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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의 빛과 그림자… "3일 굶었다"는 절규와 '상환율 95%'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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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밖으로 쫓겨난 예술인들, 100명 중 8명은 '불법 사채' 덫에… 개인 아닌 구조적 실패.
금융권은 '고위험' 낙인 찍었지만… 3년의 실험은 '상환율 95%'라는 놀라운 신뢰로 답했다.
데이터로 드러난 시스템의 실패, 국회는 K-문화의 뿌리 지킬 공적 안전망 만들 수 있을까.

뉴스아트 편집부 | "공연을 할수록 빚만 늘었습니다. 은행은 저를 '무직자'로 봤고, 결국 연 20%짜리 카드론도 모자라 '일수'를 알아봐야 했습니다."

 

세계 무대를 빛내는 K-컬처의 화려함 이면, 그 주역인 예술인들의 삶은 금융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넘어 지하경제의 덫으로까지 내몰리고 있었다. 프로젝트 단위의 불규칙한 소득 구조는 이들을 제도권 금융의 '투명인간'으로 만들었고, 이는 결국 폭력적인 불법 채권추심의 공포로 이어지는 비극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문화계의 뿌리를 썩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가 지난 11월 5일 국회에서 공론화된다. 양문석·임오경·전현희·조계원 의원실 공동 주최로 열린 'K-문화, 그 뿌리는 단단한가?' 토론회에서 공개될 예정인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2025 예술인 금융 재난 보고서』는, 예술인들이 겪는 금융 문제가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 생존을 위협하는 시스템의 실패임을 고발한다.

 

은행에서 '배제', 시장에서 '약탈', 마지막은 '불법의 늪'

 

보고서가 통계로 증명한 현실은 단계적으로 심각해진다. 먼저, 예술인 10명 중 8명 이상(84.9%)은 '소득 불규칙'과 '증빙의 어려움'을 이유로 시중은행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며 제도권에서 '배제'당했다.

 

갈 곳을 잃은 이들은 제2, 제3금융권의 고금리 상품으로 '내몰렸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8.6%가 사실상 법정 최고금리 수준인 연 20% 근처의 이자를 부담한 경험이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마저도 막힌 예술인들 중 7.8%는 결국 불법사금융, 즉 사채 시장으로까지 발을 들였다. 이는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채권추심의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설문 수집 과정 중에는 빚 독촉을 넘어선 협박과 위협에 시달렸다는 예술인들의 증언도 다수 포함되어, 이들의 고통이 금융 문제를 넘어 신변의 위협으로까지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단계적 추락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제도권 금융이 외면한 자리를 불법 시장이 파고드는 전형적인 '구조적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상식을 뒤엎은 3년의 실험, "시스템의 편견이 틀렸다"

 

하지만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이 모든 구조적 편견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역설적인 데이터도 제시됐다. 바로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지난 3년간 진행한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실험의 결과다.

 

신용점수나 소득증빙이 아닌 동료의 '신뢰'를 기반으로, 금융권이라면 외면했을 예술인 354명에게 약 7억 원의 자금을 지원한 결과, 상환율은 무려 95%에 달했다. 이는 예술인이 결코 '위험한 집단'이 아니며, 이들을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몬 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닌 시스템의 명백한 실패였음을 증명한다.

 

 

민간의 증명, 이제 공적 제도로 이어져야

 

이날 국회 토론회는 바로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첫 발제를 맡은 서인형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이사장은 '민간실험에서 공적제도화로'라는 주제를 통해 "95%의 상환율은 예술인들에게 최소한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보다 성실한 금융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제 이 작은 증명을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가 공적 안전망을 설계해야 할 때"라고 제언할 예정이다.

 

이어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 원장은 '관계형 금융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공공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획일적인 신용평가 모델에서 벗어나 예술인의 직업적 특수성을 고려하는 대안적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공공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할 계획이다.

 

K-팝, K-드라마의 세계적인 열풍 뒤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제도권 밖으로, 그리고 불법의 늪으로 밀려나고 있다. '상환율 95%'라는 데이터가 증명한 가능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번 토론회가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금융 안전망을 구축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