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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향도 전시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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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2월 21일 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에서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제 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계획안 발표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미 예고되었던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되었다. 

 

 

보이지 않는 물질, 향(냄새)로 감각적 경험 확장

 

전시장에서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수집한 '향기 메모리'를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향(냄새)을 전시한다. 향(냄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획의도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물질도 물질이다." 관객은 여기서 작품 주제인 '우스(OUSS)'를 느껴본다. 우스는 물질과 비물질의 영역을 뛰어넘어 '감각적 경험의 또 다른 확장'을 할 수 있는 만능 존재이다. 구정아 작가가 1990년대에 창안한 개념이다.  

 

본 전시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한국과 전시

 

한국관 30주년 전시 및 여타의 한국 전시들은 본 전시 주제와 무관하게 열린다. 하지만 한국관 전시는 본 전시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한국관 공동예술감독 이설희씨는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냄새)의 기억을 수집하기 위해 고향에서 거주하지 않는 전세계 다양한 사람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한국계 입양인, 세계 각지의 한인, 북한 이탈 주민,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서울의 외신기자 클럽, 한국계 미국인 등, "지구상에 사는 전 세계 이방인"들에게서 사연을 들었다. 본 전시 주제인 "어디에나 있는 이방인"들이 한국의 자화상을 만드는 데에 참여한 것이다. 

 


한국관 공동예술감독인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향은 개개인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방인으로서 기억하는 고향의 향은 모두 다르다."면서 본 주제와 이번 설치미술 사이에 구체적인 접점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라 간에는 경계가 있지만 향에는 경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향이 어디에나 갈 수 있듯, 이방인도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향'이기도 하고 '냄새'이기도 한 고향에 대한 추억,

아름답지 않은 냄새도 향으로 재현

 

이번 전시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은, 600편의 사연을 어떻게 향기로 구현하는가이다. 한국의 향수 기업 논픽션이 이 일을 맡았는데, 이현정 조향담당자는 600편의 사연에서 중복되는 키워드들을 뽑아내고 이를 시대적으로 분류해 촉각적 언어로 변환한 뒤 각 시대를 향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이설희 공동 예술감독은 이 지점에서 '향'과 '냄새'라는 단어가 갖는 서로 다른 의미를 이야기하였다. 통상 '향'은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냄새'는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두 단어를 번갈아가면서 선입견 없이 쓰고자했다고 한다. 

 

향은 시간이 감에 따라 변화하고 사라져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향을 삶으로 받아들였으면 해서 '좋지 않은 향'도 만들었습니다.  -- 김설희 예술감독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대한 두 가지 우려

 

논픽션은 이러한 조향 작업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로 한 개의 커머셜 향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향기화 과정의 어려움과는 별개로 비엔날레 한국관이 이 한 개의 커머셜 향과 논픽션 기업에 대한 마케팅 장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또한 전시장 전체가 향으로 뒤덮일 경우 향이 서로 섞일 가능성과 몰려든 관객으로 인해 향이 변할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었다. 게다가 기억 속의 향은 추억만 아름다울 뿐 실제로 아름답지 않은 향도 있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한국의 향기는 과연 어떨까?

 

오픈콜에 참여한 사람들이 보낸 향의 기억 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서 나는 냄새... 할머니 품에서 나는 냄새... 중학생이 되어서야 죽어가는 세포의 냄새임을 알았다...(서울, 1996) ▲장농속 나프탈렌 냄새(대구, 1999), ▲한강 퇴적물의 물비린내(서울, 1986) 텅스텐 관상 석탄 냄새, ▲지독한 염소우유 냄새(북한 단천, 1942) 등도 있다.  

 

실제로 1970년~80년대의 향기는 오염된 공기와 먼지, 탄내 등이고, 2000년 이후는 비온 뒤 아스팔트 향기와 금속 냄새 등이었다고 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그런 향이 뒤섞인다면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밖에 없다. 

 

경계없이 넘나드는 다양성 담은 공동미래에 대한 바램, <오도라마 시티>

 

야콥 파브리시우스는 좋은 지적이라고 받아들이면서,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섞이고 변하는 것은 모두 향의 특성이니 수용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아무래도 한국의 향기는 매우 다양성을 띌 것  같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범주가 더 넓어지고 확장되며 또한 한국인으로 선뜻 포섭되지 않는 무리와도 교류하기를 고대하는 작가와 예술감독들의 바람대로. 

 

 

이방인이라는 개념은 (외국인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게도 있다... 경계가 없(이 넘나드)는 향을 전시하는 것은 공동 미래에 대한 바램이다.   -- 구정아 작가

 

이설희와 야콥 파브리시우스 예술감독, 그리고 구정아 작가는 모두 고국이 아닌 곳에서 이방인으로 활동한다. 이번 전시에 보내진 향의 기억과 관련된 600편의 사연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막시 웹사이트에 공개할 예정이다. 

 

'향(냄새)'을 전시하는 한국관은 다섯 개의 요소로 구성된다. ▲향을 퍼뜨리는 디퓨저 조각, ▲전시장 나무 바닥에 새긴 무한대 기호, ▲뫼비우스 띠 형태의 나무 설치 조각, ▲월  페인팅, ▲600편 이상의 설문을 '향'으로 표현한 16개의 설치향이다. 보편과 특수를 넘나드는 향의 전시 방식으로 관객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