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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속 아이들을 연못으로 데려온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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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미술 유산을 재활용한 좋은 사례

최석태 미술평론가 |

 

이번에 소개할 그림은 아이가 셋이 있는 엽서그림이다. 언덕인지 바위인지에 앉은 한 녀석은 고개를 올려 앞에 있는 나무인지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물이 있는 아랫 부분에 있는 녀석들 중 왼쪽 아이는 물고기를 두 손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녀석은 오리에 올라타고 있다. 실제로는 이루어지기 힘들지만 그림으로는 흔히 그려진다.

 


이 녀석들이 하늘을 쳐다보거나 노는 곳은 연꽃이 핀 못이다. 연꽃 봉오리가 보이고 그 주위에는 아직 펴지지않고 말려진 상태의 연잎이 보인다. 물고기를 잡아든 녀석의 가랑이 사이로도 연 줄기가 보인다. 멀리 산이 둘러져 있고 빈 곳을 메우듯 새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 보이는 어린이며 연꽃이 있는 못 같은 배경 설정은 이중섭이 창안한 것일까? 세 아이를 등장하게 한 것도 우연일까? 들여다 보면 볼수록, 이런 구성은 고려의 유명한 도자기인 푸른 사기, 즉 청자에 새겨지거나 조각된 것에서 빌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아래 사진을 보자. 

 

 

 

 

 

이것은 고려 시대의 청자 접시다. 접시 형태를 만든 뒤, 연꽃이 핀 못에서 노는 세 아이를 돋을새김으로 새겨서 마주보게 배치하였다. 이중섭이 그림으로 펼친 장면과,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배경 무대로 연못이 나오는 설정까지 똑 같지 않은가? 

 

고려시기 청자에 대한 이중섭의 관심의 근원은 여러 갈래로 추정된다. 순서를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초등과정에서 알게된 친구 김병기의 아버지 김찬영이 최초일 것이다. 그는 식민지 조선인 중에는 고려시기 청자 수집가로 널리 알려지고 손꼽히는 사람이었다.

 

오늘날 고교과정에 해당하는 시기에 교사로 만난 임용련도 중요하다. 그는 미국에서 미술대학을 다니던 시카고에서 서구사람들이 우리 청자를 너무나 높이 평가를 하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아 청자의 예술적 내용을 두루 살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중섭의 형도 빼놓을 수 없으며, 마지막으로 이쾌대의 형 이여성의 존재도 빼놓지 못할 것이라 보인다.

 

 

사실 11월 8일자 <감추어진 마음, 이중섭의 연애>에서 소개한 엽서 그림에서 비스듬히 누운 남자 곁에 있는 오리의 자태나 표정도 마치 위의 청자 오리모양 연적을 닮았다. 그에 이어진 이 그림은 어느 한 소재만이 아니라 청자에 구현된 무늬를 아예 통째로 가져와 자기식의 그림으로 펼쳐놓은 것이 아닌가! 선조로부터 가져오건, 자기 시대의 미술가로부터 가져오건, 소재는 같아도 다른 연출로 다른 분위기를 창출하는 것이 자기다움을 내뿜는 핵심이라면 이중섭은 이런 자각이 뚜렷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그림도 이중섭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보낸 엽서에 그려넣은 것이지만, 사랑의 분위기보다는 이중섭 자신의 문화 정체성이 도드라진다. 그녀에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속한 민족의 문화 특징이자, 두루 통할 수 있는 미술 요소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녀에게 보낸 첫 그림 엽서에 등장하는 오리도, 내가 보기에는 고려시대의 오리 모양 청자 연적을 닮았다. 이중섭은 사랑을 구하면서도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 아닐까? 

 

이렇듯 전통 그림에서 착안하여 아이가 연꽃이 핀 연못에서 노는 광경을 그린 이중섭은 이후에도 비슷한 발상의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그려진 순서대로 계속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