 자리잡은 천막에 짐들을 풀고, 오늘 첫 끼니를 채운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식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막걸리와 맥주잔이 오고 가니 벌써 잔치 분위기다.

 

 

각지에서 모인 풍물꾼들이 참여한 길놀이는 첫소리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각 단체들이 차려입은 복색은 가지각색이었지만 하얗고 거대한 고깔은 소리결에서 준비하여 통일성을 보여주었다. 예쁘고 스스로 빛이 났다. 제 1회부터 만들어 써 온 100인 북춤의 고깔, 그리고 둔덕 한편에 나열되어 자리하고 있는 고깔 상자들도 일 년에 한 번 햇빛과 바람을 받으며 숨을 쉬는 것만 같다.

 

김인수 상쇠가 이끄는 길놀이패는 천천히 가락을 내고 여유롭게 치배들끼리 눈과 발을 맞추며 축제 공간 곳곳을 누빈다. 땅을 밟으며 공간을 정화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둥둥 울린다. 여기에 함께 한 큰기(용기)와 단체기, 탈을 쓴 잡색들, 아이씨밴드의 기타를 든 소리꾼 그리고 구경 나온 시민과 아이들도 뒤를 따랐다.

 

 

멀리서 듣기에 예년과 퍽이나 달라진, 많이 여유 있고 차분해진 상쇠의 쇠가락 소리와 강변 쪽에 시민들이 편하게 앉아 즐기라고 마련한 탁자, 의자 사이 나무들을 가로지르는 길놀이패가 이 공간 모든 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중앙 마당으로 이끌어낸다. 계획된 40여 분 길놀이가 길지 않게 느껴졌고, 전혀 맞춘 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길놀이굿을 통해 일상의 시공간에서 축제와 굿의 시공간을 열어낸 성공적인 절차굿이었다.

 

길놀이가 끝나고 바로 천지고사굿이 이어졌다. 이 공간을 열어 준 하늘님과 공원의 땅신(지신)님에게 잔치의 시작을 고하고 이곳에 온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누리길 기원하는 고사였다. 참으로 경상도를 대표하는 소리와 춤과 노래를 보여주실 배관호, 손영만, 원공스님, 유대상 풍물굿 명인들, 그리고 소리결이 정성으로 준비한 굿판, 고사상에 많은 이들이 술을 따르고 절을 올리며 각자의 바람을 빌었다. 다들 알겠지만 절을 하는 의미는 하늘을 숭상하고 땅에 이마를 대어 감사를 전하는 의식이자 행위이다. 풍물굿의 굴신이나 절이나 하늘 땅을 오가는 행위이며 기원이니 과연 천지 고사굿이다.

 

 

천지 고사굿이 끝나고 “단심줄 엮기” 놀이를 위해 단심주가 등장한다. 단심주는 몸통이요, 새의 날개처럼 양쪽으로 펼쳐진 색색 단심줄을 정성스럽게 모시듯이 중앙으로 이동하는 것도 하나의 절차이자 굿으로 보인다. ‘아 오늘은 단심주, 단심줄 엮기가 그저 놀이만이 아니라 상당한 역할을 하겠구나’ 예감한 바 굿판 끝까지 단심주는 놀이판의 중심에서 사람들의 몸을 이어주고 맘을 풀어주었다.

 

사실 단심줄 엮기는 하나의 솟대이자 당산나무이니 성스러운 나무, 곧 신목이 아닐 수 없다. 예사 놀이이거나 매스게임만이 아니라는 소리다. 단심줄 엮기를 많이들 하지만 본 뜻을 알며 제대로 하는 곳이 많지는 않다. 쉽게 말해 단심주를 중앙에 모셔 세우고 단심줄을 엮고 푸는 과정, 놀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우리의 중심을 세워 하늘과 땅과 어우러지는 것이 목적이다. 수십 번 단심줄 엮기를 보고, 진행도 해 본 이로써 오늘만큼 정성스럽고 치밀하게 준비하여 세심하게 진행된 단심줄 엮기는 처음이다. 그 핵심적인 정신을 이해하면서도 다양한 꺼리들을 보여주어 정말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놀이 과정은 다채로운 색줄들에 번호를 매겨 짝수는 왼쪽으로, 홀수는 오른쪽으로 돌면서 홀수와 짝수 색줄이 각각 한 번은 안으로 들어가고 한 번은 바깥으로 돌면 단심주에 단심줄이 엮어진다. 물론 두껍고 큰 키의 단심주를 여러명이 지지하여 버티는 것도 어렵고 느리고 빠른 장단에 맞춰 율동감 있게 돌고 춤추는 것도 쉽지 않다. 역기에 천을 한쪽 방향으로만 돌리고, 또 반대 방향으로만 돌리기도 했다. 그러면 단심주에 짜여진 모양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동체임을 느끼고 함께 만들어 가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는 공동체 놀이이자 의식이다. 굿판의 후반에 다시 단심주가 등장하여 대동놀이를 펼치기도 했다. 이때 천을 펼쳐서 안에서 노는 풍물꾼, 놀이꾼들을 보듬는 모습이 당산나무의 나뭇가지가 바람에 나부끼어 마을사람들을 품어 보듬어 싸는 것 같았다. 이 프로그램은 이후에도 더욱 개발되어 소리결, 북춤 100인무의 대표적인 놀이, 콘텐츠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오늘 축제의 본판은 풍물굿 ART FESTA라는 주제로 여러 공연이 준비되었다. 지역과 장르, 남녀노소,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는 다양한 공연들이 진행되면서 끊임없이 구경꾼들이 공연에 들어와 참여하는 난장과 통합의 굿판이었다.

