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편집부 | 2025년 10월 15일부터 28일까지 57th 갤러리에서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열리는 칡뫼 김구 작가의 개인전 ‘황무지, 유령의 벌판’은 우리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고발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분단된 현실과 자본주의의 폐해 속에서 신음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총체적 파국을 ‘황무지’와 ‘유령의 벌판’이라는 상징적 공간으로 그려낸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을 그릴 뿐이다"
칡뫼 김구는 작가 노트를 통해 자신의 예술이 "내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이자 "시대의 모습이자 기록"임을 분명히 한다. 그는 동서양이나 장르,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목격한 세상의 본질을 담아내고자 한다. 작가는 그림의 기원을 반구대 암각화에서 찾으며, 예술의 본질이 감각적 표현을 넘어 공동체의 가치와 삶의 이야기를 구현하는 데 있음을 강조한다. 그에게 그림은 허공으로 사라지는 말을 붙잡아두는 이미지이자, 이야기 그 자체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분단의 세상이고 문명의 세례 아래 신음하는 인간들이 살고 있"으며, "자본에 휘둘리는 낙오자가 보이고 우리가 만든 가짜희망 우상의 세계이며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황무지"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그는 "숨어있는" 진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다.
작품으로 드러나는 시대의 초상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작가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대표작 <황무지, 유령의 벌판>은 제목 그대로 황량하고 스산한 풍경을 통해 현대 사회의 정신적 공허함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어지럽게 널린 확성기와 'DANGER'라고 쓰인 폴리스라인은 소통의 부재와 억압적인 현실을 암시한다.

<스트롱맨 (독재자)>는 시진핑과 트럼프로 보이는 두 인물의 얼굴을 분열시키고, 그 주변을 해골과 철조망으로 채워 넣어 권력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희생을 고발한다. <백악관의 가로수 (All Kill)>와 또 다른 백악관을 그린 작품에서는 핏자국과 불길한 분위기를 통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다.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이렌'과 '확성기'는 일방적인 이데올로기의 선전과 폭력적인 소음을, '불타는 십자가'는 왜곡된 신념과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건현장>, <단두대가 보이는 풍경> 등의 작품 제목은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날카로운 인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칡뫼 김구의 작품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풍경이나 인물화가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과거 전시를 통해 본 작가의 꾸준한 문제의식
칡뫼 김구의 이러한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의 이전 전시 이력은 시대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온 예술가의 행보를 보여준다. 2024년 '황무지, 우상의 벌판전', 2023년 '후쿠시마 조삼모사전', 2023년 '10.29 이태원 참사 넋기림전', 2019년 '대한민국 검찰전' 등 그의 전시 제목들은 그가 동시대의 주요한 사회적 이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예술로 표현해왔음을 증명한다.
칡뫼 김구의 예술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민낯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의 '황무지, 유령의 벌판'은 절망의 공간인 동시에,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역설적인 외침으로 다가온다. 이번 전시는 예술이 어떻게 시대를 증언하고, 우리에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