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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걸 다 홍보하는 문체부, 진짜 필요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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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진은숙 작곡가가 '작곡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2004년)에 이어 지난 1월 25일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수상한다고 독일 현지에서 발표되었다.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받은 아시아인은 진은숙 작곡가가 처음이다. 

 

 

다음날인 1월 26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제목은 "아시아인 최초로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수상한 진은숙 작곡가에게 축전"이었다. 수상 사실이 아닌 축전을 보냈다는 사실에 대한 보도자료라니? 문체부의 축전 보도자료를 조사해보기로 했다.

 

'축전'을 검색어로 문체부 보도자료를 검색해 보니 결과값이 상당히 많았다. 조성진,  한강 작가, 방탄소년단, 손흥민, 임윤찬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국제적인 상을 수상한 작가, 체육인, 산악인, 음악인 등에게 장관이 축전을 발송하고 이를 보도자료로 내보냈다.  

 

다른 정부부처를 살펴보았다. 외교부에서 장관이 보내는 축전은 수교 30주년, 40주년, 50주년 등을 기념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것도 양국간에 서로 축전을 교환하는 방식이다. 그 외 부처에서는 축전을 보냈다는 보도자료를 찾아볼 수 없었다.

 

2017년 경향신문 최우규 논설에 따르면, 축전은 정치적 행위로서 정부 주무부처가 축전을 보낼 대상과 문구를 청와대에 보고하고 (대통령 이름으로) 보낸다고 했다. 게다가 이렇게 보내진 대부분의 축전은 보도자료 형태로 기록되지 않는다.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2023년에 '봉축일'과 '부활절' 이렇게 단 두 개의 축전 보도자료만 올라와 있다. 

 

정부 부처 중 유일하게 문체부가 축전 보도자료를 즐겨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체부는 국정홍보에서 출발하여 유신시절 문화공보부가 되었다. 6월 항쟁 이후인 1989년부터 문화부와 공보처가 분리되어 공보처는 국정홍보처로 독립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두 기능이 다시 통합되었다. 이에 현재 문체부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국정에 대한 홍보 및 정부발표"이다.  그러다보니 그 내용도 정부친화적이고, 원칙보다는 대외적인 이미지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문체부의 축전 보도자료 가운데에는 2020년 저작권 문제로 사회적 이슈가 됐던 백희나 작가에게 보낸 것도 있다. 당시 백희나씨는 <구름빵>이라는 그림책으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 문학상'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수상하였다. 하지만 저작권은 <구름빵>이 출판되던 2004년 당시 출판사에 양도되어, 백희나 작가에게는 저작권이 없었다. 이로 인해 저작(특히, 저작인격)권 양도가 가능한지 여부를 놓고 한동안 사회적 문제가 되었지만 문체부에서 이와 관련하여 보도자료를 낸 기록은 없다. 

 

 

2020년 홍상수 감독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는 감독의 사생활을 이유로 축전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러다가 비공식적으로 홍상수 개인에게 축전을 보냈고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임권택, 김기덕, 봉준호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이름을 남긴 감독들에게 문체부는 24시간 안에 공식적인 축전을 보냈었다.

 

각종 수상 소식을 한 번 더 환기한다는 점에서 문체부의 축전 보도자료가 무가치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체부보다 훨씬 빨리 수상 소식을 전하는 언론에게는 축전 소식이 그나마 보도자료로서 가치를 가질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축전류의 보도자료를 정성들여 내는 것은, 문체부가 문화예술진흥의 주관부서이기보다는 국가홍보처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만 같아서 씁씁하다. 문체부가 국가홍보처로 존재하면, 문화예술과 문화예술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을까?

 

국가 조직 구성상 어쩔 수 없다면, 예술인의 권리보호에 관련된 정책 보도자료도 많이 냄으로써 최소한의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홍보처와 문화부는 반드시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유 장관은 이번 축전에서 '진은숙 작곡가가 지금까지 쏟아낸 열정과 인고의 시간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 힘찬 박수를 보낸다.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쌓아온 진은숙 작곡가의 명성이 이번 음악상을 통해 더욱 빛날 것으로 확신한다.'라며 '이번 수상으로 우리는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인들의 뛰어난 기량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알리게 되었다. 진은숙 작곡가가 앞으로도 아름다운 선율과 하모니로 세계 각지의 청중들을 위로하고 기쁨을 선사해 주길 진심으로 응원한다.'라고 밝혔다. 

 

진은숙 씨는 함부르크 음대에서 거장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를 사사하고, 2004년 그라베마이어상, 2017년 비후리 시벨리우스 음악상, 2018년 마리 호세 크라비스 음악상 등을 수상했다. 2022년부터는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등 세계 각국의 오케스트라와 공연장에서도 진은숙의 작품을 위촉해 연주하고 있다. 

 

독일 에른스트 폰 지멘스 재단과 바이에른 예술원이 주최하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은 클래식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1974년부터 클래식 음악 작곡,지휘,기악,성악,음악학 분야를 통틀어 해마다 1명을 선정해 시상한다. 역대 수상자로는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