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편집부 | 라이트 페인팅 기법으로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진가 이열 작가가 사진과 글을 엮은 산문집 '느린 인간'으로 제14회 녹색문학상 산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함께 운문 부문에서는 명은애 시인의 시집 '벌목공에게 숲길을 묻다'가 공동 수상작으로 뽑혔다.
녹색문학상은 사단법인 한국산림문학회가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2012년부터 운영해온 문학상으로, 숲사랑·생명존중·녹색환경 보전의 가치와 중요성을 주제로 국민의 정서녹화에 기여한 문학작품을 발굴·시상한다. 10월 29일 오후 2시 국립산림과학원 산림과학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두 수상자와 산림청 관계자를 비롯해 100여 명이 넘는 문학인이 참석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김홍신은 심사 소감에서 "녹색문학상을 제정한 뜻은 뛰어난 문학성은 물론 녹색 시대를 열어가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가치를 진정성을 갖고 묘사한 작품을 선정하여 사람 살기 좋은 나라를 가꾸려는 성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본심에 오른 시·소설·수필·아동문학 등 6편의 작품 모두 높은 문학성과 녹색 시대를 예견하는 지적 감수성을 갖췄기에 심사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심사위원 수필가 오경자, 시인 허영만, 수필가 겸 산림 전문가 곽주린, 아동문학가 정두리와 함께 9월 10일 한자리에 모여 전원 합의로 두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열 작가는 문단에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2013년 '푸른나무' 시리즈를 시작으로 국내외 나무를 기록해온 사진가다. 그는 해가 진 어두운 밤에 나무에 직접 조명을 비추는 '라이트 페인팅' 기법을 사용해, 단순한 기록을 넘어 나무를 이 지구의 주인공으로 조명한다. 한국의 제주·신안·통영·남해 등 섬 지역의 보호수와 노거수를 담은 '신목' 시리즈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올리브나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 네팔 히말라야의 랄리구라스, 남태평양 피지의 맹그로브나무 등 세계 곳곳의 나무를 촬영해왔다.
김홍신 심사위원장은 "오랜 시간 나무와 인간, 자연의 삶을 깊이 관찰하며 써 내려간 '느린 인간'은 예술적인 사진만큼이나 유려한 글솜씨를 보여줬다"며 "나무와 인간, 자연과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삶의 속도와 존재의 의미를 탐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물론 아프리카, 이탈리아, 히말라야 등 세계 곳곳을 탐색한 사진가의 집념과 열정이 돋보였으며, 나무와 인간 모두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으며 느림 속에서 삶의 깊이와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메시지가 녹색 시대의 가치를 드높였다는 것이다.
시상식에서 이열 작가는 나무와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짧은 강연을 펼쳤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국민학교 가는 길 서낭당 고목 아래에서, 동네 형들과 놀던 느티나무 아래에서, 양재천 둑방길 나무 지키기 시민운동이 마침내 성공하고 지인들과 그곳에 주목 한 그루 심었던 그때, 내 마음에 나무가 자라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나무와 함께 한 매 순간이 내겐 경이롭고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다. 사진의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나무 사진가가 되었고, 그 첫 전시가 양재천 나무 지키기를 위한 전시였을 때 어쩌면 자신의 남은 시간이 나무와 함께할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고 털어놨다.

이열 작가는 "사람들 관계에서 지칠 때 나무에게서 위로받았고, 다시 외로워지면 사람에게로 돌아왔다"며 "나에게 나무의 위로는 할머니의 그것과 같이 언제나 은은하고 따스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산소를 주고, 물을 주고, 양식을 주고, 집을 주고, 이 책을 인쇄한 종이를 주고, 생명을 준 나의 영원한 주인공 나무에 감사하다. 나는 언젠가 당신들의 밑거름이 되리라"며 나무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작품 해설을 맡은 내촌목공소 고문이자 한국산림문학회 이사 김민식은 "이열은 대상을 찍기 전에 대상 속에 서 있었다. 기다림은 그에게 수단이 아니라 방식이었다"며 "그의 느림은 인간이 세계 속에 머물며 인간으로 남는 마지막 자세"라고 평했다. 김민식은 "그의 글이 사진의 연장"이라며 "문장은 닫히지 않고, 문장 사이에는 여백이 있다. 여백은 사유의 공간이며, 독자의 호흡이 들어설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웨덴 한림원이 대중 가수를, 대한민국의 산림문학회가 사진작가로 문학의 경계를 허물었다"며 이번 수상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이열 작가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2013년 첫 나무 사진전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살가도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황폐한 농장에 2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밀림으로 복원하고 브라질 최대 환경교육센터를 만들었다. 이열 작가는 "그 강연을 본 순간, 내가 느꼈던 허전함이 무엇인지 알았다"며 "나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예술의 숲'을 만들고 싶어졌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열 작가는 2022년 6월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받아 '예술의숲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았다. 대부분이 숲인 작은 마을에 예술가들이 어울려 나무를 가꾸며 창작하고,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살아 있는 교육을 하며, 주말에는 방문객들이 숲을 산책하고 전시와 공연을 보며 자연과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열 작가는 "언젠가 그런 마을이 만들어지면 그 마을 한 구석에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으려 한다"며 "마침내 내가 흙으로 돌아갈 때, 한줌 재가 되어 그 나무 아래 거름으로 뿌려지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공동 수상작인 명은애 시인의 시집 '벌목공에게 숲길을 묻다'는 부산 사하구 몰운대 숲에서 삶과 사유, 숲의 존재론적 가치와 녹색 사상, 숲이 함축하고 있는 인간관계와 인류 생존의 문제 등을 절묘한 호소력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숲에서 정신적 치유와 자정력을 매우 깊게 파악했으며, 녹색 시대를 유추하는 서정성을 문학으로 승화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참석자들은 두 작가의 강연과 작품이 독특하고 감동적이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