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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정이 '공연예술창작산실'에 네 번이나 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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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발표가 3월에 마무리된다. 올해도 우수한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었지만 그 가운데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긴 공연 가운데 하나가 <무한수렴의 멀티버스>이다. 이것은 전통 분야의 공연이다. 그런데 공연의 내용은 '현대음악'이다. 현대음악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허윤정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공연이었다. 그가 한 번도 오르기 어렵다는 창작산실무대에 네 번이나 오른 이유다.  

 

 

시작은 평이했다. 거문고, 아쟁, 징과 함께 진도 씻김굿 가락이 퍼졌고, 소리가 가미됐다. 하지만 다음 곡부터는 현대음악의 색깔이 강했다. 곡조와 가락보다는 음색이 강조되고, 흔히 감상하던 음악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소리를 탐구했다.


특히 이번에 초연된 신곡 '엽葉 Tide Wave 소리빛 불의 파도'는 거문고 대금 이중주로 시작하여 강력한 타악기가 결합하여 숨쉴틈도 없이 몰아치는 연주로 종국에는 관객을 블랙홀로 빨아들이고, 그 이후의 평안함까지 맛보게  한다. 객석에서는 브라보가 터져나왔다.

 

연주는 블랙홀에서 빠져나온 관객을 즉흥연주로 인도하여 자유로운 조화를 맛보게 한 뒤 전통 음악인 시나위로 마무리한다. 

 

 

허윤정의 이번 공연에서는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거문고가 중심이 되어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트럼본, 백파이프, 기타, 대금, 클라리넷, 사쿠하치 등이 모두 특별한 음색을 낸다. 이들이 한결같이 기존의 화성법에서 벗어나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는 다양한 리듬과 소리를 만들어내며 '공존과 순환'한다. 그런데 거슬릴 수도 있는 짧은 비명과 같은 소리들이 서로 반복적으로 뒤섞일 때 조차도 보통의 현대음악보다 훨씬 안정감 있게 다가온다. 그 중심에 거문고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마치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과 같습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행성들은 때로는 불안정하게, 때로는 안정적인 모습으로 언제나 우주의 진리 속에서 서로에게로 향하는 길을 찾아냅니다.   -- '궤도공명' 곡해설에서.

 

 

정서가 불안한 사람은 현대음악을 감상하기 어렵다고 한다. 클래식에 비해서 음악의 구조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수렴의 멀티버스>는 클래식처럼 들을 수 있는 현대음악이었다. 서로 수렴되는 패턴의 반복을 통해 경계를 허물고 공존과 순환을 보여주고자 했던 무대 디자인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고, 아르코 예술극장의 회전무대를 최대한 활용하여 신비로운 느낌도 더했다. 

 

클래식에서도 전통 음악에서도 자신의 음악 '취향'을 발견하지 못한 독자라면, 허윤정의 음악에서 전혀 다른 감각과 경계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