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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씬의 카운팅 공연, 문제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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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최근 인디씬에서의 '카운팅공연'이 문제가 되었다. '카운팅공연'이란 나를 보러 온 관객이 낸 입장료에 기반해서 수익을 배분받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출연했던 가수 해파가 '스페이스 한강'에서 보수를 전혀 받지 못했다는 글을 SNS에 게재하면서 이 내용이 화제가 된 것이다.

 

그동안 예술인에 대한 착취 사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무급노동', '춥고 힘들었는데', '한푼도'와 같은 표현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분노했다. 언론도 앞다퉈 보도했다.

 

이에 스페이스 한강의 대표 나린은 "(이렇게 공론화되기 이전에) 카운팅 공연임을 몰랐다는 해파의 연락을 받고 사과했다. 수많은 클럽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라 이것이 이렇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상황에 누구보다도 당황스러운 상태이다. 그 자신도 뮤지션이기에, 수익보다는 인디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공연장' 운영을 시작한지 겨우 3개월 만이다.

 

 

뉴스아트와의 통화에서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본이 부족한 소규모 공연 무대가 살아남으려면 카운팅공연 방식 이외에 현실적인 대안이 많지 않은 환경이기에 고심은 깊어만 간다. 

 

임금 노동자에게는 낯선, 카운팅 공연 보수체계

 

별 생각 없이 공연만 즐기다가 이런 보수 지급방식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은 클럽 혹은 기획자, 나아가 카운팅 공연방식 자체를 나무라기 쉽다. 임금 노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카운팅 공연 방식은 확실히 생소하고 경우조차 없어 보이는 보수체계이다.

 

논리는 단순하다. '무대에 섰는데 돈을 안 준다고? 불러놓고? 나쁘네!' 

 

그런데 대중음악계에 오래 몸담아 온 뮤지션 정문식씨가 페이스북을 통해 우려를 표했다. 인디음악씬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공연공간과 뮤지션을 '갈라치는' 언론의 행태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인디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사람들이 그 생태계를 잘 모르면서 함부로 판단하면, 생각지 못한 후폭풍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싸우지 말아야 할 사람들끼리 싸우면, 남는 것은 파국이다.

 

인디씬에서 공간과 뮤지션은 서로 필요한 공생 관계?

 

정문식씨는 먼저 인디음악 공연장의 수익 현실을 보여주었다. "월세도 겨우 맞추는 수준"인 인디음악씬에는 절대 강자와 절대 약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공연장은 강자, 뮤지션은 약자로 갈라쳐서 몰아가는 분위기를 우려했다. 임금노동자와 달리, 공연장과 뮤지션의 관계는 사업주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100석 미만의 공연장에서 앰프나 드럼셋, 키보드 등을 다 갖추고 있는 경우는 일본이나 미국·유럽 등지에서 만나기 어려운 좋은 공연 환경이다. "일상성"이 중요한 인디음악씬 내지 라이브음악씬에서는 이런 공간이 매우 소중하다. "인디씬에서 공간과 뮤지션은 서로 필요한 공생 관계"이니, 모객과 홍보 또한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의 말은, 그래야만 이런 공간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강자와 약자의 문제, 노동에 대한 착취의 문제가 아니다. 인디음악이 연주활동에만 집중해도 적당히 수익이 발생하는 '예술하기 좋은' 환경이나 장르가 아니라는 것이 1차적 문제고, 인디씬의 어려운 상황과 관행이 외부에 구체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는 문제도 있었다. 여기에 계약서 작성 문화가 없어서 계약조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씬의 문제가 겹쳐져 일이 커졌다.

 

카운팅 공연방식이 시대 변화 못 따라간 걸까?

  

카운팅 공연방식은 해외 라이브 클럽에서도 일반화된 문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대 이후 라이브 클럽의 유료관객수가 확연히 줄어들고 홍대지역의 임대료가 높아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연장이나 클럽이 수익성을 고민하면서 일부에서 카운팅 공연방식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모객이 잘 안되는 상황에서 씬의 구성원들이 함께 홍보와 모객에 함께 애를 쓰자는 의도가 담긴 방식이다. 그러니 인디씬의 척박한 환경에서 카운팅 공연방식은 어떤 측면에서는 합리적이기까지 했다. 

