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편집부 | 내란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던 2024년 12월 18일, 문체부가 국회에 '지역문화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06637호)를 조용히 제출했다. 문체부는 '행정기관에 두는 위원회의 효율적 운영'을 제안 이유로 내세웠지만, 법안의 실체는 지역문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민간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배제하고, 법적 구속력을 갖던 '심의' 절차를 폐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대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민간의 의견을 수렴·반영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행정 편의를 위해 문화 자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시도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나: 법안이 겨누는 세 가지 핵심
이번 개정안은 단순히 위원회의 명칭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 정책 결정 구조의 근간을 바꾸는 세 가지 핵심적인 변화를 담고 있다.
첫째, 기능의 격하: 구속력 있는 '심의(審議)'가 사라진다.
현행법은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 등 핵심 정책을 수립할 때 "지역문화협력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정책의 타당성과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적 의무 절차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 '심의를 거쳐'라는 문구를 완전히 삭제했다. 위원회의 기능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순 의견 청취 수준의 '협의(協議)'로 격하된다. 이는 정책 결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를 스스로 무력화하고, 행정부의 정책이 별다른 견제 없이 수립·집행될 수 있는 길을 여는 셈이다.
둘째, 사람의 교체: '민간 전문가'는 나가고 '정부 관료'가 들어온다.
현행 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민간 전문가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등 민간 위촉직이 중심이 되어 민관 협치(거버넌스)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민간 공동위원장 제도를 폐지하고 문체부 장관 단독 위원장 체제로 바꾼다. 더 결정적으로, 위원 위촉 근거에서 '민간 전문가' 조항을 삭제하고, 그 자리를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 실장급 공무원'과 '시·도 부단체장'으로 채웠다. 지역문화의 실질적 주체인 시민과 예술인,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가 제도적으로 원천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셋째, 운영의 자의성: '법령'에 따르던 규칙을 '위원장' 마음대로.
현행법은 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중요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를 '정책협의회의 의결을 거쳐 위원장이 정한다'로 변경했다. 국회 검토보고서가 지적했듯, 의결정족수나 위원장 직무 대행 같은 핵심 운영 규칙을 법령이 아닌 행정부의 수장인 장관(위원장)의 재량에 맡기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고 자의적 운영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명분과 국회의 반박: '효율성' vs '민주성'의 충돌
정부는 이번 개편의 명분으로 '행정 효율성'을 내세운다. 지역 인구 소멸, 재정 여력 약화 등 복합적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부처와 지자체 간 긴밀한 협력과 범정부적 정책 조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관료 중심의 효율적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필요시 민간 전문가를 회의에 '출석'시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조항을 신설했기에 소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회 검토보고서는 이러한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보고서는 "민간위원 없이 공무원들로만 구성되어 민간의 의견을 수렴·반영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핵심 우려를 명확히 했다. 전문가를 단순히 '출석'시켜 의견을 듣는 것은, 위원으로서 동등한 권한을 갖고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보고서는 결정적인 과거 사례를 제시한다. "제21대 국회에서도 정책협의회로 개편하더라도 민간위원을 위촉하도록 하는 동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간 참여 보장'이 이전 국회에서도 중요한 가치로 다뤄졌음을 시사하며, 현 정부안의 일방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개정안이 불러올 파장과 전망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그 파장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시민과 현장 전문가는 정책의 주체에서 객체로, 파트너에서 단순 의견 제시자로 전락하며 문화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중앙 관료들의 시각으로 짜인 획일적인 정책이 각 지역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하달되어, K-컬처의 뿌리가 되는 다채로운 지역문화 생태계의 고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법안은 이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심사 테이블에 올랐다. 정부의 '효율' 논리와 현장 및 전문가들의 '자치' 요구가 정면으로 충돌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한 위원회 개편을 넘어, 지역문화를 바라보는 정부의 철학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행정의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시민 참여와 민주적 절차라는 대원칙을 넘어설 수 있는지, 입법부의 신중하고 깊이 있는 심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