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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트라우마 일깨우는 유인촌 장관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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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9월 15일 오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유인촌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문화예술계 긴급 기자회견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문체부를 '이념부처'라고 하면서 지난 9월 13일에 문체부 장관으로 유인촌 씨를 내정했다. 유인촌씨는 2008년 2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문체부 장관에 재직하였고, 이 시기는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실행되던 시기이다.

 

박근혜 시절의 블랙리스트에 대한 수사만 진행되고 예술계 전반의 블랙리스트 수사 및 근절 조치가 흐지부지되면서 이명박 정부나 유인촌 장관 시절까지 수사가 진행되지 않아 처벌되진 않았지만, 밝혀진 사실은 많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2017년 한겨레에서 보도한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이 확보한 문건 내용이 소개되었다. 유인촌 씨 장관 재임 기간과 겹치는 기간인 2009년 12월~2011년 7월 기간에  국정원은 '좌파연예인 활동 시정' '문화예술체육인건전화 사업' '연예인 관리' '방송연예인 순화' '좌편향 출연자 조기퇴출' 등 민주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말이 제목에 들어간 문건들을 생산하였다. 확보한 문건은 손석희, 김미화, 김제동, 권해효, 신해철, 박찬욱, 김C 등 총 82명을 교체 혹은 배제를 통해 퇴출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2018년 영화진흥위원회는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사과와 혁신 다짐 기자회견'에서 유인촌 장관 재임시 영화단체 지원사업 배제리스트를 발표한 바 있다. 총 11번에 걸쳐 인디포럼, 서울인권영화제,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전북독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을 지원 배제하였고,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영화단체를 지정위탁이나 공모 등에서 배제함으로써 지원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유인촌 씨는 장관으로 임기를 시작하자 마자 국립중앙극장,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립중앙박물관,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한국언론재단 등 22개의 문화예술기관 단체장을 직권남용이라는 이유로 퇴출하였다. 이 가운데 일부는 부당해고소송을 벌여 승소판결을 받기도 하였으니, 퇴출과정이 얼마나 무리하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고영재 감독은 윤석렬정부에서 다시 시작된 독립영화예산삭감 등 블랙리스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정책들을 지적하였다. "한류의 핵심가치는 포용력"이라고 하면서 블랙리스트 사건의 주도자인 유인촌 장관 내정은 한류를 파괴하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는 '당시에 피해를 본 수많은 영화인들이 아직도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면서 유인촌 씨에게 사과하고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정윤희 블랙리스트 이후 디렉터는 유인촌 장관 시절 가장 집중적으로 좌파예술인 척결과 차별 배제가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는 "유인촌 씨는 변하지 않았다"면서, 블랙리스트로 인한 피해자보다는 그 실행에 관여된 사람들을 걱정하는 사람, '문화예술도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며 기업인이나 할 법한 말을 한  사람을 장관에 내정한 것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신아 변호사는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예술인을 탄압한 유인촌 씨가 예술인권리보장법 8조 2항에 따라 권리침해조사의 주체가 된다면 이 조항 자체가 무력화될 것을 우려했다.

 

예술인권리침해에 대한 조사는 지금도 인력부족으로 원활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우영 작가 사건은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어 특별조사팀이 만들어져 비교적 빨리 조사할 수 있었지만, 벌금에 그치는 시정조치로는 예술인권리를 지켜주기 어렵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판국에 장관조차 비협조적이면 예술인권리보장법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원이었던 송경동 시인은 "기막히고 치떨린다"고 하면서, 시민과 이념전쟁을 하자는 것이냐고 물었고 한국작가회의 권위상 연대활동위원장은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비판과 다양성을 외면하며 국민을 갈라치지 말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한국민예총의 김지호 연대사업국장은 유인촌 씨가 장관이 되면 "어떤 혼란과 피바람이 올 지" 모르겠다면서, "정권에 아부하고 굴종하는 예술인만 육성하겠다는 정책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술적 성취와 보람, 세상에 자극을 준다는 자존심으로 사는 예술인들은 모든 창의와 역량을 동원하여 막을 것"이라고 했다.

 

홍태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1인 시위를 하면 세뇌당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욕설을 해대는 사람이 장관으로 복귀하면 블랙리스트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는 블랙리스트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걱정하는 유인촌 씨 임명을 강행하면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기자회견을 시작할 즈음 빗줄기가 강해졌다. 언제나처럼 가해자는 비가 오지 않는 곳에 편안하게 앉아 있고, 피해자와 기록자들은 궃은 날씨에 길바닥에 있었다. 하지만 빗줄기는 차츰 잦아들어 모두 우산을 걷고 기자회견을 마칠 수 있었다. 블랙리스트 사건 재연을 우려하는 예술인들의 트라우마가 더이상 자극되지 않고 잦아들어, 우산을 접고 창작 활동에 몰두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국 민예총 이씬정석 사무국장과 이두찬 씨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였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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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는 블랙리스트 시대로 되돌리려는 유인촌 장관 내정을 철회하라! 

