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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블랙리스트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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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이후' 발족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2)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12월 21일 예술인블랙리스트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꾸준히 활동하면서 준비했던 '블랙리스트 이후' 출범기념 토론회 기사 윤석열 정부의 블랙리스트란 무엇인가? 에서 계속)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성향과 정책에 따라 일정한 편향은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재정권 시절을 제외하면, 이런 편향 행위를 노골적으로 하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이런 행위를 노골적으로 할 때 '블랙리스트'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10%일 때 만들어진

MB정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서울과기대 교수인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블랙리스트 이후' 출범기념 토론회에서 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출발점인 MB정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을 상세히 다루었다. 블랙리스트라는 '국가범죄를 부인한 유인촌 장관'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함이다. 

 

광우병 사태로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10%까지 내려간 2008년 8월 27일,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의 기초가 되는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을 작성했다. 다음은 김미도 교수가 소개한 해당 문서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독자여러분이 직접 읽으면서 이 문서가 블랙리스트의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보면 좋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의 주요 내용,

블랙리스트인가 아닌가 직접 살펴보자

 

▶보수를 대표하는 '예술인단체총연합(예총)'은 구심점을 상실했다고 보고, 2006년 중도보수를 표방하고 결성된 '미래문화포럼(대표 정진수)'을 부각시켰다. (편집자 주: 이후 미래문화포럼은 주간한국에 의해 뉴라이트 문화단체라고 지칭되었으며 프레시안은 MB의 '좌파 색출대' 라고 하였다. 주간한국에 의하면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문화부와 '발을 맞췄다.)

 

▶민예총 이후 '문화연대'와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의 모임은 권력집단화 했다. 이후 좌파가 제도권 문화예술계를 장악했다. 정부 예산을 민간, 좌파인사들이 주도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등도 민간중심위원회로 개편했다.

 

▶특히 반미 및 정부 무능을 담은 <괴물>, 북한을 동지로 묘사한 <JSA>, 국가권력의 몰인정성을 담은 <효자동 이발사> 등 영화를 통한 국민의식 좌경화가 추진되었다. 

 

▶좌파예술인들도 그동안 정부 지원에 의존하면서 자본의 힘에 매우 익숙한 상태로 변화했다. 의도적으로 자금을 우파 쪽으로만 배정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문화예술인 전반이 우파로 전향하도록 추진한다. 

 

▶'건전문화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문화정책포럼'을 만들고 정부가 필요 비용을 지원한다. 기존 인사는 배제하고 젊은 소장학자 및 이론가 중심으로 조직화한다. '한국문화산업연구소'를 설립하여 우수한 우파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좌파집단에 대한 인적 청산은 소리없이 지속 실시한다. 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등 핵심기관 내부 수많은 좌파 실무자들을 청산할 필요가 있다. 문화부 지시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위원장 교체 후 위원장이 인적 청산을 독려하도록 한다. 

 

▶'문화산업모금회'를 설립하여 대통령 및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게 하고 이를 재원으로 다양한 우파 지원사업을 실시한다.

 

▶'창조문화센터'를 건립해 작품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우파 영화가 영화시장을 주도하도록 한다. 영진위를 통해 영화분야에 15편규모의 일천억원 펀드를 조성하고 우선 SKT와 협의하여 6·25 전쟁영웅에 관한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한다.  

 

▶문화부는 산하기관 인적청산, 새로운 구심세력 형성 지원, 과거 정부 지원사업 정밀 재검토, 투자펀드 조성 등의 역할을 맡는다.

 

▶기재부는 문화부 예산을 정밀 검토하여 좌파지원예산은 전액 삭감하고, 우파 지원사업에 대규모 예산지원을 한다.

 

▶2008년 9월에 이 전략(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문화부 예산 재조정 및 우파 지원계획을 구체화하기로 한다. 12월에는 2009년 예산 확정 및 좌파단체 지원 차단을 점검한다.

 

유인촌 장관은 무엇을 했길래

블랙리스트 주범이라는 말을 듣나?


문서에 적힌 계획대로 모두 실행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유인촌 장관이 최전선에서 이전 정부의 인적 청산을 지휘한 것은 여러 언론 보도 및 재판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2008년 2월에 취임한 유인촌 장관은 2008년 3월 12일, '광화문 포럼'에서 "이전 정권의 정체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발언했다.

 

이후 정은숙 국립오페라단 단장, 신현택 예술의전당 사장이 사임했다. 유인촌 장관은 무척 유능하고 추진력도 좋아서, 이를 시작으로 33개 기관 중 무려 31개 단체장을 교체하거나 공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무리한 진행으로 부당 해임 소송에 시달렸다.

 

▲2008년 11월, 임기 만료 10개월 앞둔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지만, 2010년 '해임 처분 무효' 판결로 부당 해임이었음이 입증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문화부 감사관실에서는 김정헌 문예위 위원장에 대한 특별조사 실시하고 12월에 해임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2010년 서울행정법원에서 '해임처분 취소' 판결로을 받아내 부당 해임을 입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도 좌파로 분류, 통섭교육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혹독한 감사를 실시하여 황지우 총장을 해임했다. 하지만 황총장은 교수직위확인 소송에서 승소했다.

