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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에 대한 극단적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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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금에 대한 불편한 시선
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이중 잣대와 비현실적 기대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2022년 아르코 현장대토론회에서 '극단 신세계' 김보경 부대표는 '지원'을 받으면 감수해야 하는 외부 시선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다.

 

당시 '극단 신세계'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중장기 창작지원 단체로 선정되어 다년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사례금을 주면서 장기적 활동과 실험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극단은 여전히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최저임금을 주기도 어렵다고 했다. '억대 지원금'을 받아도, 지원금 덕분에 좋은 작품을 만들어 티켓 매진을 기록하고 기타 수익까지 올려도, 정산해 보면 손익분기에 못 미친다고 하였다. 

 

지원금 받았으니 형편 넉넉하지 않냐는 따가운 시선

 

외부의 시선은 다르다. 남들은 못 받는 지원금을 받았으니 형편이 넉넉하지 않을까, 넉넉하니 이런 저런 일에 협력할 수 있지 않은가, 그냥 해 줄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원금을 받은 사람도 받지 못한 사람도 모두가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2022년 12월 뉴스아트에서 기사화한 전남문화재단의 <바람의 노래>라는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2년 간 3억 6000만원 지원 프로젝트로 선정되었으니, 얼핏 생각하면 꽤나 넉넉할 것 같다. 참가 예술인에게도 적절한 보상을 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사정은 여전히 넉넉지 않다. 

 

전담인력과 단기인력을 포함하여 인건비로 지급되는 비용은 전체 예산의 10%로 제한되어 있다. 이 경우 3600만원이다. 전담 인력 한 사람에게 몰아준다 해도 연봉 1800만원으로, 풀타임으로 진행한다면 최저임금도 안되는 셈이다. 

 

기타 회의진행비, 간담회비, 여비, 임차료, 재료비와 사례비 등 빼곡할 정도로 자세하게 비용지출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어 유연성이 떨어지는 와중에 그나마 아티스트피를 지급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이런 제약 속에서 아티스트피가 많아질 수가 없다.

 

화천대유 퇴직금 50억 원보다 더 크게 비난받는 예술인 지원금

 

아들이 화천대유에 근무하고 50억 원이라는 거액의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논란이 됐던 곽상도 의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가 작품 전시나 판매의 댓가로 받은 돈을 놓고 수차례 공격했다.

 

정읍 시립미술관 전시 대가로 295만원을 받은 것을 포함하여 2년 동안 6개의 문화재단이나 미술관 등에서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아빠찬스'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지원금에서 작품 제작비용이나 운반 설치비용 그리고 재료비를 빼면 과연 얼마나 남길래 아빠찬스라고 할 수 있을까싶다.

 

그가 문제삼고자 한 것은 돈의 액수보다는 자격과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준용씨가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아티스트이며 그의 아이디어인 'Augmented Shadow(증강 그림자)’가 예술적 성과를 거두며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평가도 많았다. 곽상도 의원은 자신의 아들에 비해 예술인에 대하여 너무 극단적인 잣대를 들이댄 것이 아닐까?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당연시하고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인정하면서, 예술인의 어려움은 개인적인 선택으로 보고 예술과 유희를 동일시하면서 가난과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중잣대는 예술인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불공평하다.   

 

 

더 무서운 것은 이 잣대가 내부에서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하다는 것이다.

 

젠더 감수성 등, 바뀌어야 할 가치관도 공론화 과정 없이 예술인 부담

 

우리 시대를 관통한 노래꾼 중에 '백자'라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소위 "현장"에서나 명맥이 유지되는 민중가요를 평생을 바쳐 불러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오랜 성과는 2021년 "나이스 쥴리"라는 노래 하나로 산산이 부서졌다.

 

여성혐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노래가 광범위하게 유통되자,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민주노총과 민중운동 진영이 가수 백자와 노래패‘우리나라’에게 작금의 사태에 대해 사과와 반성이 없다면 무대에 설 수 없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고 하였다. 백자는 자신의 유튜브에 "여성 혐오가 아니라 쥴리 혐오이고 권력자 혐오"라는 요지의 해명을 올렸지만, 이후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무대에서 백자를 볼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민주노총 뿐 아니라 그동안 단골로 오르던 거의 모든 무대에서 백자를 볼 수 없었을뿐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한 백자 소속 노래패인 <우리나라>가 분열되기도 했다. 백자의 젠더감각이 예민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면이 있다는 이유로 그의 모든 커리어가 부인당한 것이다. 그의 노래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만, 이 문제는 공론화되지 않고 백자 개인의 실수로 치부되면서 잊혀졌다.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이 문제가 된 이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예복)의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은, 사업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예술인들에게 가뭄의 단비같은 사업이다. 하지만 이것이 예술인의 내부고발로 문제가 되었다.

 

2018년, 일부 예술인이 파견지원사업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편법으로 대가를 받아간다면서 동료 예술인이 고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복에서 실태조사에 나서면서 예술인 200여 명이 한달치 임금을 제 때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파견지원사업은 심심하면 건드리는 비리의 온상, 놀고먹는 예술인에게 한달에 100만원이나 주는 요술보따리처럼 취급되었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잣대가 예술인에게 더욱 가혹해 보인다. 예술인의 곳간이 너무 말라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다.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면, 타인보다는 나의 예술작업에 관심을 갖고 대중의 평가로 판단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여건은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예술인의 지위는 어떠한가? 사회적 불행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몸을 숙여야 하는 사람은, 그 사건의 책임자가 아니라 예술인이었다.

 

사회도, 예술인 자신도, 2023년에는 예술인에게 좀 더 넉넉한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