 

최근 문체부를 ‘이념부처’라고 규정한 윤석열 대통령은 유인촌 씨를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특별보좌관(문화특보)에 임명한 지 두 달이 지난 9월 13일에 문체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유인촌 씨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2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문체부 장관에 재직하던 때에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실행되었다. 이에 따라서 정권에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의 심광현, 황지우 ‘좌편향적인 노(盧) 정권 코드인사’, 한예종을 ‘문화예술계 좌파 엘리트 집단의 온상’이라고 규정하고 한예종의 예산 삭감과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문화예술 기관장들에 대한 사퇴 종용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유인촌 씨가 무려 3년 동안 문체부 장관으로 재임한 자이며 2011년에 대통령 문화특보를 역임했고 10여 년이 지난 현재 다시 대통령 문화특보로 임명된 후 문체부 장관으로 내정된 자라는 사실이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명박 정권은 문화예술계를 권력에 순응하게 함으로써 국민들의 비판 의식을 억압하기 위하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인들을 차별·배제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작성한 ①「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은 좌파 문화 세력 배제를 기조로 하여 블랙리스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전략 보고서이며 배제해야 할 문화예술단체와 예술인이 적시되어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에서 작성한 ②「문화・연예계 정부 비판 세력」자료에서 확인되는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은 총 82명으로, 문화계・배우・영화감독・방송인・가수로 구분하여 강성 성향 69명, 온건 성향 13명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이러한 “좌파 집단에 대한 인적 청산” 전략에 따라 문체부 산하 기관장들이 직권 면직 또는 해임된 경우가 최소 20건에 달하는 등 그 피해 규모가 상당하였다. 

 

지금까지 예술인들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파헤쳤던 특검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에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입장을 계속 물어왔다. 더불어 윤석열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국가범죄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가 이루어지기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예술인들의 이러한 질문과 촉구에 대한 답은 정치 풍자. 사회비판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예술검열이 반복되며 예술인들을 차별 배제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근래에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예술검열 사건만 20건에 이른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정치 풍자, 사회문제를 다루는 예술을 ‘정치적으로 오염된 것’이며 예술이 아니라고 한다. 유인촌 문화특보는 모 언론지 인터뷰에서 “문화·예술도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쥐꼬리만한 예산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경쟁이 될까? 생계 보조형 지원은 그만해야 한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확실하게 밀어줘야 한다.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하겠다는 영화들까지 왜 정부가 돈을 줘야 하나.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의 미래 문화발전을 도모할 청년예술가들에게 성장할 기회가 아닌 국가에 기여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블랙리스트로 고통받은 예술인보다는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공무원과 산하 기관 직원들의 심리상태를 걱정한다고 했다. 정치적 균형점을 갖지 않고 좌파 예술인 척결만 주장하는 수구 정치집단과 같은 인식으로 예술인 권리 침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유인촌 특보에게 과연 문체부 장관으로서의 책임과 윤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에게 코로나 펜데믹으로 여전히 생존의 위기에 놓인 예술인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 행위를 침해하고 다양한 문화예술인의 예술 활동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전체주의, 파시즘 국가로 전복하려는 범죄이다. 유인촌 특보의 입에서 쏟아지는 그 말속에서 파시즘의 유령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결국 블랙리스트 진상조사가 미진한 채로 마무리 될 수밖에 없어서 ‘혐의자’에게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에 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바라는 우리들의 상처는 더욱 깊어져야만 하는가 그래서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 사태가 국가가 공권력을 오・남용하여 예술인들을 억압한 위헌적 범죄를 저지른 것임을 다시 상기시키고자 한다. 

 

윤석열 정부는 블랙리스트와 팬데믹으로 고통받은 예술인들에 대한 억압을 멈추고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예술인 직업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유인촌 씨를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반민주적 위헌적 전체주의 정부임을 국민 주권자 앞에서 천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윤석열 정부에게 대한민국의 ‘지금’과 다가올 미래를 가로 막는 국가폭력을 무한증식 시키는 암전같은 블랙리스트 시대가 다시 도래하기를 바라는지 묻는다.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촉구한다. 
대만힌국을 블랙리스트 시대로 되돌리려는 유인촌 장관 내정을 당장 철회하라!  
그리고 윤석열 정부와 국회에 요구한다. 
다시는 유인촌 씨와 같은 블랙리스트 혐의자가 국가 권력의 자리로 복귀하여 예술인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특별법’을 제정하라! 


2023년 9월 15일 

유인촌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문화예술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