 

유인촌 장관 취임 하루 전, 국정홍보기능을 문화부와 통합

정권으로부터의 예술 독립성 훼손

 

이명박 정부는 유인촌 장관 취임 하루 전인 2008년 2월 28일, 국정홍보처를 문화부와 통합하였다. 이 과정에서 홍보처 직원 36명이 면직되었다. 그런데 이듬해에 정책홍보예산도 189억 80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증액하고 홍보인력 64명을 증원요청하여 애꿏은 직원 36명만 희생되었다고 빈축을 샀다.


문화부의 기원은 국정홍보이다. 공보처에서 출발하여 유신시절 문화공보부로 있다가, 6월 항쟁 이후인 1989년 문화부와 공보처가 분리되었다. 이후 공보실이 국정홍보처가 되었다. 문화예술과 국정홍보를 분리하는 것은, 예술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상징성을 갖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홍보와 문화를 통합한 것이다. 

 

이렇게 문화부 산하로 증원된 인원과 예산으로 국정홍보를 강화했다. 발표에 의하면, 대한늬우스 부활, 간첩 잡는 게임인 '안보신권' 이벤트 기획, 다량의 홍보책자 배포 등이 대표적인 홍보활동이었는데, 전반적으로 퇴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줄줄이 이어진 문화예술인의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 규탄

 

결국 미술인와 영화감독이 먼저 유인촌 장관과 문체부의 독선적 전횡에 반발하여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인촌 장관의 친정이라 할수 있는 연극계에서는 2009년 6월 25일, 1037명이 "(이명박 정부의) 퇴행적 행태는 문화대중 및 예술인의 자존심과 정신적 생명권을 참담한 지경으로 유린하고 있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연극인 시국선언 때는 딱 관두고 싶더라. 명단을 일일이 다 봤다. 그 가운데 내가 가르친 애, 유씨어터에 있던 애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너무 깜짝 놀랐다. -- 유인촌 장관 인터뷰에서

 

연극인보다 훨씬 많은 1564명의 출판인들도 7월 28일 "이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기록하는 자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며 시국선언을 했다.

 

국정원 주도로 만들어진 좌파 연예인 대응팀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 규탄 성명서가 발표될 즈음인 2009년 7월, 국정원은 당시 김주성 기조실장 주도로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 정부비판 연예인 배제 퇴출 및 소속사 세무조사, 프로그램 편성 관계자 인사조치 유도 등을 실행했다. 이 사실은 2017년 국정원 개혁위원회에서 밝혀졌다.

 

'좌파 연예인 대응 T/F'는, 국제영화제 차기 위원장 후보를 배제하고 정부비판 연예이니 출연 가능성 원천 차단 및 출연 프로그램 폐지를 유도했으며, 청와대 기획관리 비서관 요청으로 문화예술단체 내 좌파인사 현황 및 제어 관리방안을 보고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82명

 

국정원개혁위원회에 의해 밝혀진 당시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명단은 이창동, 여균동, 박찬욱, 봉준호 등 영화감독을 포함하여 총 82명이었다. 그 밖에  촛불 시위 참가단체에 대한 민간보조금 지원 제한 조치 등도 명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은 '2010년도 문화파트 실적 및 내년도 업무 계획', '좌파 문화예술 단체 제어 및 관리방안', '문화연예계 종북세력 퇴출 심리적 강화' 등 다수의 문건을 만들었다.  

 

수많은 문서와 유죄 판결에도 블랙리스트를 부인한다면

소통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셈

 

2018년 1월 17일 서울지검은 「원세훈 전국정원장의 문화예술계 불법관여 및 김재철 전 MBC사장과의 공모에 의한 MBC 방송 장악 등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고 여기서 '국정원 조직을 동원' 하여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 하였으며 '정부비판적 인물들의 활동을 억압방해'하고 '각종 공작을 전개'하였음을 명확히 하였다. 

 

김미도 교수는 그 밖에 다수의 블랙리스트 정황 문건과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나 들을 사람들이 귀를 막고 있다면 무수히 많은 증표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 앞에서 유인촌 장관이 "블랙리스트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소통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셈이다.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

 

이명박 정권 블랙리스트 실행 당시 장관이었으면서도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유인촌 장관은, '좁은 문을 만들어 선별', '나랏돈으로 국가이익에 반하는 작품... 지원할 수 없다', '공산국가에서나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책임심의제' 등의 발언을 했다. 제 2의 블랙리스트 사태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장관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한편 2023년 11월 17일 이명박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계인사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배우 문성근, 방송인 김미화 등 26명이 제기한 손배소송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원장이 공동으로 각 원고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유인촌 장관의 블랙리스트 연루는 분명해졌다. -- 이미도 교수 발제문 중에서.  

 

이미 판결까지 난 사항에 대하여 인정할 수 없는 유인촌 장관은, 마치 외줄이라도 타고 있는 듯 참 외로울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