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범지구적 저작권 약탈, 전세계 창작자 연대로 대응

URL복사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AI가 쓴 글이 기초 자료로 쓰이는 수준을 넘어 상을 받기도 하면서, AI 저작권을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논란이 있었다. 문제는 이를 통해 작가의 저작권을 무너뜨릴 빌미를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이에 저작가로서의 권리를 충분히 인정받은 적이 없다고 느끼던 작가들이 행동에 나섰다. 

 

미국 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은 올해 5월 2일부터 파업 중이다. 미국에서 작가들은 프리랜서(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파업을 할 수 있다. 헐리웃의 시나리오작가와 감독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3년마다 영화방송제작자연합과 단체협상과 합법적인 파업을 통해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오고 있다.

 

이들의 글로벌 스트리밍 업체의 불공정 계약관행을 지적하면서, 그들이 ▲작가에게 적절한 집필 시간과 환경을 보장하고 마땅한 집필료를 지급할 것, ▲플랫폼에 공개한 뒤 시청 시간에 비례하는 정당한 보상을 해 줄 것, ▲AI가 생성하나 글은 저작의 기초자료 일 뿐 저작물이 아님을 분명히 할 것 등을 요구했다. 

 

 

비례보상(=정당한 보상)은 음악 저작물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도입된 개념이다. 영상산업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OTT)이 등장하면서 계산이 복잡하고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비례보상이 아닌 정액보상을 받아왔다. 하지만 OTT가 대세가 되어버린 산업환경에서는 정액보상의 불공정성을 더이상 용인할 수 없게 되어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같은 이유로 유럽의회는 2019년 스트리밍 업체도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명령을 통과시켰다. 현재 27개 회원국 중 26개 국가가 해당 명령을 자국의 저작권법에 반영하였다.

 

한국은 많이 늦다. 1987년에 만들어진 낡은 저작권법은 산업(사실상 유통 기업) 편의를 위해 창작자의 권리를 방송과 유통사에 넘기도록 되어 있다. 이에 우리나라 저작권법에도 ‘정당한 보상’을 명문화하는 개정안이 유정주 의원과 성일종 의원에 의해 발의되어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국내외 OTT들의 집요한 반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모호한 태도로 인해 개정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창작자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미국처럼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 등 단체행동을 할 수가 없어서, 저작권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마땅히 저항할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은 2018년부터 국제작가조합연맹(International Affiliation of Writers Guilds: IAWG)에 가입하여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아일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인도, 뉴질랜드의 작가조합과 함께 각국 작가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공유하고 글로벌 OTT들의 약탈적 관행에 대한 대처 방안을 논의해왔다.

 

지난 6월 14일, 한국이 가입한 국제작가조합연맹과 유럽작가연맹(Federation of Screenwriters in Europe:FSE)은 미국작가조합의 파업 지지 시위에 동참했다. 런던, 파리, 베를린, 로마, 바르셀로나, 멕시코시티,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 23개 국가의 27개 도시에서 각자의 시간을 기준으로 일제히 시위에 나섰다.

 

 

한국은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12:00시부터 14:00시까지 SGK의 이승현 작가가 1인 시위자로 나섰다. 웹툰작가노동조합의 하신아 위원장도 1인 시위로 동참했으며,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와 국제사무직노동조합연맹 한국협의회도 가세하였다. 이들 4단체는 미국 작가조합파업에 대한 지지성명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범지구적 약탈 모델을 규탄하면서, OTT는 물론 드라마 재방송이나 케이블, IPTV를 통한 송출, 해외수출 등에 대해서도 음원저작권과 같은 방식을 적용하여 비례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정부와 국회가 ‘K-콘텐츠 육성’이라는 공허한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1987년 저작권법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 속히 개정해 창작자에게 작품의 사용량에 비례하는 보상이 주어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 작가조합은 1988년과 2007년에 파업을 감행했는데, 2007년에는 3개월만에 콘텐츠에 대한 작가지분 보장, 최초 2년 동안 고정액 지급, 2% 수익배분, 최저 원고료 인상 등의 성과를 얻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