 

소리결의 영남외북춤(북춤별동대)를 시작으로 동아리 발표회도 있었고, 밴드의 노래도 있었고 마지막에는 진안중평굿과 논산광석두레풍장 공연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합굿, 대동놀이가 단심줄 놀이와 연계되어 이루어졌다. 단심줄 엮기가 끝나고 풍물굿판의 큰 소리 사이를 아이씨밴드의 노래공연이 이어갔다. 구경꾼들 귀를 잠시 쉬게 하면서도 흥겨움과 대중적인 노래의 편안함도 선사해주었다.

 

 

 

 

 

전체적으로 풍물굿 ART FESTA의 여러 공연들은 장르와 지역,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넘어 다양하고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주었다. 각자 놀러와서 굳이 하나로 묶지 않아도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각자의 즐거움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자유롭고 풍성한 소리판, 춤판, 놀이판, 난장판으로 부산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시민들이 숨통 크게 트여낸 광장굿이 아니었을까?

 

 

다른 공연에서 선보이는 100인 피아노, 100인 설장구, 100인 000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100인 북춤이, 소리결이, 풍물굿이 주인공이 아니라 판을 열되 구경꾼이 주인이 되고 놀게 되는 풍물굿, 대동난장 정신을 실현했다. 단심주의 단심줄 엮기가 그 중심에서 시작과 끝에서 서사를 만들었고 마음을 모아냈다.

 

 

다만 한가지 현장에서 위험해 보여 아쉬운 점이 있었다. 큰기(용기)놀이는 엄청난 크기의 깃대와 깃발로 땅 상태나 바람에 따라 순간 위험해지기도 하는 곡예에 가까운 놀이다. 바람이 부는데 따라 용기가 나부끼는데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나는 순간 위험을 감지했고 중앙으로 나갔다.

 

 

아이들과 구경꾼들이 공연 판 안으로 들어오는 다른 모든 공연과 마찬가지로 용기놀이에도 아이들이 들어와 손에 손 잡고 자유롭게 놀았다. 나는 그 현장에서 몇 사람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고 기예를 펼칠 수 있게 공간을 관리했다. 두세 사람의 스태프가 공연 공간과 노는 공간을 분리하여 위험을 방지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언제든지 판 안으로 들어와 놀 수 있는 공연은 많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롭게 판 안으로 들고나는 열린 굿판, 춤추고 노는 사람들은 자체로 성숙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일반인들은 귀를 막고 지나가는 엄청나게 시끄러운 풍물굿 소리에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고 색동옷을 입고 수십, 수백 번 덤블링을 돌던 아이, 소고를 들고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대던 아이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열린 판을 벌여 백 사람이 백 가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백 가지 색을 그릴 수 있게 만들었다.

 

 

한편 경계를 넘는, 경계를 허무는 김인수 상쇠, 풍물굿패 소리결의 마음을 느끼며 어떠한 존재도 결코 대상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나도 중심이면 너도 중심이고, 내가 주인이면 저도 주인이다. 모두가 주체이며 주체와 대상은 상호적이다. 우리 사람들은 물론 나무와 가을 하늘, 구름과 낙동강, 아파트숲과 잔디밭 공원이 대상화의 존재가 아니다.

 

 

단심주와 단심줄, 악기와 악기채, 고사상과 고사상 위의 음식들, 용기와 용기수, 탈꾼과 탈 그리고 공연자와 관객 상호적인 주체다. 오늘 모든 물적 존재들이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왔고, 굿판의 과정을 통해 깨달았다. 모든 물적 존재들이 주인, 주체로 세상에서 역할을 한다. 그런 모든 물적 존재들이 자체의 역할을 드러낼 수 있게 신명으로 밝혀낸 거울 같은 굿판이 아니었을까.

 

왜?

 

존재는 서로 마주보고 서로 비추며 밝혀주니까...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햇살, 그리고 함께 해주신 모든 이들이 고마운 날입니다. 

- 풍물굿패 소리결 김인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