 

대중음악 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의도는 좋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공연장 측이 공연한 사람보다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게 문제"라고 하면서, 그런 공연을 기획한 것은 '인기 없는' 뮤지션이 아니라 공연장이니까, 그들이 기획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또한 "카운팅공연이 절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면서, "뮤지션들이 모두 무명이던 시절이 있었으니, 균등배분에 문제제기할 뮤지션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표면상 카운팅공연을 지양하고 균등배분 기획공연을 표방하는 모 라이브클럽도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그런 원칙을 지키기 어려운 상태였다. 쉽지 않은 상황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적어도 지금은 뮤지션의 협조와 도움이 없이 공연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권리의식 높아진 음악인과 카운팅 공연의 불안한 동거

 

인디씬에서 카운팅 공연방식이 일반화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음악인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에 대한 인식은 2010년대 이후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2010년 인디차트를 석권하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비극적인 죽음과, 사실상 무료공연을 요구한 2011년 월드디제이 페스티벌(월디페) 사태 등을 겪으면서 뮤지션들은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산이 넉넉하게 책정된 공공프로젝트가 아니라면, 그리고 특히나 인디씬에서 인디뮤지션에게 임금을 지급해야 할 '사용자'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공연을 주선한 사람도 참여한 사람도 모두 사실상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디뮤지션은 임금노동자와 달리 자율적으로 작업하고 스스로 영업과 마케팅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자영업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 복잡하다.

 

권리의식과 노동의 댓가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무엇이 노동이고 무엇이 예술인지에 대한 명확한 구분은 어렵다. 그러다보니 뮤지션들은 카운팅공연 방식과 불안한 동거를 해 왔다. 카운팅 공연이 신인 뮤지션과 새로운 음악을 홍보하고 알리는 기회인지,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기형적인 공연인지,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흘러왔다.

 

예술하기 힘든 환경, 더 정교하고 명확하게 소통해야

 

예술계열 대학입시 경쟁률이 날로 치열하다. 서울예술대학교의 2023년 평균 경쟁률은 30:1이다. 연기전공은 100:1, 실용음악전공은 80:1이다. 굳이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혹은 늦은 나이에라도 예술을 하겠다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로 인해 인구 대비 예술인 숫자는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예술활동증명신청 및 완료자만 17만 명이다. 

 

 

다행히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은 2000년대 이후 여타 분야에 비해 높은 비율로 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전체 예산은 연평균 4.2% 증가했지만, 이 가운데 문화예술부문 예산은 8.1% 증가했다. 문화소비도 상승세다. 2022년 7월 기준, 콘서트 개수는 43.5% 증가했고 판매금액은 267%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인디씬은 다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지도 높은 공연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2020년 2월부터 1년 동안 취소된 공연만 432회로 피해액은 1650억 원에 달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무너진 시장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인디씬이 변화된 환경, 무너진 시장에 적응하려면 예술가와 기획자, 스탭, 공간 등 여러 구성원들이 서로 더 정교하게 소통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도, 보수체계가 카운팅 방식인지 여부가 사전에 정확하게 공유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런 점에서 뉴스아트에서 2022년 12월 16일에 기사화한 연주자 일당 만 원 기사에 나오는 "두 타임 연주 출연료 만 원"이라는 구인 포스팅은 잔혹했지만 명확했다. 뮤지션이 정보를 토대로 출연 여부를 선택할 수 있으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불필요한 갈등 줄여 공생의 길로

 

이번 공론화를 계기로 그동안 예술인과 불안한 동거를 해왔던 카운팅 공연 방식을 관객들도 알게 되었다. 카운팅 공연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켜, 공생을 위한 창의적인 대안을 만들어갈 기회일 수 있다. 정문식씨 말대로 공생하면서, 서정민갑씨 말대로 제대로 책임질 수 있는 대안 말이다. 공론화를 계기로 그동안 펜데믹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만 담당해 오던, 음악적 다양성을 키워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공공 프로젝트가 가동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인디씬에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숙제가 있다. 계약서 작성이 어려운 단 건 공연이나 짧은 공연이더라도 전자계약, 혹은 단순화시킨 계약문건 작성을 진행하는 문화를 씬의 구성원들이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계약조건과 관련한 의사소통의 오류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향후 아티스트가 예술인고용보험이나 예술활동증명 등을 신청할 때 증빙자료로 활용하여 복지 혜택을 누리는 데 이용할 수 있다.

 

오늘부터 홍대 3대 명절의 하나인 경록절이 열린다. 인디씬 시장의 회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